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만나는 우리의 차
⓷ 남원 매월당 오동섭의 차 이야기Ⅱ

용봉단차 전통 잇기 위해 정착
“초암차 정신도 함께 계승” 뜻
차인으로 필요한 덕목 지니며
다양한 제다로 자긍심 등 높여

매월당에서 익어가는 구기자차.
매월당에서 익어가는 구기자차.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인 남원 보련산 아래 보련사 옛터에 매월당이라는 초가집들이 들어 서 있다. 이 초가집의 지붕 즉 이엉을 직접 잇는 사람을 요즘은 보기도 어렵고 구하기는 더 어렵다. 새마을사업 이전에는 흔한 집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이젠 한번 고쳐 올리는데 수천만 원이 드는 까닭에 ‘초가집’에 대한 커다란 애착이 없이는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가옥형태가 되었다.

이엉이란 짚, 풀잎, 억새 등으로 엮어 만든 지붕 재료로, 강진 다산 초당에도 없는 이엉이 여기 바로 남원 매월당에 있다. 황토 한옥에 억새지붕을 얹은 초당인 매월당은 신목이 매년 몸소 이엉을 이으며, 전통 차 문화도 함께 이어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차를 마시는 것도 대단한 데, 만드는 곳이기도 하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이 초가집의 주인장인 신목은 김시습 선생의 겸손하고 소박한 차 정신을 본받고 고려 이래 용봉단차의 전통을 잇기 위해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뒷산 보련산 만학동 계곡에는 고려 시대의 야생차 군락지가 존재하고 있다. 남원은 고려 말 백운거사 이규보의 「유차시(孺茶詩)」에서 극찬한 지리산 운봉에 사는 노규 선사의 조아차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까닭에 그는 고려시대 이래의 차밭이 아닌가 생각한다.

몇백년이나 되는 야생 차나무는 찾기 어렵지만, 백년은 훌쩍 넘은 차나무는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의 야부기타가 아니라면, 자자손손으로 그 씨를 전한 차나무는 노규 선사 아니, 신라 흥덕왕대의 대렴공, 어쩌면 그 이전의 자생 차나무와도 연결될 수 있을 듯싶다. 왜냐하면 남원의 실상사가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실상사는 서기 828년(신라 흥덕왕 3년) 증각 대사 홍척이 왕명으로 건립한 곳으로, 신라 말 선종을 중심으로 일어난 구산선문 최초의 사찰이다. 신라 헌강왕의 존경을 받았던 수철 화상의 능가보월탑비(보물 34호)에는 ‘야명향(若茗香)’이라는 글씨와 함께 그 행다법이 실려 있다. 신라시대 남원의 차 문화, 나아가 신라시대의 전통 차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곳의 오래된 야생차나무에 대한 과학적인 DNA검사 등을 통해 보다 정확한 증거가 확보되었으면 좋겠다.

신목 오동섭은 고려시대의 차문화가 살아 있는 남원 전통차의 맥을 이으며,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만든 초암차 정신을 함께 계승하고 싶다고 전한다. 아직도 검증해야 할 사실관계가 적지 않으나, 그런 마음을 지니는 것은 차인으로서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기에 다른 제다인들도 좋아하는 역사상의 차인을 흠모하며 그에 걸맞는 자긍심이나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매월당에 찾아온 가을, 그리고 겨울.
매월당에 찾아온 가을, 그리고 겨울.

 

신목이 만드는 차는 다양해서 그 종류를 보면 저절로 차 공부가 된다. 고려단차는 야생 찻잎을 300°C 이상의 높은 온도의 무쇠솥에서 덖고, 자연의 바람에서 말리고 발효시켜 만든 매월당의 대표적인 차로, 200g, 350g, 900g, 2kg, 3kg의 다양한 종류가 있다. 녹차는 야생의 어린 찻잎을 높은 온도의 무쇠솥에서 정밀한 열처리를 통해 만든 맑고 싱그러운 차이다. 약발효잎차는 산화효소의 억제기술 및 활성산소 제거기술을 통해 찻잎의 줄기와 잎맥에 홍변을 주어 향긋하고 청아한 맛이 나는 차다. 끝으로, 홍차를 비롯해 구기자차를 비롯한 다양한 차와 식음료 등이 있다.

다른 제다장인이나 명인들과 다르게 그는 여전히 소나무 장작불로 달군 무쇠솥을 사용한다. 전통방식만을 고집하는 부분에서는 비슷한 방법을 추구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차를 덖는 무쇠솥이 찻잎은 물론 찻잎을 덖는 사람들도 비칠 정도로 너무나 깨끗하기 때문이다. 파리가 앉으려도 미끄러질 정도로 깨끗한 솥 때문인지 위생적인 제다실에는 파리 등의 비위생적인 장소에나 있는 유해곤충은 찾을 수 없다. 그런 정갈하게 늘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솥에서 어쩌면 천 여 년의 역사를 가진 야생차는 신목 오동섭의 손끝을 만나 비로소 그 본연의 향과 맛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신목의 차가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산골짜기 즉,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자생하는 야생 찻잎을 사용하는데 있다. 고차수의 공현식 대표를 비롯해서 적지 않은 제다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신목 역시 차는 물론 사람의 발길조차 뜸한 곳에서 나무로 자연차광이 되는 야생차를 선호한다.

요즘 차밭을 보면 고속도로나 국도 상에서도 보이는 차밭이 더러 있다. 지방도를 비롯해서 차들의 왕래가 잦은 곳의 재배차는 농약을 친 차와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그곳에서 난 차들을 신뢰하면 잘 마시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생산된 차에 대한 농약이나 중금속 잔류 검사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농약파동 이래의 신뢰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유불선을 두루 통달한 매월당 김시습을 흠모해 온 제다장인인 신목은 늘 아침 7시 반이면 직원들이나 민박집을 찾은 손님들과 차회를 갖는다. 식전의 차회가 위험할 듯싶지만, 그의 차 특히 고려단차는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다. 오래된 보이차 즉 인급이나 호급의 노차와도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차품이 뛰어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타차 즉 덩어리로 만든 매월당의 고려단차의 내부는 산소가 차단되어 자연발생하는 미생물에 의한 발효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흑차 특히 보이차의 발효방법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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