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중학법 11~56조

효능 스님.
효능 스님.

중학법 제11조부터 제14조까지는 비구가 마을에 들어가거나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고 앉을 때 큰소리를 내지 말고 낮은 소리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조문이다. 만약 속가의 남자라면 호탕한 기질로 크게 웃고 말하는 것이 흉이 되지 않으나 비구는 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자신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하기에 주위의 분위기에 휩쓸려 여법함을 잃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중학법이 출가자의 위의와 관련된 계율이다 보니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최소한 중학법이라도 지키고 있는가? 차라리 계율을 모르면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겠지만, 아는 것이 병이다.’ 언젠가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필자는 율사가 아니다. 그저 다른 스님들보다 계율에 대해서 조금 더 공부했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는 것에 관해서 상대적으로 부끄러움을 약간 더 느끼는 승려일 뿐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부끄러움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윤리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맹자도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라 했다.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로움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존재이기에 참으로 인간답기 위해서, 그리고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 할 감정 중 하나는 부끄러움이다.

중학법 제15조부터 제20조까지는 비구가 신체 중 일부를 흔들면서 재가자의 집에 들어가거나 앉아서는 안 된다는 계율이다.

사실 큰소리로 웃고 떠들고 몸을 조금 흔든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나겠나 싶기도 하지만 승려가 지켜야 할 여법함이란 재가자의 신심을 증장시키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이기도 하기에 재가자의 눈에 비구가 속인처럼 보이면 수행자나 속인이나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고 걸식을 받기도 힘들어져서 수행생활에 곤란함을 겪게 될 처지에 놓인다.

중학법 제21조부터 제26조까지 역시 비구가 속가에 들어가고 앉을 때의 행의 작법을 설하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승 자격의 기본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

마치 군인들처럼 양손을 허리에 차고 팔꿈치를 흔들거나, 벌꿀을 따는 사람이나 면사포를 쓴 신부처럼 무언가로 머리를 감싸거나, 도둑처럼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으면서 속가에 들어가거나 앉으면 안 된다는 조문들이다. 또한 속가 내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중학법 제27조부터 제56조까지는 공양과 관련있는 조문들로서 요약하여 언급하고 조문에 대한 설명은 일부만 하고자 한다.

공양을 받을 때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공손히 받고 발우를 주시하면서 받아야 하고 밥과 카레는 정양을 받아야 하는데 밥보다 카레를 더 많이 받아서는 안 되고 발우의 가장자리보다 더 높게 올라올 정도로 공양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을 먹을 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말고 발우를 주시해야 하며 가장자리부터 먹어서 가운데가 탑 모양이 되지 않게 먹어야 한다.

공양은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먹기 때문에 밥과 카레 등을 잘 버무려서 둥글게 작은 주먹밥 모양을 만들어서 먹어야 하며 밥이 입에 닿기도 전에 미리 입을 벌리거나 손을 입안에 넣어서는 안 된다.

필자도 스리랑카 있을 때 1년에 두세 번 정도 손으로 공양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밥과 카레를 적당히 버무려 둥근 모양을 만들고 손가락에 올린 후 중지를 밑으로 조금 내려서 엄지손가락으로 살짝 밀 듯이 입으로 넣으면서 제법 여법하게 공양할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야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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