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빠져나올 즈음이면 먼 데 있었던 한 점 빛이 점점 확대되어 다가온다. 2019년 말 시작된 코로나19가 2년이 넘도록 세상을 어둡게 했지만, 마침내 터널을 빠져나온 것처럼 일상을 되찾았다. 일상이 이렇게 찬란한 줄이야! 코로나19 이전엔 몰랐던 발견이다.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고통을 겪었으며, 의료진들은 감염의 두려움 속에서도 책임을 다 했다. 시민들은 일상의 자유를 유보하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했다. 모두에게 잘 버텨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감염병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던 만큼 이후에도 우리는 감염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세기 이후에만도 스페인독감(1917~1942),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2003),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2012) 등 9차례나 발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 가운데 4차례 유행했는데, 발생 빈도가 잦아졌다. 감염병은 신체의 손상과 죽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코로나19로 경험하고 있듯 모든 일상이 정지, 유보되는 사태를 피해갈 수 없다. 특정 집단에 대한 따돌림 등이 발생해 사회적인 후유증도 지속된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종교의 입장에서도 던져야 할 질문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종교학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종교’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종교사․종교교육학.종교사회학.종교심리학.인지종교학의 관점에서 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 종교를 살폈다. 감염병이 휩쓸고 지난 후 종교의 지형이 크게 바뀌기도 했으니 이에 대한 답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이길용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의 ‘종교사적 관점에서 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한국 종교’라는 제목의 논문을 보면, 3세기 고대 로마를 휩쓴 ‘키프리아누스 역병’으로 주류 종교의 교체라는 결과를 낳았다. 역병이 돌자 당시 주류 종교의 사제들은 성전을 비우고 도시를 떠났다. 도피행이었다. 순식간에 고대 로마의 생활 세계에서 주류 종교는 진공 상태가 되었다. “바로 이런 공백기를 비집고 주류로 자리 잡은 것이 그리스도교였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역병의 현장을 벗어나기보다는 그 자리에 남아 곤란에 처한 이들을 돌봤다.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개신교의 많은 교단과 교회들은 예배의 자유를 이유로 들어 정부의 방역지침을 거부해 많은 국민들을 화나게 했으며 시름에 빠지게 했다. 사찰과 성당이 일시 문을 닫은 것과는 큰 대조를 보였다. 예배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 이 두 가치 중 어느 것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종교가 자기희생을 큰 덕목으로 삼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예배를 함으로써 교회의 가치와 이익을 지켰을지언정 자기희생을 외면했다.

코로나19 상황은 언젠가는 완전히 끝을 맺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를 겪어오면서 한국사회의 종교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평가하고, 어떤 형태로든 반응을 나타낼 것이다. 불교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우리의 본래면목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앞에 언급한 학술대회에서 원로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의 한국의 종교를 살피는 기조강연을 통해 심층종교로의 회귀를 요청했다. 오 교수가 말하는 심층종교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참나를 찾으며, 무조건의 믿음보다 깨달음을 중요시하며, 경전의 문자에 매달리기보다는 속내를 꿰뚫어보려 노력하는 것이며, 내세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기뻐하고,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의존하는 ‘하나’라고 보는 종교이다. 오 교수는 코로나19를 역설적으로 보면 축복이 될 수도 있다면서 “진정한 의미의 종교의 깊이가 줄 수 있는 평화와 시원함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많은 불자들이 오 교수의 심층종교론에 동의할 것이며, 그의 기대가 이뤄지길 바랄 것이다. 불교의 본래면목이 심층종교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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