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말차 맷돌의 명인, 차기정 선생 2

일본서 불모 활동하다 귀국해
김해서 카페 겸한 전시관 운영

차를 우리는 차기정 선생.
차를 우리는 차기정 선생.

김해 시내에는 순수공예삼보(대표 백경자)라는 차기정 선생의 전시관이 있다. 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다반사카페’라고 하며 맷돌 커피와 맷돌 말차를 주로 다루고 있다. 공장은 가야사의 중심 가운데 하나인 김해시 생림면 무척산 중턱의 모은암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1983년부터 불상조각, 한옥(사찰)시공을 비롯하여, 목공예·옻칠공예·도자공예 등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는 법송 차기정 선생을 일본에서는 불모(佛母)라고 부른다.

법송 선생은 16세 되던 어릴 때부터 일본 나고야에서 부처님 조각 즉 불상이나 불단 등을 직접 제작하다 1999년 그러니까 25년 만에 귀국한 장인이다. 사찰이나 차계를 비롯해 일본의 전통사회 네트워크에서는 어쩌면 우리보다 불교사상이 더 깊이 영향을 끼쳐서 법송 선생은 남다른 대우를 받는다. 관세음보살, 사천왕상 등의 신앙이 깊은 불보살·천왕의 상을 조각하고 최근에는 석불까지 직접 바위에서 깎아낸다. 옻칠작업이나 칠보 단청은 물론 불교회관이나 사찰 거주공간의 시공 건립까지 직접 해내는 법송 선생은 이미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도 이름난 목수이다. 대목과 소목을 겸비한 그의 능력은 그에 멈추지 않고 차실 인테리어까지 확장된다.

그의 직업 아니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호칭에는 그렇게 늘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다재다능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법송 선생은 옻칠 목기로 만든 다구도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다. 차완이나 차호는 물론 차도구들이 나무를 소재로 하는 순간 도자기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변신을 시작한다. 그 모양은 차치하고서라도 차도구에 대한 기능과 효율은 정말 놀랍다. 그리고 그런 변신이 법송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서 다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점에도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예로부터 도예가나 조각가는 자신의 생각을 손으로 작품에 표현하는 분이라고 했나? 뜻을 세우고 그런 생각을 작품에 100% 아니 200% 그 이상 구현하는 모습이 놀랍기 그지없다.

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차기정 선생.
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차기정 선생.

 

법송 선생은 명인은 자기가 만든 기물에 대하여 이론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물을 왜 만들었겠는가? 차는 즐거움이다. 일보의 센노리큐가 강조한 화경청적의 와비사비 정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차인들을 자신에게 도구를 맞추지 않고 거꾸로 그릇에 몸을 맞추는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그릇을 비롯하여 차도구는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이며 차생활의 동반자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아무런 생각없이 사용하면 안된다. 예를 들어 다완은 45도로 기울여도 넘어지지 않게 안정감 있게 만들어야 한다. 차선으로 격불을 해도 거품은 빨리 일어나되, 물이 밖으로 안넘어가야 하고, 마실 때는 거품이 잎에 묻지 않아야 한다. 옻칠은 손을 대고 지문이 남지 않게 해야 한다. 또한 다른 옷칠과 달리 법송의 차호 등은 400도에서도 변하지 않으며 200도를 넘는 기름에도 녹아내리지 않는다. 참 신기할 따름이다.

차호를 쓰다 보면 늘 쏟아져나오는 물의 양 즉 출수, 기울여도 물이 새지 않는 금수, 그리고 고른 물줄기의 통제 즉 절수의 3가지가 문제가 된다. 특히 절수가 안되면 방울 방울 보기 불편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때문에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해지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차호 내부에 대한 공구를 통해 완벽하게 절수처리가 된다. 방울로 떨어지는 물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다.

차기정 선생이 옥가루로 만든 차호와 찻잔.
차기정 선생이 옥가루로 만든 차호와 찻잔.

 

예로부터 옷칠을 해서 만든 물항아리는 오래 물을 담아두어도 신선하다는 말이 있다. 옻에서 나온 파장이 물에 영향을 끼쳐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물맛이 웬만한 약수보다 못하지 않다. 그래서 옻칠을 한 나무 찻잔을 하나 사용해 본다. 물은 담은 나무, 수기를 갈무리하는 목기운의 운행이 참 신선하고 놀랍기만 하다. 찻잔 안쪽에 삼베로 바탕을 잡아서 금박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물이 찻잔에 잠기는 순간 내 마음의 호수 역시 눈부신 금빛으로 출렁이게 된다.

차시 하나에도 정성과 정교함이 함께 한다. 차를 뜨는 부분에 쉽게 알아보기 힘든 미세한 볼륨이 있다. 말차가 다관에 미끄러지듯이 떨어지게 하는 요소이다. 중심이 바르게 잡혀서 말차잔에 얹어놓아도 엎어지지 않는다. 무게 중심까지 맞추는 이런 균형감은 차칙에도 반영된다. 차칙에 차를 놓고 차호 뚜껑을 열어 올리고 기울이면 차는 그냥 스스로 차호 속으로 잠겨간다. 차례대로 다이빙을 하듯이 아니 수영장으로 발부터 천천히 넣듯이 차례로 물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도겸 전법사

※법송 차기정 선생 : 1972년 홍익공예학원을 1기로 졸업하고 같은 해 조선 공예에 입사했다. 1978년 가고시마 불단에서 연수를 하고 1983년 4월에 법륜 공예사를 창업했다. 1999년 순수공예삼보를 창업하고 2005년 제8회 전국관광기념품 공모전 대상, 2006년 제4회 국제차문화대전 ‘국제다구디자인공모전’ 대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