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38년째이다. 외갓집에 출가한 스님 덕분에 불가와의 인연은 더 깊어진 셈이다. 대학을 전후로 맺은 불가와의 인연은 언론인으로 33년을 보내는 동안 넓고, 때론 깊은 사연으로 이어졌다. 불가와의 인연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일깨운 시간이다. 승보종찰 송광사로 속가 동생이 출가했기 때문이다.

송광사와의 첫 대면은 필자가 먼저 했지만, 출가는 속가 동생이 한 기이한 인연 덕분에 선암사에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순천 조계산 주봉 장군봉이 사천왕으로 태고총림 선암사를 외호하고 있는 선암사는 3무의 전설과 함께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는 비보사찰이라는 설화도 공부하는 계기가 됐다. 그 인연들은 씨줄 날줄이 되어 강원도부터 제주까지 암자 찾아 삼만 리 길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아직도 38년의 세월로 이어지고 있다.

세속에서 치열하게 얽힌 삶도 나의 산사 길을 재촉했다. 산사를 찾을 때마다 들려오는 풍경소리 하나만으로도 일상을 잠시 멈추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천 년을 지켜온 암자가 들려주는 법문이 좋았다. 그 법문을 듣기 위해 수 시간을 걸으며, 비 오는 듯한 땀을 닦아 내며 암자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절집에도 속가처럼 수많은 문중과 가풍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었다. 승속이 또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디에 있든 살아간다는 것이 수행임을 산사를 찾을 때마다 발심한다. 선가의 많은 수행자가 돈오와 돈수를 논하지만, 속인인 내게는 돈오는 둘째 치고 일상의 평상심을 찾기 위한 산사 길이다. 말꼬리를 업으로 삼는 언론인이라 산사에서 들려주는 스님들의 지나가는 말씀에도 “앗 그런 뜻이 있었구나?”를 비교적 눈치 있게 알아챘다.

산사는 수천 년을 내려오는 발원을 담고 있었다. 수많은 전란과 자연재해 속에서도 간절한 발원이 절을 다시 일으켜 세웠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묘한 이치다. 어느 때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가 시절 인연으로 부활하는 산사의 이적(異蹟)은 바로 간절한 발원이었다. 그 발원들은 무생물인 불상과 사천왕에 혼을 불어넣어 절을 수호하고 외호하는 신장으로 승속의 청탁을 마다하지 않았다. 산사 처처의 기도처들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불경 속에서뿐만 아니라 발원에서도 사사 불공이면 처처에서 응답하는 불성이 함께 했다. 흔히 불가에서는 타인에 의해 가는 건 감옥이지만 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건 무문관이라 한다고 들었다. 수행하는 스님들이 들려준 수행 이야기다.

무문관 이야기는 한국 불교사에 때론 영화로, 때론 실제로 곳곳에서 회자한다. 설악산 깊은 산중 암자인 오세암을 나서 탁발하러 간 스님을 대신해 어린 동자승은 절을 지켰다. 암주 스님이 절을 비운 사이 폭설이 내려 절을 지키던 동자승의 무문관 설화를 그린 영화를 보고 마음이 참 먹먹하던 때가 있었다. 눈이 무문관이었다. 겨울철만 되면 때 아닌 폭설로 전국 산사, 특히 암자는 자연 무문관이 된다. 폭설이야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벌써 1년이 넘게 온 국민을 무문관 수행자화 하고 있다. 무문관에서도 없는 마스크까지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무문관인 셈이다.

코로나19는 온 국민에게 “만나지 말고 입을 다물라!”라는 화두를 던졌다. 지난 1년 여간의 코로나19사태는 불가에서 말하는 면벽 수도 시절이나 다름없다. 백신과 치료제가 투여되기 시작했으니 코로나19 무문관 해제일도 머지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어떤 일상의 깨달음으로 돌아와 다시 세상과 마주하게 될지 기다려진다.

-언론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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