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석한 하상연 선생과 하동의 고려다원 3

1991년 귀국, 제다업 본격 시작
차남은 옥천명차사 요산당 운영

석한 하상연 선생.
석한 하상연 선생.

 

하동에서 덖음차를 만드는 분들 대부분은 어릴 적에 방안 화로에서 우린 잭쌀(작설의 화개 지역 사투리, 전통적인 방식의 발효차)에 사카린(예전 설탕의 대용품)을 넣어 마셨던 추억을 말한다. 감기가 들었을 때는 돌배나 생강까지 넣어서 마신 고뿔차 등도 이런 향수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 조태연가에 이어 조금씩 찻잎을 채취하여 제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산 다농 하상연 선생도 차나무 묘목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차밭을 일구고 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하상연 선생은 손수 고안한 전기 가마솥으로 나름 덖어 익히고 덖어 말리는 ‘손덖음 녹차’의 기틀을 세웠다고 장남인 하서룡씨는 전한다. 그렇게 덖음 녹차를 만들면서 전통 발효차라고 할 수 있는 ‘잭쌀차’의 계승 발전에도 관심을 가졌다. 1980년초가 되면 하상연 선생은 몇몇 남지 않은 제다기술을 알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 지리산 일원과 남도 지역의 산사 들을 돌아다녔다. 고려다원의 녹차와 발효차는 그런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장남 하서룡씨는 선친을 도와 자연스럽게 가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제다’를 접했다. 하지만 그런 ‘제다’를 업으로 할 생각은 처음에는 없었던 같다. 하지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한 후 잠시 머물던 대만에서 접한 중국의 차문화와 산업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대만성 차업개량장장과 대만대학교 교수를 지낸 오진택 교수의 논문집을 접한 후에 그의 인생은 많이 바뀌게 된 듯하다.

엄청난 중국의 차문화와 차산업의 모습은 우리나라 특히 하동의 차문화와 차산업에 대한 자연스러운 비교로 가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부러움과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을 교차하게 하였다. 1991년에 귀국 후 제다업을 전업적으로 선택하게 된 하서룡 대표는 선친이 만들어 놓은 위업을 이해하게 된 것도 이즈음의 일이라고 술회한다.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는 물론 영양학, 식품가공학, 생물학, 생리학, 인체해부학 등등 수많은 기초학문을 인문학적인 토대위에 풀어놔야 하기에 정말 쉽지 않다’고 전한 하서룡 대표는 2000년에 세상을 버린 선친을 매우 그리워하며 그 위업을 따르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그 결과 2002년 국제 명차 대회 은상과 2003년 대한민국 올해의 명차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상을 받았다.

장남 하서룡 대표.
장남 하서룡 대표.

 

그리고 그 동생인 하구씨 즉 옥천명차사 요산당 대표 역시 만만치 않다. 선친인 이산 선생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기 위해 하구, 이은경 부부가 만드는 요산당의 고려차는 하동 차의 맛과 멋을 담은 몇 안되는 덖음차를 만들고 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데 장남 하서룡씨 부부는 늘 동생이 더 뛰어나다고 자랑을 한다. 장남을 편애(?)하는 서부 경남지역에서 장남이 차남을 추켜 세우는 일은 그리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런 형제간의 우애 역시 선친 이산 선생과 학교 선생님을 오래 하신 어머님의 인품과도 무관치 않을 듯 싶다.

현재 요산당에서는 고려다원과 마찬가지로 녹차, 홍차, 청차, 황차, 흑차 등의 육대다류를 다 만들고 있다. 선친의 뜻을 이은 요산당의 고려차 역시 2002년 이래 수많은 상을 휩쓸고 있다.

솥에서 제대로 덖어 익히며 말리는 과정은 직접적인 연관성은 찾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하동 구례 남원 등의 제다 명인들의 모습에서 자주 비춰진다. 손쉬운 열풍 또는 냉풍 건조나 온돌방 건조 대산에 솥에서 길게 덖어 말려서 만든 고려다원과 요산당의 차의 색향미는 맑기만 하다. 그리고 우려낸 다음의 찻잎을 보면 다시 살아서 숨 쉬는 모습이 보인다. 솥 안에서 덖고 말린 차의 특징은 이런 것일까?

석한 하상연 선생께서 생전에 그토록 열망했던 남북통일. 그 길고 험난한 통일의 길을 걷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만나고 6.15 남북공동선언도 이뤄졌다. 판문각에서의 만남은 물론 과거에는 꿈꾸는 것조차 금지된 일들이 벌어지는 이 세상은 석한 선생이 그리던 그 세상일까? 세계정세 속에서 늦춰지고 미뤄져 가는 통일의 과정이 마치 아직도 우뚝 서지 못한 우리 차문화와 차산업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마음이 조금 찹찹하기만 하다. 세계사에서 통일된 우리 한민족의 새로운 역사가 K-pop의 기세와 함께 그리고 K-tea도 함께 나아가는 그런 세상이 성큼 다가오기를 기대해본다.

동지들과 후배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손수 붓으로 쓴 글들을 흔쾌히 나눠주며 뜻을 전한 아름다운 사내 석한 선생의 서예글처럼 우리 차문화의 진면목을 우리가 얼른 깨쳐야 하겠다. 약발효차인 청룡조 한잔하면서 뜻을 전해본다. 하도겸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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