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감국사 충지, ‘천지일향’, ‘청천’, ‘한중자경’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정진
천지가 동근임을 깨닫고 작시
늘 보는 산이지만 또한 새로워
탈속무애한 선사의 경지 매력

 

원감국사 충지(1226∼1292)는 수선사(현 송광사)의 제6세 국사로, 선원사의 원오국사(1215~1286)에게 출가하였다.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거미줄이 얼굴을 덮고, 무릎에 먼지가 쌓여 새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용맹정진을 하였다. 어느 날, 선사는 깨닫고 보니 선재동자처럼 선지식을 찾아 다녔던 수고로움이 더 이상 필요 없으며, 천지가 동근이고 하나의 법신향임을 깨달았다.

티끌과 정토가 모두 한 암자,
방장실을 떠나지 않고도 남방을 두루 순방했네
선재동자는 왜 그리도 심한 고생을 자처하여
53선지식을 찾아 110성을 차례로 찾아갔던가

塵刹都盧在一庵 不離方丈遍詢南
善財何用勤劬甚 百十城中枉歷參  -〈天地一香〉

예토와 정토가 둘이 아님을 알고, 방장실, 즉 한 장의 공간을 벗어나지도 않고 110성을 순방한다는 것은 활안(活眼)한 선승의 오도의 경지이다. 그 후 순천 정혜사에 주석한 선사는 산사 주위를 감싸고 있는 푸른 산 빛과 시냇물 소리를 통해 ‘무정설법’의 대의를 이렇게 노래했다.

계족산 봉우리 앞 옛 도량
이제와 보니 유달리 푸른 산 빛.
물소리 그대로 부처님 말씀이니
도를 일러 무어라 설할 것인가.

鷄足峯前古道場 今來山翠別生光
廣長自有淸溪舌 何必喃喃更擧揚  -〈聽泉〉

늘 보는 산이지만 산은 늘 새롭고, 늘 듣는 물소리라 싫증이 날 법도 하지만 들을 때 마다 선율은 색다르다. 그것은 산의 모양이나 물소리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날마다 산을 봐도 볼수록 좋고
물소리 늘 들어도 싫지 않네. 저절로 눈과 귀 맑게 트이니
물소리 산 빛 속에 마음 편하네.

日日看山看不足 時時聽水聽無厭
自然耳目皆淸快 聲色中間好養恬  -〈閑中自慶〉

분별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자연과 합일되어 한가한 산중생활을 즐기는 모습이다. 한편, 선사는 임종을 앞두고 존재의 부름에 귀의하는 즐거움을 ‘고향에 돌아가는’ 즐거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살아온 세월 돌아보니 육십칠 년인데
오늘 아침에서야 만사가 끝나도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훤하게 열렸으니
앞길은 분명해 헤맬 일이 없겠구나.
손에 겨우 지팡이 하나 들었을 뿐이지만
가는 길에 다리가 덜 피로할 것 같아 또한 기쁘네.

閱過行年六十七 及到今朝萬事畢
故鄕歸路坦然平 路頭分明曾未失
手中纔有一枝筇 且喜途中脚不倦  -〈臨終偈〉

저승길을 마치 소풍가듯 떠나가고 있는 선사의 담대한 모습에서 고향을 향해 가는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듣는 듯하다. 비록 지팡이 하나이지만 가는 길에 다리도 덜 피곤하고, 훤하게 뚫린 길이어 헤맬 일이 없겠다는 언설에는 선사의 탈속 무애한 모습이 담겨 있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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