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말차 맷돌의 명인, 차기정 선생 1

4년 전 부산박람회서 처음 공개
‘가루녹차의 대명사’ 입소문 퍼져

차기정 선생이 만든 녹차맷돌.
차기정 선생이 만든 녹차맷돌.

차인을 만나다 보면 정말 세상에 숨은 고수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를 몰랐을 때는 자기가 최고 같고 그렇기에 ‘우물안 개구리’ 시절이 있었을진대, 지나고 나면 다 당시의 객기일 따름인가 보다. 고수들을 찾아서 만나다 보면 자기 자랑 삼매경에 빠진 나르시스 ‘도인’들도 많이 본다. 또는 다른 고수들의 ‘옥에 티’만 말하다 하룻밤을 새는 분도 만난다. 다들 은둔 고수의 명인 또는 장인이겠지만, 왠지 아직 ‘개구리’일지도 모른다고 동행이 말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잘 모르겠다. 자기 자랑하면 또 어떻게 남 욕하면 또 어떤지. 그리고 그게 실력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인성이 또 차 맛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표준도 없어서 쉽게 말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하지만 차를 만드는 농부의 마음, 즉 농심이 차의 시작이라서 마시는 사람, 물 끓이는 사람, 우리는 사람, 나누는 사람 등등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마음이 또 무관하다고만 할 수 없기에 ‘다도’의 길은 험난하나 보다.

말이 두서없이 길어졌다. 가끔 고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단한 매력을 가진 분이 있다. 누구나 60분 정도는 최고의 강의를 한다. 하지만 문답이 이어지면 실력, 즉 바닥이 금방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일단 강의를 경청한 후에 강의 내용을 극찬한다. 그리고 서서히 그 빈틈을 하나, 둘씩 콕 집어 질문을 시작한다. 그런 질문 공세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길을 여는 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이 오늘 만난 법송 차기정 선생이다.

말차로 만든 아이스크림.
말차로 만든 아이스크림.

원래는 옻칠 목공예로 유명한 분이라는 것도 만나서 알았다. 늘 과문한 탓인지 유명인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목공예로 수많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비롯한 거의 모든 상을 휩쓸다시피 한 분이다. 2012년 문화재 수리 기능 자격을 부산에서 취득했으며 불상은 물론 전각까지 사찰 건축에도 매우 정통한 분으로 거기에 옻칠까지 하니 절을 비롯한 한옥을 만들려는 분께는 원스탑 서비스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장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근래는 옥돌을 미세하게 분쇄해서 만든 가루, 즉 옥분(玉粉)을 압착하고 성형하여 찻잔은 물론 차호까지 차도구를 만들고 있다. 옥분으로 만든 다구들은 유약을 따로 바르지 않고 옥석의 느낌과 기운 그대로 차맛을 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근래 만든 말차 맷돌은 우리는 물론 중국조차 범접하지 못했던, 일본의 말차를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와 같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말차 맷돌을 쓰면 가정집에서도 차 원료만 있다면 신선하게 바로 뽑아서 다완에 풀어 마실 수 있다.

직접 우유 거품을 만들거나 간단한 도구만 사도 녹차라떼는 몇 분 만에 뽑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거의 포화상태에 빠진 카페 시장에서 말차 맷돌에 대한 주문이 폭주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직접 맷돌로 갈아먹는 체험형이나 팽주가 갈아서 뽑아주는 퍼포먼스가 MZ세대를 비롯한 차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계식 말차 맷돌.
기계식 말차 맷돌.

2018년 부산국제차공예박람회에 처음 공개된 이 말차 맷돌은 차인들에게는 이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신선한 말차’ 또는 가루녹차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말차 제조업체까지 적지 않게 사서 건너간 이 맷돌을 우리나라의 한 업체에서 판매해 대박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멈추지 않고 차기정 선생은 전기 모터를 달아서 손으로 돌리는 수고로움도 덜게 했다. 위생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소음을 줄인 탓에 보고만 있어도 신기하다.

말차를 만드는 찻잎은 우리가 우려 마시는 찻잎과 좀 다르다. 차밭의 관리부터 다른데, 이른바 차양막의 사용에서 커다란 차이가 발생한다. 수확철이 다가오면 햇볕이 찻잎에 간접적으로 들게 하기 위해 검은 색 또는 대나무 등으로 만든 차양막을 덮는다. 차양막을 사용하며 떫고 쓴 맛을 줄이고 달고 부드러운 향미가 나는 찻잎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어렵게 만든 찻잎으로 말차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맷돌이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세계 10대 건강 음료로 인증된 녹차. 그 가운데 매니어나 차인의 초미의 관심을 끄는 말차의 깊은 맛. 일본만이 독점했던 그 말차에 도전장을 내게 한 우리의 맷돌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창원의 다반사카페로 법송 선생을 만나러 가자, 선생은 바로 말차 라떼를 낸다. 그냥 달콤한 설탕이나 연유의 맛이겠지 하고 마셨다가 다른 곳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맷돌 말차의 매력을 느끼게 된다. 깜짝 놀라 그냥 말차를 부탁해서 다시 먹어보고는 더 놀란다. 결국 말차 맷돌을 보고 정말 아주 곱게 간 가루를 손등에 놓고 비비고 나서야 조금씩 납득이 가고 이해도 간다. 초정밀하게 분쇄된 녹차 가루에 그 비밀이 있었던 것 같다. 하도겸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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