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수행의 가치는 실제로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따라 그 척도가 달라질 것이다. 불교 전통에서 탐욕(貪慾), 진에(瞋恚), 혼침수면(昏沈睡眠), 도거악작(掉擧惡作), 의(疑)의 오개(五蓋)는 경행을 하거나 좌선을 할 때 마음의 장애를 일으키는 요소로 언급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정화해 나갈 수 있을까. 《유가사지론》<성문지>에서는 혼침과 수면은 경행을 통해서, 탐욕·진에·도거악작·의심은 좌선(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정화한다고 설명한다.

우선 경행으로 혼침과 수면의 장애를 정화할 때, ‘광명상(光明想)’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이 있다. 수행자는 마음 안에 광명을 수반하고 비추며 경행을 하면서 불·법·승·계·보시 등에 의해서 또는 신체에 대한 혼침과 수면의 단점과 연관된 계경, 응송, 기별, 풍송, 자설(自說), 인연, 비유, 본사, 본생, 방광, 희법(希法), 논의(論議)등의 정법들을 듣고, 수지한다. 나아가 큰 소리로 정법에 관하여 독송하거나 또는 타인들에게 해설하거나 또는 그 의미를 생각하고 비교하고 고찰하거나, 다방면에서 관조하는 방법이 중시된다. 이것은 현대의 불교인들이 걷기 명상을 할 때 도움이 될 법한 내용이다.

다음으로 좌선(명상)으로 탐욕(貪慾), 진에(瞋恚), 도거악작(掉擧惡作), 의심의 장애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이 가운데 탐욕과 진에의 장애로부터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강한 탐욕이 일어날 때는 제거하기 위해, 또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멀리하기 위해, 그는 결가부좌를 하고, 몸을 곧게 펴고 정념을 면전에 확립하고 앉은 후에 푸르게 변한 시체, 고름이 나오는 시체, 벌레가 들끓어 오르는 시체, 고름이 부풀어 오른 시체, 먹혀진 시체, 피로 얼룩진 시체, 뼈를 가진 시체, 연쇄를 가진 시체, 뼈의 연쇄를 가진 시체나 또는 광명상과 같은 선한 삼매의 관념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 방법은 부정관(不淨觀)으로 알려져 있으며, 육신에 대한 그릇된 관념상을 제거하기 위한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또한 좌선(명상)으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를 끊기 위한 방법론에서 계경과 응송, 기별, 풍송, 자설(自說), 인연, 비유, 본사, 본생, 방광, 희법(希法), 논의(論議)등 12부의 정법을 취한다는 점은 불교의 수행원리인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聞], 사유하고[思], 수행[修]하는 것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청문을 통해서 정법을 수지하고, 언어로 능통하고, 마음으로 잘 관찰하고, 지혜로 통달하여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소멸에 대하여 이치에 맞게 주의를 기울인다. 말하자면, 좌선(명상)을 통해서 탐욕과 같은 하나의 덮개(蓋)가 발생했을 때, 탐욕에 의한 감각적 욕망의 부정적인 측면을 인지한 후에 이미 일어난 장애는 집착하지 않으며, 끊고, 제거하고 멀리한다. 마음의 수번뇌를 작동시키고, 지혜를 미약하게 하고, 정신적 손해를 일으키는 장애에 의해 그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로부터 마음을 정화시키는 방법이다.

진에(瞋恚), 특히 분노의 마음은 보살의 사무량심에 해당하는 자애심을 수반하는 마음으로 대치한다. 좌선(명상)을 통해서 마음의 주의는 자애심에 두며, 미움과 미움의 관념상에 대하여 원한이 없고, 적대하지 않고, 괴롭힘이 없고, 크고 광대하고 한량없는 마음으로 분노의 마음을 정화한다.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자가 깨어있는 한 선품(善品)을 버리지 않고 항상 선법의 수습을 향해 노력한다면, 낮 시간 동안 경행으로 혼침과 수면의 장애를 정화할 때 주의를 기울였던 광명상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잘 포착되고, 반조된다. 비록 잠이 들더라도 수행자의 마음이 어두워지지 않아서 잠을 자는 동안에도 마음은 정화되는 것이다.

세간의 법들과 관련된 고통을 소거하기 위한 마음의 정화는 곧 세간의 욕망과 고통을 통해서 출세간으로 향하는 마음을 자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출리심을 향하는 마음은 보살이 중생의 고통의 무더기들을 관하며 비심(悲心)을 일으키듯이, 고통을 통해서 자신을 원만하게 하는 동시에 타인을 원만하게 하며 중생을 이익되도록 이끄는 동체대비의 마음을 증장시키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동국대학교 철학박사 ㆍ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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