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만나는 우리의 차
⓸경주세계차문화축제 김은호 위원장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공양한
충담 화상이 전생 아닐까 생각
중국 보다 앞선 우리 차문화사
김 위원장, 나라 생각하며 차음

차실을 손수 수리하는 김은호 위원장.
차실을 손수 수리하는 김은호 위원장.
김은호 차실 전경.
김은호 차실 전경.

 

경주 아사가 차관의 이름을 지어준 소천 박영호 선생. 그 기인이 차회에서 늘 한수 접는 차인이 있다. 글로벌 자가용내장재 전문회사인 동진이공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겸 회장인 김은호 씨(77)로 '경주세계차문화축제'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분이다.

경주 세계차 문화 축제는 경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차 문화 참여와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천년고도 경주의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한국 차 문화의 역사와 그 특징을 부각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의 차 문화 진흥 시발점을 마련함은 물론, 경주 관광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 2016년 이래로 다섯 번 개최된 이 축제를 영화로 말하자면 제작은 김은호 회장이, 감독은 아사가차관의 김이정 운영위원장이 맡는다고 이해하면 될 듯싶다. 그런데 하동이나 보성이 아니고 왜 경주에서 차문화 축제를 여는 걸까?

신라 35대 경덕왕(재위 742∼765)이 재위 마지막 해인 765년 삼짇날(3월3일) 귀정문(歸正門)에 올라가 있다가 통일신라의 10구체 향가 「안민가」「찬기파랑가」 등을 저술한 충담스님을 만난다. 왕이 어디 갔다 오시냐고 묻자 충담은 남산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께 차를 끓여 바치고 오는 길이라 했다. 그러자 왕은 자신에게도 차 한 잔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충담 스님이 벚나무로 짜 맞춘 통[앵통櫻筒]에서 차도구를 꺼내어 차를 달여 왕에게 드렸다. 왕은 차를 마신 뒤 그릇에서 맑고 그윽한 향기가 가득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김은호 차실에서 바라본 토함산.
김은호 차실에서 바라본 토함산.

 

여기서 충담이 해마다 3월3일과 9월9일 두 차례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는 미륵불상 앞에 차공양을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라왕실과 차문화와 관련된 기사는 이미 선덕왕(632∼647) 때부터 시작되며, 661년에는 문무왕이 종묘사직에 차를 올렸으며, 718년에는 신라의 왕자 김교각이 중국 구화산으로 출가하면서 신라의 차종자를 가져가서 심은 것이 오늘날의 금지차(金枝茶)라고도 한다. 이런 신라시대의 역사적인 기록들은 다성으로 불리우는 중국의 육우(陸羽)가 『다경(茶經)』을 펴낸 760년보다 훨씬 앞선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차문화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신라 차문화의 역사가 적어도 1400여년이나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기에 경주 세계 차문화 축제의 의미는 더욱 큰 것이다.

김은호 위원장은 전생에 충담 스님이었나 보다. 해마다 3월3일과 9월9일 두 차례에 걸쳐 아사가차회 회원들과 함께 ‘남산 삼화령 석조불삼존상’이 있던 자리를 꼭 찾아가 차공양을 올린다. 여기서 삼화령은 ‘전삼화령’ 자리가 아니라 지금의 ‘삼화령’자리를 말한다.

김은호 차실로 가는 길.
김은호 차실로 가는 길.

 

순진무구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남산 삼화령 석조불삼존상은 1925년 장창곡에서 발견되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그 불상만큼이나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대좌도 중요하다. 1969년 고황수영박사는 그 삼존상이 생의사 석미륵에 해당하는 석불상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까닭에 불상대좌가 있는 곳은 당연히 생의사터가 된다.

선덕여왕 때에 도중사(道中寺) 승려 생의(生義)의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그를 데리고 남산에 올라가서 풀을 묶어 표시하게 하고는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청하건대 스님께서는 나를 꺼내어 고개 위에 안치하여 주시오’라고 하였다. 생의 스님은 꿈에서 깬 후, 그가 표시해 놓았던 곳을 찾아가 땅을 파 보니 돌미륵이 나왔다. 그 미륵상을 삼화령 위에 옮겨 놓고 선덕왕 3년(634)에 절을 짓고 살았는데, 절 이름을 생의사라 하였다.(『삼국유사』 ‘생의사 석미륵(生義寺 石彌勒)’조)

게다가 미륵선화라고 불리울 정도로 화랑도의 미륵의 화신으로도 불리우기도 했으며 삼화령이 세명의 화랑과 관련될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여하튼 왕은 물론 화랑들과 스님들이 차를 즐겼고 차만 즐긴 게 아니라 나아가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새겼고 그 결과가 충담사의 ‘안민가’가 아닌가 싶다.

“임금은 아버지, 신하는 사랑을 주는 어머니라. 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로 여기면 모든 백성들이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며 사는 갓난이를 먹여 다스리니, 이 땅 버리고 어디로 가랴 할지면 나라를 보존할 길 알리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살면 나라는 태평을 지속하리니.”

충담사 ‘안민가’의 영향인지 김은호 위원장은 늘 차회에서 한중일, 동남아를 넘어 세계 차문화의 미래 비전을 제시한다. 경주세계차문화축제 역시 우리 국민들에게 신라의 차문화를 알리는 동시에 나아가 일본 등 외국인들이 와서 공감할 수 있는 차회를 제공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차를 통해서 나라를 생각하는 차인 김은호 위원장의 이야기는 다음호에 계속된다.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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