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찾았던 부천시립 상동도서관 정기간행물 서가에서 <비건 비긴 Vegan Begin>이라는 제목의 잡지에 눈길이 갔다. 살펴보니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1424, 1425호 통합권이었다. 159쪽 분량의 잡지 전체를 ‘비건’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83꼭지로 꾸민 것이 놀라웠다. 비건과 관련되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두루 살피고 있다. 편집자는 “시대를 읽어내는 열쇳말로 한겨레21이 지향하는 가치를 담아내되 ‘채식이냐 육식이냐’ 이분법을 넘어서는 논쟁 지점을 열어보고 싶었습니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대승불교권에 속하는 한국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하고 있다.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으며[皆有佛性], 이에 육식은 부처가 될 씨앗을 없애는 악행이 되며,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사찰에서는 채식을 하고 있다. 많은 불자들도 이런 이유로 채식을 하고 있다. 채식에는 완전 채식인 비건, 생선과 해산물, 유제품을 허용하는 페스코, 경우에 따라 육류와 그에 따른 제품을 사용하는 플렉시테리언 등 다양하다. 채식은 여러 면에서 권장할 만하다.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닭, 돼지, 소, 양, 오리 등의 고기는 거의 공장식 축산의 생산물이다. 동물이 지닌 고유한 성질을 철저히 탈락시킨 조건에서 생산된다. 그들도 생명일진대 단지 돈이 되는 고기로서만 취급된다. 육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소, 돼지도 생명이며, 그들의 생애가 그들답기를 바란다. 동물권 활동가들은 동물 수를 세는 단위로 목숨이라는 뜻의 ‘명(命)’을 사용한다. 소 한 마리라 하지 않고 한 명이라고 함으로써 생명이라는 인식을 새긴다.

생구(生口)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서는 ‘집에서 기르는 짐승’ 또는 ‘소나 돼지처럼 거래되거나 그와 같이 취급되는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짐승을 가리키며 살 생자를 쓴 의미가 있을 것인데, 한 집에 사는 사람 외의 생명붙이를 이르는 말이다. 이규태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이처럼 이 세상에서 짐승을 사람과 동격으로 표현하는 말을 가진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 외에 없을 것이다"라고 생구의 의미를 풀었다.

고기의 생산에는 엄청난 양의 물과 곡물이 들어간다. 소고기 1kg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물의 양은 4만 리터라고 한다. 육류만큼의 단백질을 제공하는 콩 1kg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물의 양은 2천 리터로 소고기의 20분의 1쯤에 머문다. 소고기 생산과정에는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도 배출하는데, 그 양이 콩의 100배나 된다. 육류의 생산이 지구의 환경과 생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남궁선은 논문 ‘불교 불식육계의 생태학적 고찰’에서 불살생계를 지키고 생태계 파괴를 막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생태식을 제안했다.(이 논문은 2011년 선리연구원 학술상 수상작이다.) 생태식이란 육식과 채식의 이분법을 넘어 생태적으로 건강한 음식을 가리킨다. 채식일지언정 그 재료가 먼 나라에서 수입된다면 짙은 탄소발자국을 남기므로 생태적이지 않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될지라도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토양과 물을 오염시킨다면 생태적이지 않다. 생태식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지향해야 할 지점임은 분명하다.

음식에 대한 선호는 중독적이어서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 어렵다. 의식적인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회적인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가령 학교에서의 채식 급식을 통해 맛있는 채식 경험을 어렸을 적부터 한다면 육식에서 채식으로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채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많아지는 것도 방법인데, 채식을 권하는 불교계에서 이런 일에 나선다면 환영받을 것이다. 채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공장식 축산과 지구에 미치는 환경·생태적 압력이 그만큼 줄어든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간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