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별로 풀어가는
천연염색 이야기⑥–망종
원철 스님

‘망(芒)’ 대신 ‘망(忘)’ 자 사용하기도
오행 상 괘상으로 중화리(重火離) 괘
뜨거운 정열이 넘치는 청년의 시기
봉황의 높은 이상을 향해가는 시절

주재학 염색
주재학 염색

 

한여름의 초입인 망종(芒種)은 24절기 중 9번째다. 까끄라기 망(芒) 대신에 잊을 망(忘) 자를 사용하기도 했다는데, 시기적으로 보리 베랴 모심으랴 너무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농사일 마치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바쁘다는 뜻이 들어 있을 것이다. 망종에는 보리 베기와 모내기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거두고 한편으로는 심는다고 해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과 함께 보리를 먹고 볏모는 자라 심는다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쌀이 귀하던 시절 보릿고개 넘던 시절 배고픔의 시절 보릿고개 이야기는 추억의 한편으로 넘어가고 지금은 4대 작물에 들어가며 건강식으로 보리를 찾기도 한다. 동의보감에 이르길 보리는 성질이 따듯하고 독이 없으며 기를 보하고 비위를 조화롭게 한다. 설사를 멎게 하며 허한 것을 보한다. 따뜻한 성질로서 몸을 덥혀 주는 데는 보리가 좋다고 한다. 여기서 보리의 성질은 따듯함과 차가움을 같이 가지고 있다. 보리로 만든 맥주, 보리차 등은 차가운 성질로서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좋겠지만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는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풋보리를 베어다 보리 그을음을 해서 먹는 풍속이 있었다. 보리는 절기별로 날씨점을 보기도 하는데 망종에 하늘에서 천둥이 치면 한해 농사가 좋지 않고 대신에 우박이 내리면 좋다고 여기기도 했다.

망종(芒種)이 들어 있는 음력 오월(午月)은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달이다. 한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계절이다. 색으로는 적색이다. 적색은 정열이다. 따듯함이다. 기쁨이다. 명랑활달함이다. 정열을 향해 치달아야 하는 시기이다. 오행 상 괘상으로는 중화리(重火離) 괘가 된다. 남쪽이면서 붉은색이 된다. 중화리 괘상은 뜨거운 열정이 두 개나 붙어 있으니 크게 도전하는 기상이다. 너무 길길이 날뛰면 좋은 것이 아니니 붉은 적색을 만든다고 너무 시뻘겋게 물들여 놓으면 색이 이지러진다. 부드럽고 따듯하며 유순해 보이는 색감처럼 중화된 적색이어야 한다.

방향으로는 남쪽이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사신도에 등장하는 붉은 봉황 남주작(南朱雀) 남쪽의 색 붉은 색, 딱 절반의 적색, 그런 색이다. 중화리의 괘가 주역 상경의 64괘 절반의 30번째 괘상처럼 오행 상 적색의 자리 남쪽이다. 계절로도 절반의 자리에 다가와 있지 않은가. 이래서 적색은 너무 진해도 너무 약해도 안되는 중화의 적색이어야 한다. 다른 색은 섞지 않고 적색과 적색이 더해지는 그런 붉은 적색이 되어야 가장 아름다운 색이 된다.

모본단 염색
모본단 염색

말(午)은 겁이 많은 동물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서서 잠을 잔다. 길길이 날뛴다는 말은 바로 오화(午火)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띠는 역마살이 있네 하는 소리도 말은 가두어 놓으면 안되는 이유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말우리에 가두어 놓게 되면 말이 할 일을 못하는 형상이 되어버리니 쓰임새가 없어 병든 말이거나 늙은 말이 된다. 자고로 말은 힘차게 달려나가는 형상이 가장 말다운 모양이다. 청춘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힘차게 도약하는 기상으로 열정이 시들지 않는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왕성한 의지력과 열정을 발산하여야 한다. 말 오화(午火)가 상징하는 여름의 초입은 5월이며 망종지월(芒種之月)이다. 저 드넓은 초원을 질주하는 말을 상상해보면 활동적이고 역동적이고 활발한 기운이 전해져 온다.

오월(午月)은 정열이 넘치는 청년의 시기다. 푸른 색 청춘의 꿈이 뜨거운 열정의 붉은 색으로 변화하면서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시기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일도 많고, 변화도 많은 시기다. 방향으로는 정남쪽을 향하여 가고 있다. 한낮의 태양이 뜨거운 시간 오월(午月), 달리는 말처럼 힘차게 활동하는 시절, 태양이 한낮에 환히 비추는 시간이다. 심장이 뜨거운 열정을 가진 청년의 기운으로 봉황의 높은 이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시절이다.

안료는 외부충격으로 색 탈락

신앙 측면에서 ‘경면주사’ 사용

대각국사 25조대가사도 홍가사

승속 함께 전통문화 이어가야

붉은 색은 잘 변한다. 주변 조건에 의해 다양한 색으로 변화를 보여 준다. 천연염색에서 붉은 색을 내는 염료로 소목, 홍화, 꼭두서니, 코치닐, 락 등이 있으며 안료로는 붉은색 주사, 황토, 대자석 등이 있다. 소목이 가지고 있는 붉은 색은 다색성이라 하여 매염에 의하여 다양한 적색으로 나타난다. 주변 조건에 의해 금방 변해 버리는 것을 다색성 염료라 칭한다. 광물성 안료인 주사(朱砂)는 수은으로 이루어진 붉은 색의 황화 광물이다. 안료의 특성은 색은 변하지 않지만 외부 충격에 의해 탈락되는 현상으로 색이 떨어져 나간다. 염료와 안료가 갖고 있는 다른 점이다. 옛부터 악귀는 붉은 적색을 싫어해서 붉은 적색은 악귀를 쫓고 행운을 부르는 효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앙적인 의미를 반영해 경면주사(鏡面朱砂)라는 것을 사용해서 붉은 색을 만들었다.

홍화 염색
홍화 염색

 

불교의식 관련서인 『석문의범(釋門儀範)』에서 색(色)에 관한 내용을 보면 아미타불의 덕상을 언급하며 ‘녹과의상 홍가사’라고 표현했다. 이를 가사(袈娑)의 색에 관한 기록으로 해석하면서 홍색 가사의 연원으로 삼는다. 순천 선암사에서 보존 중인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의 가사는 이십오조 사장 일단으로 된 대가사다. 바탕이 홍색 비단이고 각 단에 황색실로 부처의 명호와 불경 등을 수 놓았으며 가사의 상단과 양옆에는 자색, 홍색, 청색의 영자(纓子)가 각각 두 개씩 총 여섯 개 붙어있다. 대각국사 진영은 1805년 도일 비구에 의해 수정 보완되었는데 가사의 색이 홍색이다. 전통의 원형에 가까운 가사가 태고종 종단의 상징인 홍가사로 전통을 계승해가고 있다. 조사영탱에서 보여지는 가사의 색은 대부분 홍색의 겹가사이며 더러는 문양이있는 가사도 보인다.

가사는 원래 세속의 사람들이 입었던 옷을 얻어 빨아서 기워 입었다 하여 분소의(糞掃衣). 납의(納衣)라고 한다. 금강경에 ‘편단우견(偏袒右肩)하사’라는 표현이 나오듯 부처님의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 놓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치신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운 지역의 인도 기후는 옷을 얇게 입거나 걸치는 형태이지만 동양에서는 겨울에 추운 날씨로 인해 겉옷 위에 가사를 걸치는 형태가 되었다. 가사라는 말의 어원은 적갈색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카사야(kasaya)에서 유래한 것으로, 범어(인도 고대어)로 카사야를 음역한 것이다. 적색(赤色), 부정색(不淨色), 염색(染色)이라 번역한다.

천연염색을 하는 불자들 중에는 전통 홍가사 불사를 하고 싶어 하는 교육문의도 들어온다. 옛날에는 스님들이 직접 만들었던 전통 가사를 짓는 일이 사라진 지 오래다. 태고종 전통 홍가사를 직접 천연염색을 하고 전통 홍가사 짓는 방법을 교육하려는 생각은 있지만. 교육 여건과 제반 시설들이 불충분하기에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을 뿐이다. 앞으로 천연염색과 불교 전통문화를 접목시켜 사부대중과 함께 불교문화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불교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현대에 맞게 계승 발전시키는 일은 승속을 떠나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사) 한국전통문화천연염색협회 이사장

광천 관음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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