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면서 식량과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여러 나라의 시급한 일이 됐다. 많은 나라에서 식량의 불안정한 수급은 사회 불안정과 정치적 격변, 심지어 내란 또는 내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흔들리지 않는 법칙처럼 작용했다.

오래지 않은 사례로 ‘아랍의 봄’을 불러온 자스민 혁명을 들 수 있다. 2011년 러시아는 기상악화로 밀 생산량이 감소하자 수출을 금지했다. 밀값이 70% 넘게 치솟았다. 주식인 밀을 수입에 의존하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밀을 확보하지 못했다. 튀니지도 그런 나라 중 하나였다. 마침 노점상을 하던 청년을 경찰이 폭행하자 민심이 폭발했다. 그 결과 대통령은 망명길에 올랐으며, 혁명의 불길은 이웃나라로 번졌다.

이같은 격변을 겪은 나라들은 대부분 정치 불안에 시달리며, 이 여파로 사회기반시설이 무너졌다. 또 극심한 국론 분열로 큰 상처를 입었다. 몇 나라들은 복구는커녕 10년이 넘도록 정쟁으로 날을 보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먹을 것이 넘쳐나는 풍요를 누리고 있다. 몸에 좋다는 것을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다. 미식, 탐식, 과식의 시대다. 그런데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식량에 있어서는 후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4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2%, 식량자급률은 45.8%이다. 곡물자급률은 쌀, 보리, 밀, 옥수수, 두류, 서류 등 식량으로 쓰이는 품목 외에 옥수수같이 사료용으로 쓰이는 곡물을 포함한다. 2019년 자급률을 주요 품목별로 보면, 쌀 92.1%, 밀 0.7%, 콩 26.7%, 보리 47.7%, 옥수수 3.5%로, 쌀 외에는 자급률이 매우 낮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자.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0년 세계 22개 나라와 유럽연합의 2016~2018년의 평균 곡물자급률을 산출해 발표했다. 조사 대상 국가의 평균 곡물자급률은 100.8%였다. 우크라이나와 호주가 각각 302.8%, 251.7%로 최상위에 속했다. 캐나다 177.4%, 미국 124.7%, 중국 98.9%.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와 함께 최하위권에 머물렀으며, 세계에서 일곱 번째의 곡물 수입국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유닛이 2019년 식량안보지수를 발표했다. 이 지수는 식량공급 능력, 식품 안정성 및 질, 구매능력을 기준으로 삼은 것인데, 상위 10개 나라는 싱가포르, 아일랜드, 미국, 스위스,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캐나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다.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13개 나라 중 29위로 나타났다. 나쁜 성적표는 아니지만, 식량을 무기화할 수 있는 상황, 즉 기후위기, 전쟁, 식량 자본의 움직임을 우리나라가 통제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기후위기는 상존하는 위협이며, 전쟁이 미치는 상황을 지금 겪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많은 나라에서 식량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으며, 가격 상승을 불어오고 있다. 식량을 상품화하는 자본은 대규모 사재기를 해서 가격을 쥐락펴락하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식량시장의 금융화’라고 부른다.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가 기후변화와 지속 가능성의 위기 속에 2050년대에 100억 명을 먹일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공급 측면에서 불가능하다”(임송수 고려대 교수, 식품자원경제)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첫 번째로 꼽는 것이 농지를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지는 가장 기본적인 생산 기반이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1996년 헌법 104조에 식량의 안정적 공급, 자연자원 보전과 경작 경관, 인구의 분산 정착을 명시했다. 우리나라도 헌법에 이같은 내용을 넣자는 주장이 나온지도 꽤 오래 되었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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