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바일제법 제52~53조
물속에서 장난치며 노는 것도 금해

 

지난 회에 이어서 음주계를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한다. 빨리어 율장에서는 술을 수라(surā)와 메라야(meraya)로 나누고 있는데 수라란 곡물을 효모로 이용하여 만든 술이고 메라야는 주로 꽃이나 과일 등을 이용하여 만든 술이다.

한국 승가는 음주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이는 역대 선,조사 스님들의 음주와 연관된 일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한 예로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의 일화가 있다. 경허 스님은 제자인 만공 스님에게 단청 불사를 하기 위해 시주를 받으러 가자고 해놓곤 시줏돈으로 주막에서 술을 마셔 버렸다. 불만을 토로하는 제자 만공에게 경허 스님은 “나는 이미 단청 불사를 마쳤다. 내 얼굴을 보거라”고 하며 붉어진 얼굴을 내밀었다고 한다.

일부 스님들은 술을 ‘곡차’라 하며 두주불사(斗酒不辭)하며 마시는 경향이 있지만 차를 마시면서 취하거나 정신을 잃지는 않기 때문에 지금 내가 마시는 이 잔의 내용물이 술이 될 것인지 차가 될 것인지는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어줍잖은 선사 흉내를 내려다가 세간에 문제를 일으키고 재가자의 신심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주불사는 항우와 번쾌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죽음도 불사하는 장부의 기개를 이르는 말인데 요즘은 그냥 단순히 주량이 세다는 의미로 전락해 버렸다. 진정 장부의 기개란 주량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음을 알아갔으면 한다. 필자도 그런 용기가 많이 부족함을 알고 노력하지만 가끔씩 느껴지는 새가슴은 나 자신에게 진정 부끄러울 뿐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좀 샌 것 같지만 음주에 관해서 부처님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명료하다. ‘술을 술이라 생각하고 마시거나, 술을 술이라 의심하며 마시거나, 술을 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마셔도 바일제이다.’

바일제법 제52조는 격력계(擊攊戒)이다. ‘격력’이란 간지럽힌다는 의미인데 6군비구가 나이 어린 비구를 너무 심하게 간지럽혀 숨이 막혀 죽게 만든 사건에서 ‘손가락으로 간질이면 바일제이다’라는 본 조문이 제정되었다.

바일제법 제53조 수중희계(水中戱戒)는 비구가 물속에서 장난치며 노는 것을 금한 계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음주계와 수중희계를 번갈아 떠 올리며 생각해보니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스리랑카에서 유학할 당시 유학승이 약 10명 정도 있었는데 필자를 제외하고 전부 비구니 스님들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유학이라는 동병상련은 있었지만 비구와 비구니인 관계로 속내를 터놓고 대화할 기회는 없었다. 일 년 내내 더운 나라에서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가고 향수병도 심하게 걸리고 있을 즈음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스리랑카 아동 복지센터의 센터장을 맡은 스님이 유학승들에게 심신을 위로해 줄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서양인들이 많이 찾는 히까두와라는 유명한 해변의 근사한 호텔에서 2박3일 동안 쉬게 해 주었는데 그때 인도양의 바다를 마음껏 느끼고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자는 수중희계를 범한 것이지만 계율을 어겼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은 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필자에게 음주계는 중죄이고 수중희계는 그보다 가벼운 죄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율장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술을 마시던, 물에 들어가 놀던 둘 다 똑같이 바일제를 범한 것인데 자신의 기준만 강조해서 ‘술 마시는 것은 안 되고 물에서 노는 건 괜찮아’라며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의 해석으로 스스로 위로하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동방불교대학교 교수 ㆍ 스리랑카국립켈라니야대학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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