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 ⑩ –입추
원철 스님

‘가을 준비 시작하라’는 신호 보내
장례시 입었던 소복의 색이 소색
황색과 백색의 중간색으로 미색
방향은 서방, 아미타불신앙 성행

원철 스님.
원철 스님.

입추(立秋)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의 사이에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왔음을 알리는 절후이다.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입추는 7월의 절기로서 괘상(卦象)은 건, 태괘(乾,兌卦)이다. 한낮의 정오에서 이젠 기울어지는 시기다. 동서(東西)로 나뉘어 지는 시기로 한낮의 마무리를 해야 한다. 신월(申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입추는 곡식이 여무는 시기이므로 이날 날씨를 보고 점친다. 입추에 하늘이 청명하면 만곡(萬穀)이 풍년이라고 여기고, 이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긴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있으면 다음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점친다.

명주염색.
명주염색.

입추가 지난 뒤에는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가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이 때에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어 김장에 대비한다. 이 무렵에는 김매기도 끝나가고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5월이 매우 바쁜 달이라서 “발등에 오줌 싼다.”하는데 입추는 잠시 숨 고르고 가는 시절이 된 것이다.

잡초염색.
잡초염색.

신월(申月)인 음력 7월은 삼양삼음(三陽三陰)으로 음기가 강해지기 시작하는 달로서 안으로 안으로 응집되어 단단하게 결집되어 가는 계절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신금(申金)의 계절은 가을이며 방향은 서쪽이며 색으로는 백색이지만 미월 토의 기운과 오월 화의 기운이 빠져나간 소색消色이다. 염색을 한 색이 아닌 무명이나 삼베의 고유색으로 무색의 상징색으로서 옛날 장례시 주로 입었던 소복의 색 소색(素色)으로 보면 되겠다.

하얀 옷을 더 하얗게 하기 위해 형광표백제를 첨가한 형광물질이 포함된 요즈음의 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색채용어사전에 나오는 소색에 대한 정의를 보면, 소(素)자는 흰 소(白也) 또는 순백 소(無色)로서 빛깔이 흰 옷을 소의(素衣)라 했으며, 겨울의 흰 눈을 소설(素雪), 흰 얼굴을 소안(素顔)이라 쓰기도 하고, 가을을 음향오행의 백색인 소추(素秋)라 했다. 옷감을 짜기 전 실의 원사(原絲) 모양이나 염색을 하지 않은 바탕 상태를 소지(素地)라 하였으니 결국 표백이나 착색의 기술도 색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본래의 바탕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색채 문화의 근본은 소색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5붓염색.
5붓염색.

어원 자전(語源字典)을 보면 “소(素)자는 (수)자의 윗부분의 변형으로 누에에서 빼내는 그대로의 원사가 한 줄씩 내려옴을 나타낸 '垂(수)'의 회의 문자이며 '본래 그대로라는' 뜻이다. 따라서 현대적 개념의 백색과는 차이가 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소색은 없는 색이 아닌 미색 또는 베이지색에 가까운 색이다.”라고 하였다.

신금(申金) 7월은 결실의 계절인 가을의 문턱에 와있는 달이다. 안으로 안으로 응축되어가는 시기로 완전히 여물지 않은 과일이 단단하게 익어가는 계절이다. 만물의 기운을 안으로 걷어 들이고 완성의 단계로 접어드는 시기다. 신금(申金 ) 원숭이는 영리하고 특출난 재주를 부리며 인간과 가까운 교감을 나누기도 하는 동물로서 다재다능함과 재주와 재능이 뛰어남에 비유하기도 하는 동물이다. 원숭이의 발가락은 5개로 양(陽)이다. 원숭이는 지라가 없다. 지라는 비장(脾腸)으로서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장기이다. 원숭이는 비장이 없는 동물이다.

이덕은 작.
이덕은 작.

신시(申時)는 시간상으로 오후 3시 30분터 오후 5시 30분 사이를 말하며, 열심히 일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 할 준비를 하는 시기다. 아직 낮 시간의 열기는 남아 있으니 아쉬움이 많다. 본래 서방(西方)의 색이 백색이나 미월의 황색이 남아 있어 황색과 백색의 중간색으로 미색 즉 소색素色이다. 서방의 금(金) 기운인 폐와 대장은 색으로는 백색이고 맛으로는 매운맛이다. 서방 금기운이 백색이므로 폐에 좋은 식품들은 주로 흰색이다. 무는 조직이 폐와 같은 형상으로서 폐에는 무가 좋으며 생강 등 흰색의 뿌리채소와 매운맛이 폐기운을 보하므로 폐와 대장 기운이 약한 사람은 무 등 흰 뿌리채소와 매운 성질을 가진 음식으로 보한다. 속살이 하얀 배도 폐 기운을 좋게 하는 약재로서 대추와 함께 쓰인다. 이렇듯 흰색을 띠거나 매운맛을 내는 먹거리 등은 폐를 좋게 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옛 어른들의 이러한 이치를 수용한 삶의 지혜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명주실사염.
명주실사염.

물들이지 않은 상태 원단을 하얗게 하기 위해서는 수고로움이 많이 들어갔다. 예전에는 면섬유를 천연으로 표백하려면 일광 표백을 하였다. 볏짚을 태운 잿물에 천을 삶고 햇빛에 말리고 다시 물을 적셔 말리기를 반복하여 하얗게 표백하였다. 어린 시절 동네 냇가에서 아낙들이 빨래를 하여 냇가 들판에 펼쳐 널고 다시 널고 하던 풍경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불 홋청이며 광목들을 냇가에서 삶아 빨아 일광 표백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하얗게 세탁된 천들은 풀을 멕이고 바느질을 하면 새 이불이 되어 잠잘 때 덮고 자면 바스락 바스락하는 소리가 난다. 그 감촉에 쾌적하고 기분 좋은 잠자리에 들게 되었던 기억에 감회가 새롭다.

잡초염색2.
잡초염색2.

한지 역시도 종이를 뜰 때 닥피를 잿물에 삶고 무두질한 다음 햇빛에 말리고 적시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하얗게 일광 표백한 후에 종이를 만든다. 요즘이야 화학제품으로 표백하고 정련하면 ‘하얀 옷을 더 하얗게’라는 광고카피처럼 언제든 하얗게 입을 수 있다. 신생아들에게 하얗게 표백된 의류는 좋지 않기에 요즘은 신생아 용품에서 유기농 천연제품이라 하여 ‘유기농 무농약 무형광’이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표백된 하얀 원단들 거기에는 형광증백제, 형광표백제가 들어 있어 건강에 좋지 않다. 요즘 선전 문구도 천연유기농 제품이라 표현하고 형광증백제 형광표백제 무사용이라는 문구를 크게 표시하여 놓고 판매하고 있음을 본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인위적인 것을 더하지 않은 천연 그대로 다가올 때 사람에게 좋은 것이다.

신월의 방향은 서방(西方)이다.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모시는 신앙을 정토신앙(淨土信仰) 또는 아미타불신앙이라고 한다. 우리들이 있는 이 세계의 서쪽에 위치하는 청정불국토(淸淨佛國土)의 극락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아미타불 염불신앙으로서 서방정토극락세계를 염원하는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한다.

태고보우국사(普愚國師)·보조국사지눌(知訥)·나옹선사혜근(惠勤) 스님은 미타신앙을

색을 만들다.
색을 만들다.

중요시한 대표적인 고승들이다. 보우국사의 『태고화상어록』에는 미타신앙에 관한 몇 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사람마다 본성에 있는 큰 영각(靈覺)은 본래 생사(生死)가 없고, 예나 지금이나 신령하고 밝으며, 깨끗하고 묘하고 안락하고 자재(自在)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무량수불(無量壽佛)이다.”라고 하였다. 마음밖에 서방정토가 있고 그곳에 아미타불이 계신 줄 알았지만 수행이 더하고 더해질수록 극락세계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 모든 생명이 나무서방정토(南無西方淨土) 극락세계, 그 속에 있다.

(사) 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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