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혜심 국사, ‘친견’, ‘인월대’, ‘임종게’

 

고려불교 중흥의 기틀을 마련한 진각혜심(1178∼1234) 국사는 스스로의 호를 무의자(無衣子)라 했듯이, 일체의 집착을 놓아 버리고 걸림이 없이 맑고 텅 빈 삶을 살다 간 전형적인 선승의 모습을 보여 준다.

혜심은 출가 후 3년간의 고행정진을 마친 어느 가을 날, 몇몇 도반들과 함께 억보산(지금의 광양 백운산) 백운암에 머물고 있는 스승 지눌을 친견하러 갔다. 산 정상부근에 있는 암자를 두고 땀을 식히고 있는데, 스승의 시자 부르는 소리가 송림 사이로 은은하게 들려온다. 그리고 바람결에 스며오는 차 향기를 맡으며 혜심은 이렇게 읊는다.

시자 부르는 소리 솔숲 안개 속에 울려 퍼지고 呼兒響落松蘿霧
차 달이는 향기는 돌길 바람타고 풍겨오네 煮茗香傳石徑風
흰 구름 드리운 산 아래 길에 접어들을 뿐인데 才入白雲山下路
이미 암자 안의 노스님을 몸소 뵈었네 已參庵內老師翁 - <친견>

안개 낀 산사의 노스님이 시자를 부르는 ‘소리’와 암자에서 차를 달이는 향기가 바람결에 스며오는 ‘다향’은 절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아가 그것은 청각적 이미지와 후각적 이미지들을 융합함으로써 멋진 선적 미학을 얻고 있다. 시자 부르는 ‘소리’와 ‘다향’만으로도 이미 스승을 뵈었다는 대목은 ‘염화시중’의 한 소식이다.

우뚝 솟은 바위산은 몇 길인지 알 수 없고 巖叢屹屹知機尋
그 위 높다란 누대는 하늘 끝에 닿아 있네 上有高臺接天際
북두로 길은 은하수로 한밤중에 차 달이면 斗酌星河煮夜茶
차 달이는 연기 싸늘하게 달 속 계수나무 감싸네 茶煙冷鎖月中桂 - <인월대>

한밤 중 화자는 누대에서 다로에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인다. 그런데 차를 달이는 물은 국자 모양의 북두성으로 길은 은하수 물이고, 차를 달이는 연기는 둥근 달 속의 계수나무를 싸늘히 감싼다. 이것이 바로 ‘무법지법(無法之法)’ 혹은 ‘언외지의(言外之意)’를 강조하는 선의 본질과 맞아 떨어진다. 이처럼 혜심은 차를 맑음[淨]과 비움[虛]의 매개물로 인식하고 있다.

혜심은 말년에 단속사(산청군 단속면 소재)에 주석하다 56세에 수선사로 다시 돌아와 이듬해 화산 월등사로 가 제자 마곡에게 <임종게>를 담기고 원적에 들었다.

온갖 괴로움이 이르지 않는 곳에 衆苦不到處
따로 한 세계가 있으니 別有一乾坤
거기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且門是何處
아주 고요한 열반의 문이다. 大寂涅槃門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한 고통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하지만 고통이 미치지 않는 곳은 아주 고요한 열반의 문이다. 반야심경에도 설하고 있듯이, 그 문에 들어서면 일체의 고액을 건너게 된다.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에게 오고 감이 본래 없다. 그래서 본질과 현상을 하나로 보는 색심불이(色心不二)를 깨달은 혜심의 입멸의 순간은 곧 온갖 괴로움을 여윈 큰 적멸의 열반인 것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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