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고독의 시간이 확산되고 있다. 개인의 스마트폰 사용 몰입 시간이 늘어나고, 1인가구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선택적 이유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강제적 고독의 시간도 포함된다. 요즘이라면 코로나 확진에 의한 격리시간일 것이다. 연일 신규 코로나 확진자 수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이제는 확진자가 아닌 건 친구가 없어서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정도다. 자의든 타의든 혼자만의 시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보통 인간은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따라 성장하거나 반대로 도태되는 두 가지 갈림길에 마주하게 된다. 성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가갈 바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혼자 있는 시간동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최대치를 이끌어낸다. 과거 대표적인 타의적 고독의 시간으로 유배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산 정약용이, 추사 김정희가 유배의 절대 고독의 시간을 보냈다. 공간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지역적으로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치욕과 모멸을 겪으며 울화병이 생기기도 했다. 그 처절한 고독의 시간 속에서 그들은 『목민심서』『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500여 권에 달하는 명저(名著)와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라는 명화(名畫)를 이끌어냈다. 쉽지 않았을 그들의 외로움의 시간엔 무엇이 한줄기 위로가 되었을까? 그것은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한 잔의 녹차였다. 사실 녹차가 아닐 때도 있었다. 발효된 차일 때도 있었고, 둥그렇게 생긴 떡차일 때도 있었다. 봄이 시작될 때는 어린 찻잎의 부드러운 맛을 즐겼고, 큰 잎차는 약성이 좋으니 더부룩하게 소화가 안 될 때나, 술마신 다음날 숙취 해소용으로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차는 머리를 맑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니 공부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

불교에서도 차는 부처님께 올리는 최고의 감로(甘露)이며, 수행자들에게는 비상 상비약이고 에너지원이었다. 차를 마시는 여러 긍정적인 효능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지만, 우리는 차를 마시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차생활의 묘미, 즉 다도(茶道)는 차를 준비하는 전과정을 통해 차와 내가 하나됨을 알아가는 것이다. 차와 차우리기 위한 다기[찻주전자, 찻잔]를 준비한다. 차 우릴 물을 주전자에 끓이거나 포트에 올린다. 찻물 끓어오르길 가만히 기다리며 물 끓어오르는 소리에 고요히 집중한다. 보글보글 물 끓어 오는 소리도 좋고, 졸졸졸 찻잔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모두 편안하다. 투명한 물빛은 찻잎이 품어 푸른 자연빛이 된다. 향기로운 차향은 코끝에서, 입안에서 이내 가득 피어오른다. 두 손 안에 감싼 따듯한 차 한 잔은 온전히 나를 위한 몰입, 차와 나와의 온전한 교감이다. 혼자서 무엇을 하는 일 중에 차를 마시는 일만큼 유용한 일이 있을까. 순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 준다. 나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다.

태고종 종정이자 차인(茶人)이신 지허 스님께서는 “알아도 차 한 잔하고 몰라도 차 한 잔 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언제나 차 한 잔 하라는 말씀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도 편안하거나 즐거운 때에도, 이러한 순간에도 저러한 순간에도 변함없이 맑은 차를 곁에 두어 삶의 밸런스를 맞추어야 한다는 진리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 차에 대해 아니 다도에 대해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왔다. 어려운 것, 복잡한 것, 의례적인 것 등등. 차의 본질은 순수하고 담박하다. 최대한의 간결한 차마시는 행위와 집중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데 있다. 나머지는 모두 허상일 뿐이다. 고독 또한 더 이상 이기는 대상이 아니다. 도약해서 나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있는 녹차 한잔이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봄은 녹차의 계절이다. 이제 제주를 시작으로 하동이며 보성을 비롯한 전국의 여러 차나무 산지에서는 햇차가 나오게 된다. 겨우내 땅속 기운을 한껏 모아 작고 여린 찻잎으로 세상에 터져 나온다. 그 잎으로 만든 차는 따뜻하고 향기로운 한모금이 되어 오늘을 이겨내고 내일을 도약하는 행복한 위로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진심으로 향기로운 차 한 잔을 권한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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