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우리 차산업문화의 미래를 꿈꾸며 1

새로운 변화 이야기 듣고 싶어
진실이 아닌 말은 영향력 없어

경주 황룡골에서 접하는 건강한 아침식사
경주 황룡골에서 접하는 건강한 아침식사

사람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리고 변화하고 성장하며 궁극을 향해 간다. 차는 안그런가? 차 역시 완전체는 아니다. 사람이나 인성이 부여된 차(물아일체의 차원에서 하는 날이다)나 모두 그런 완성을 향해 어쩌면 정해진 계획에 따라 나아갈 따름이다. 물론 '현재'의 분수에 만족할 때의 이야기이다. 말은 늘 이렇게 하지만 한순간은 몰라도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좀 더 긴 호흡의 시간 동안 제대로 만족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가끔 술이 아닌 차를 찾아 한숨을 돌리는 것을 보면 차는 정말 좋은 친구이다. 차벗도 필요하지만 차 자체가 벗이기도 한 이유이다.

가끔씩 책을 읽다 보면 아직 부족하거나 전문가가 아니어서 책 쓰기가 어렵다는 ’저자‘들의 변을 듣는다. 필자도 십 여권의 책을 냈지만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 때로는 어떤 글을 보면서 ’이런 유치한 글을 쓰다니‘ 또는 ’어 이런 좋은 생각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라는 9:1 정도의 확률이 담긴 감정적인 평가를 하면서 정작 그 글이 다름 아닌 자신의 글임에 소스라치게 놀라기까지 하는 넌센스를 겪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너무 다작을 했나 보다. 애궂은 지적 호기심 때문에 늘 새로운 분야를 탐색한다. 프로 전문가는 아니면서 심지어 아마추어 애호가도 아닌 문외한으로 그 출발점에 담담하게 설 용기 아니 만용을 부리곤 한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모를 때도 많다.

선수와 심판은 달라야 한다. 선수가 심판이 되거나 심판이 선수가 되면 그 순간부터 적어도 그가 쓴 ’글‘은 사랑이 아닌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글쟁이들이 전문가로 둔갑하면서 그들의 입이나 글에 온갖 불평과 비난만이 맴도는 것도 그 근거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내가 더 그런 것 같다. 까닭에 그런 걱정을 스스로 하는 마음으로 늘 그냥 초보자 입장에서 나름 객관적인 균형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2천여 년 전 그분의 제자처럼 굳이 겸손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진주 한 찻집에서 만난 보이 노차 “황인”
진주 한 찻집에서 만난 보이 노차 “황인”

세상에는 은둔고수가 많다. 누구한테나 한방은 있다. 그러고 보니 정작 없는 것은 나 혼자뿐인가 싶기도 하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 시작되는 다섯 살 때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서울 종로 조계사에 가서 무진장 스님의 법문도 듣고 절 구석 어딘가에서 자주 팥죽을 사 먹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관음전 근처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큰스님의 법문은 그냥 지루한 자장가였다. 이렇게 구구하게 설명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은 표기해도 그때의 시절 인연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불연(佛緣) 때문에 무려 반세기 전부터 차를 접했고 대학에 들어간 1988년부터 줄기차게 좋은 차를 마셨다. 그때 먹은 차 가운데 하동 조태연가 막내아들 고 조성기 선생의 무향차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 것으로 따지면 차에 관해서는 전혀 문외한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차도 살청을 하듯이 우리도 쇄청을 해야 잘 익을 것 같은 공기를 읽었기 때문일까?

말은 누구나 90분 정도는 잘하는 것 같다. 어떤 분은 90분씩 10번도 잘한다. 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그 말은 번복이 된다. 자신들은 자신에 차 있지만 정작 만나려 간 사람의 입장에 서면 ’글쎄올시다‘라는 생각에 늘 온몸의 혈기는 그냥 축축 늘어져만 간다. 그리고 점점 더 빠질 것도 없어 보이는 수렁에 잠기면서 끝없는 지루함에 쌓인 피곤도 더해만 간다.

삶과 차에 진지한 전문가에게서 늘 새롭게 변화하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이미 난 ‘당신들이 외우고 있는, 어쩌면 몇천 번 떠들어서 이미 당신들이 된 그 말들, 어쩌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왜곡된 말들’에 더이상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받고 싶지 않기에 그 지루함이나 어쩌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또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수행자의 삶을 사는 몇몇 큰스님과 연구자 그리고 장인들이 더욱 빛나는 이유이다.

‘차’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가운 사람들이었다. 멀리서 보면 의젓하고 고귀한 격조 있는 분들이었다. 그게 가까이 갈수록 실상은 달라져 힘들기만 하다. 나만 힘든 것인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고 굳이 가까이 갈 것도 멀리할 것도 없는 분들이었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지겹고 멀리 가면 갈수록 욕이나 하는, 어쩌면 듣게 되는 그런…. 무척이나 부끄러운 것은 그런 사람들 가운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혹독한 자아비판이라는 통과의례를 지나고 나서야 요즘은 가끔씩 용기를 넘은 똘기를 부려서 차인들에게 감히 한마디씩 한다. 나도 벌써 많이 컸나 보다. 걱정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남을 향한 표창이 아니라 스스로에 던지는 독설 같은 덕담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적어도 필자는 그런 생각조차 없이 비난을 던지진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2편에 계속) 하도겸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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