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철이 되면 떠오르는 화두가 있다. 《벽암록》 제43칙인 동산(洞山) 양개(良价)화상의 무한서(無寒暑)이다. 어떤 스님이 동산화상에게 질문했다.

“추위와 더위가 닥치면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추울 때는 추위와 하나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와 하나가 되라.”

무한서를 제재로 다룬 소설이 있다. 『겨울의 유산』이다. 작품 속에서 무량사를 떠나는 화자에게 청안스님은 묻는다. “어떠한 곳이 춥고 더움이 없는 곳인가?” “추울 때는 나를 추위로 죽입니다.” “더위는 어떻게 해?” “나를 더위로 죽입니다.”

존경하고 흠모해 마지않던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재가해 절대고독을 경험하는 화자이기에 소년임에도 ‘추울 때는 추위로 이기로 더울 때는 더위로 이긴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완성은 화자가 아버지의 임종게의 의미를 풀이함으로써 마침표를 찍는다.

30년 동안 꿈의 집에서 놀았으니, 어려서부터 문무(文武)를 배운 것 공화(空花)와 같구나. 속절없는 이 육신 편안치 않고,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이요, 그림자여라. 나, 오늘 아침 이 육신을 벗고 공무(空無)로 돌아가니, 옛 부처의 집 앞에는 달이 밝구나. 다만 원적(圓寂)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한할 뿐이로다.

아버지의 입적게에서 ‘꿈의 집’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을 연상시키고,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과 그림자여라’라는 대목은 《금강경》의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의 입적게는 화자가 성인이 된 뒤에도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붙는다. 화자가 입적게의 의미를 푸는 것은 공교롭게도 자신을 닮은 아들을 낳은 후이다. 화자는 《증도가》의 한 구절인 ‘하늘에 빛나는 달은 어느 강에나 그 모습을 비추고 어느 강에나 비치는 달은 하늘에 있는 하나의 달에 담긴다.’는 말로 소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겨울의 유산》의 저자 다치하라 마사키는 한국인이다. 한국 이름은 김윤규(金胤奎). 안동 봉정사 승려였던 아버지에게서 일찌감치 불교경전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 일본으로의 이주를 경험했다고 기술돼 있는 것을 봤을 때 『겨울의 유산』은 저자의 자전소설일 것이다. 다치하라 마사키 혹은 김윤규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에 속하면서도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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