붓다의 ‘위대한 포기’는
‘위대한 성취’
이웃 종단, ‘실존할 수 없는’
선암사 주지 임명은 안 돼
선암사는 그냥 본래의
선암사 것일 뿐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규명했다. “불교가 위대한 것은 ‘위대한 포기’(The Great Renunciation) 때문”이라고. 그는 붓다의 출가(出家)를 ‘집 떠남’(Homeless)으로 보지 않고 ‘위대한 포기’(The Great Renunciation)로 본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천명은 그가 현대 실존주의 철학의 거장이었기 때문에 더 큰 무게감으로 작동한다.

맞다. 불교가 위대한 것은 바로 그 ‘위대한 포기’ 때문이다. 붓다의 그 ‘위대한 포기’가 없었다면, 불교라는 종교는 결코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불교가 마녀재판이나 십자군 전쟁 같은 피가 없는 유일한 비폭력 종교로 남아 있는 것도 붓다의 그 ‘위대한 포기’ 때문이다. 붓다는 ‘위대한 포기’를 함으로써 ‘위대한 성취’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멸의 소유가 되어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영원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뜬금없이 칼 야스퍼스를 소환한 것은 선암사 때문이다. 선암사를 향한 이웃 종단의 집착은 이제 집착의 경계를 넘어 윤리의 한계선으로 치닫고 있다. 자신들이 먼저 선암사가 자기들 것이라고, 사회법에 손들어달라고 소송을 제기해놓고, 사회법이 그것이 아니라고, 선암사는 그냥 본래 선암사 것이라고 판단해주자 이젠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실존하지도’ 않는, 아니 결코 ‘실존할 수도 없는’ 주지를 임명하는 등 불복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기실 태고종과 선암사는 한 번도 선암사를 선암사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예전부터 그냥 선암사가 있으니까 선암사에 들어가 머리 깎고 계속 선암사에서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 번도 선암사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선암사가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 국민과 불자들은 과연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과연 삭발염의하고 ‘위대한 포기’를 실현하기 위해 집을 나선 사람들의 위대한 행위로 보고 있을까.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이 민망함에서 벗어나고자 태고종은 8월 30일 오후 선암사 경내 적묵당에서 종단 원로와 종회의원, 중진, 총무원장 등 집행부와 선암사 대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이웃 종단의 도를 넘은 잇단 집착행위에 대한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불교의 본령은 ‘길 없는 길’ 위에서 바른길을 찾아 바른길로 바로 가는 것이다. ‘길 없는 길’이라는 역설도 ‘길 없는 그 길’ 속에 반드시 바른길이 있음을 일러주기 위함이다. 지금 이웃 종단은 ‘길 없는 그 길’ 위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있다. 길을 잃었으니 길을 못 찾고 계속 헤맬 수밖에.

같은 사람이 한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되었을 때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졌다고 한다. 선암사를 향한 이웃 종단의 작금의 행태가 정확히 그렇다. 선암사가 자기들 것이라고 스스로 먼저 소송을 제기한 것도 자기들이고, 그 결과 판결이 정반대로 나오자 그것이 틀렸다고 스스로 불복하고 나선 것도 자신들이고, 그것을 강제로 다시 뒤집겠다고 새 판을 짜며 더 강한 집착의 뒤끝을 보이는 것도 자신들이다. 그들의 모습 어디에서도 ‘위대한 포기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포식자의 모습만 보인다.

모순으로는 절대 모순을 극복할 수 없다. ‘위대한 포기’ 없이는 ‘길 없는 길’에서 바른길을 절대로 찾을 수 없다. 모순으로 모순을 극복하려는 당착을 버리는 것만이, 그리고 ‘위대한 포기’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만이 ‘위대한 포기자’의 후예로서 위대하게 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태고종과 선암사는 이번 대책회의를 통해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길 없는 길'에서 본래의 길만 찾아 묵묵히 가기로 했다. 국민과 불자들에게 '길 없는 길'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민망함을 같이 보여주지 말자고 머리를 모은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길이고, 진정한 소유고, 붓다의 위대한 정신을 잇는 위대한 길이기에.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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