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줄곧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안 그래도 익명의 시대에 얼굴조차 가리고 다닌 것이다. 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제대로 마실 수가 없어 날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만나는 지인의 얼굴들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없어 정마저 뚝 떨어질 지경이었다. TV를 보면 코로나 감염자 숫자만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걸 보면서 내가 참 이상한 나라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회는 어떤가? 날마다 보수와 진보라는 명분 아래 국민은 내편 네편이 되어 아예 양극단으로 갈라졌고 한쪽에선 분열을 조장하는 익명의 목소리들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던져준 것들은 많겠지만 가장 가슴 아픈 건 서로에 대한 불신이다. 하긴 마스크를 끼고 사람을 만나는 자체가 상대로부터 코로나가 전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발로이나 요상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부처님은 ‘즉심시불(卽心是佛)’ 곧 ‘마음이 부처’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의 마음속엔 부처는 어디로 갔는지 증오의 그림자만 남아 있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 이것은 비대면이 만들어 낸 일종의 병이기도 하다. 사람이 상대의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큰 동력(動力)이 된다. 그러나 마스크를 끼고 만나거나 문자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친근감마저 다 도망가는 건 같다.

이럴수록 사람은 더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남이 없으면 나도 없다. 본디 나라는 존재는 이타적인 존재로 살아야 행복하다. 그게 바른 삶의 길이다. 아무리 힘든 시절이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이타적인 마음으로 산다면 이 난국도 능히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지독한 역병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나 코로나로 인해 상처받았던 마음의 치유가 가장 먼저일 것 같다. 그나마 5월 중순부터 마스크를 벗는다고 하니 듣기만 해도 반가운 소리다. 신선한 봄 공기와 꽃향기를 이제야 제대로 맡을 수 있다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그렇다면 코로나는 왜 이 지구상에 나타났을까?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의 등장은 오만방자한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동물을 함부로 해치지 말고 무분별하게 지구를 훼손하지 말라는 대자연의 경고임이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코로나가 마냥 인간에게 나쁜 것들만 던져 준 건 아닌 것 같다. 그로 인해 인간도 백신을 개발해 질병에 대한 내성과 면역성을 길렀고, 인간을 일깨워 정신의 면역성을 키우게 했다는 점에서 위안 삼고 싶다. 하지만 새로운 변이의 등장으로 인해 앞으로도 우리는 영원히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폭풍 뒤는 항상 고요하다. 희생이 없는 성장은 없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얻은 고통이 오히려 정신의 면역성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나에게도 코로나로 인해 많은 생활의 변화가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잦았을 모임을 극도로 자제하다 보니 술자리가 확연히 줄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평소 소홀했던 가정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었고 게다가 돈 쓸 일이 없으니 과장하면 통장 잔고도 조금 늘었다. 또 하나 있다면 개인적으로 독서와 글을 쓸 시간이 많아졌다. 이것이 코로나가 내게 던져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늘 허전함 같은 것이 늘 자리하고 있다. 시골에 105세의 어머님이 계신다.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형수님조차 81세인데다가 지병을 앓고 있어 코로나가 시작된 뒤로 두 분이 혹시 감염되어 큰일을 겪을까 봐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문안 전화를 드리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 긴 거리를 주말에 시간을 내어 찾아뵈었다. 코로나 덕분에 없었던 효심마저 생긴 것이다. 서울에서 40년이란 긴 세월을 살면서 1년에 명절마다 겨우 한두 번 찾아뵈었던 것이 코로나 덕분에 자주 문안을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는 우리 가족들을 비켜 가지 않았다. 지난 12월 우리 가족 모두가 감염되었다. 그 후론 감염위험 때문에 어머니를 찾아뵙지 못한 것이 그저 안타깝다. 지난 5월 8일은 공교롭게도 부처님오신날과 어버이날이 겹쳤다. 조용하게 사찰을 찾아서 두 분의 건강을 기원하는 연등을 달았다.

-시인 ㆍ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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