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천이 봄에 겨운 시절이다. 매화 향기가 코끝에 맺히고, 저기 보니 개나리와 진달래 영산홍 꽃이 터졌다. 며칠 지나면 벚꽃이 잔치를 벌일 것이다. 발바닥이 간지러운 것을 보니 땅 아래를 기는 것들도 기지개를 켜나 보다.

바람이 부드럽고 햇살이 눈부신 지난 일요일, 걸어서 30분쯤 걸리는 곳에 있는 야생화공원으로 향했다. 어디선지 꿀 향이 짙게 풍긴다. 진원지는 회양목 군락지다. 회양목 꽃은 크기가 작거니와 색이 잎보다 옅은 연한 녹색이어서 멀리서 보아서는 꽃의 존재를 알아채기 어렵다. 이 꽃은 향기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향에 이끌려 군락지에 들어가니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꿀벌들이 꿀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최근 꿀벌 실종 사건을 들었던 터라 반가웠다.

양봉농가의 꿀벌 실종 사건은 생명이 움트는 봄날에 들려온 느닷없는 소식이었다. 가장 먼저 꽃을 찾았을 벌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다니, 허전한 봄날이다. 꿀벌의 실종은 심각한 문제다. 우선 양봉 농가에 타격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꿀벌의 도움으로 수분하는 농작물의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우리가 자주 먹고 마시는 딸기, 양파, 호박, 당근, 사과, 블루베리, 귀리, 오이, 감자, 토마토, 이런 것들은 벌의 먹이활동 중 일어나는 꽃가루받이에 의해 열매를 맺는다. 꿀벌이 없으면 30%의 감량이 있을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도 나온다.

꿀벌의 중요성을 인식해 국제연합(UN)은 2017년 ‘세계 꿀벌의 날(5월 20일)’을 제정했다. 전 세계 100대 작물의 71%의 수분을 담당하는 꿀벌의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파괴되는 현실을 인식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벌의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살충제의 사용을 금지하는 운동을 확산하고, 꿀벌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대안으로 농약의 피해가 없는 도시 양봉을 장려하는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 도시 양봉은 꿀을 채집하는 것보다 꿀벌의 개체 수를 늘리는 데에 목표가 있다.

사람이 벌의 일을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효율도 뚝 떨어질 뿐 아니라 인건비를 추가로 들여야 하니 난감한 일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산량 감소는 가격 상승을 불러올 것이고, 소비가 줄어든다. 그러면 농가와 관련 산업이 무너진다. 암울한 풍경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값이 뛰어오르는데, 엎친 데 덮친 상황에 맞닥뜨렸다.

농촌진흥청에서 애를 쓰고 있으나 꿀벌들이 사라진 원인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기후변화, 농약, 전자파 등이 거론되고 있다. 더러는 태양광 패널에서 반사되는 빛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이밀기도 한다. 전문가들도 딱히 원인을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환경보호국이 조사에 나섰는데, 해충과 농약, 새로운 병원균의 복합작용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원인이 밝혀져야 대책을 세울 것인데, 오리무중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또 원인이 여러 가지이면 처방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꿀벌만 사라지는 것일까. 꿀벌처럼 수분을 도와주는 나비를 비롯한 다른 날것들은 무사한 걸까. 최근의 생물종의 멸종은 인간의 간섭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기후변화와 삼림 파괴, 도시화 등으로 인간 외 생물의 서식 환경이 악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곤충은 매년 1%씩 줄어들고 있으며, 향후 이 추세가 이어지면 30년 후에는 25%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회양목 군락지에서 벌들은 웅웅거렸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양봉 농가의 벌만 줄어든 게 아니라 자연 상태의 꿀벌들의 개체 수도 줄어든 것인가. 아직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원인은 바로 욕망을 좇는 인간에게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역 확장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톨스토이의 러시아 민화집에 실린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죽음에 이르는지도 모른 채 추구하는 욕망을 그리고 있다. 바흠은 하루 종일 걸어가 많은 땅을 차지했지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들판에서 쓰려져 죽었다. 그가 묻힌 땅은 몸길이에 그쳤다. 지구는 끊임없이 인간들에게 멈추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번의 꿀벌 실종은 또 한번의 멈춤 신호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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