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차고 바람 서늘하다
그 끝에
색신(色身) 하나 무릎 포개고 앉아 있다
귀 닫고
입
틀어막았는가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다
무념인가
무상인가
아무리 소리쳐도
돌아보지 않는다
저 색신 나와 같아서
나와 닮아서
나는 서러워진다
저 차고 뻣뻣한 것을
저 냉하고 무딘 것을
나는 미륵이라 이름 짓는다
돌부처라 중얼거린다
길 차고 바람 서늘하다
숲 적막하고
돌집 포근하다
그 길 끝에
귀 닫고
입 틀어 문
색신 하나 앉아 있다
앉아서
미륵으로 재생하고 있다
어릴 적, 절골에 자주 놀러갔다. 골짜기 끝에 절이 하나 있어, 우리들은 절골이라고 불렀다.
절골엔 돌이 많았다. 어떤 돌덩이엔 부처님이 새겨져 있었다. 불교를 잘 모를 때지만, 그래서 좀 차고 서늘하고 적막하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냥 그 절골이 좋았다. 놀이터가 없던 나는 자주 그 절골에 가 놀았다. 절골 전체가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는 놀기 위해, 적막과 적요와 숨바꼭질하기 위해 절골에 갔다. 그런데 어느 젊은 사람 하나가 내 놀이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입 틀어 물고 눈 감은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 나 같았다. 나를 닮은 것 같았다. 내 대신 그렇게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하다 들킨 것처럼 나는 갑자기 추위가 스며들었다. 마음이 차고 서늘해졌다. 오래 쳐다보다가 나는 조용히 다가갔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았다. 찌든 사람 냄새가 났다. 고린 냄새였다. 얼마나 길 찾아 다녔기에 이리 고린 냄새가 날까. 하지만 나는 그 고린 냄새가 싫지 않았다. 진짜 사람 냄새 같았다.
그 옆에 있는 동안 내 코와 옷에도 고린내가 배었다. 엄마 따라간 절집 스님들한테서도 그런 냄새가 났다. 그게 사람의 냄새인줄, 사람만의 냄새인 줄 안 것은 10년쯤 뒤였다.
나는 감히 생각했다,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나를 닮은 사람이라고, 나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1977년 입동 무렵이었다.
그날 이후, 1년에 한 번씩은 꼭 그 절골에 간다. 가서 돌 속에 나를 내려놓고 온다.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 재생의 힘으로 나는 오늘도 즐겁게 버틴다. 윤회한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