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때 장과로(張果老)는, 바로 앞 세대 신라 원효 스님처럼 대중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던 도인이었다. 그가 타고 다니던 흰 당나귀는 하루에 수만 리도 거뜬히 걸을 수 있었고, 쉴 때는 당나귀를 얇은 종잇장처럼 접어 작은 상자 속에 넣을 수 있었으며, 맑은 물을 뿌리면 다시 건장한 당나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당나귀의 다리는 꿈속의 청산을 오르는 것처럼 피로를 몰랐다고도 한다. 작은 상자 속으로의 응축과 큰 생명 덩어리로 자유자재하는 것이 ‘두루 나타나면 온 세계를 다 감싸지만 거두어들이면 티끌 속에도 있는’ 한마음의 본질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장과로는 한마음을 타고 중생심을 휘젓고 다녔을 뿐 아니라 당태종부터 측천무후에 이르기까지 최고 통치 권력자들을 각성시키면서 ‘천도(天道)’를 펼치고 다녔던 것이리라.

특이한 것은 장과로는 나귀를 거꾸로 돌아앉아 타고 천하를 주유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그가 풍속 타락과 예의·염치가 사라진 세태를 한탄하는 한편, 부패한 관료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수행자의 관점에서는 회광반조(回光返照)의 메타포로 받아들여진다. 진리의 본체는 내 바깥에 있을 수가 없으며 바로 지금, 여기 이 안쪽 자리에 있다고 시위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에 휘둘리면 중생심이지만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을 여여하게 알아차리고 있는 자리를 반조하면 진여심이다. 진리를 쫓는 사자는 고깃덩어리를 쫓아가지 않고 고깃덩어리를 던진 자를 덥석 물어버린다. 고깃덩어리에 미혹되지 않고 고깃덩어리를 던진 자를 돌이켜 본다. 미혹한 중생들은 색성향미촉법에 반연(攀緣)되어 술 취한 원숭이처럼 번뇌, 망상, 분별, 간택, 취사의 깊은 병에 시달리며 살다가 연기의 악순환 속에서 생로병사를 거듭한다.

육경(六境)의 천지에는 재산, 권력, 명예 등 꿀 발린 고깃덩어리들이 널브러져 있다. 관음입리지문은 소리를 통해 회광반조하는 법문이다. 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를 분별하기 전에 그 소리를 듣는 자리, 소리가 들리다 소리가 사라져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실재하는 그 자리를 돌이켜 본다. 임제 선사는 “말(言)이 떨어지면 곧 스스로 말이 나온 자리를 회광반조할 것이며, 다시 다른 데에서 구하지 말 것이니 몸과 마음이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바로 부처와 조사이다”라고 가르친다. 앞만 쳐다보면 중생이고 뒤를 돌아보면 보면 부처의 자리이다. 앞문으로 쫓겨나가는 것은 생멸이고 뒷문으로 물러서면 진여이다. 장과로처럼 수행자들은 마음자리에 주목할 일이다.

-소설가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