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의 연꽃<4>

나는 이른 아침마다 내 산방 사립문을 열고 쌍봉사로 내려가 철감 도윤선사 사리탑을 한 바퀴 돌고 온다. 철감 도윤선사는 당나라로 건너가 남전선사 회상에서 조주선사의 후배가 되어 함께 정진한 뒤, 귀국하여 신라 선문 가운데 사자선문(獅子禪門)의 머릿돌을 놓은 분이다.

합장하고 사리탑을 참배하는데 그냥 내려오지는 않는다. 기도를 하면서 탑돌이를 한다. 내 기도는 ‘무엇을 해주십시오.’가 아니다. ‘무엇을 하겠습니다.’이다. 기원이 아닌 발원인 셈이다. 기원은 불보살님에게 의지하여 구원을 바라는 것이고, 발원은 불보살님께 서원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불교의례를 벗어난 기도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탑을 돌면서 ‘무엇을 하겠습니다.’ 하고 맹세를 한다. 용기를 내어 공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생에 묵은 빚을 갚겠습니다.’
‘좋은 글을 써 세상을 이롭게 하겠습니다.’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좋은 글을 써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당연한 이유(當爲)가 되는 것이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기도이고, 아내를 사랑하겠다고 기도하는 것은 미안하고 부끄럽기만 한 내 마음의 서원이다.

한때는 쌀을 몇 되씩 배낭에 넣고 가 기도한 뒤, 그 쌀이 한 가마니가 되자 읍내에서 봉사 활동하는 분을 통해 외로운 할머니에게 돌아가도록 했다. 전생 빚을 갚겠다고 말로만 기도하는 것이 미안해서였다.

기도를 해서 하루의 시작이 행복하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을까. 이러한 맑은 기쁨을 우리 불가에서는 정복(淨福)이라고 부르는데, 기도란 나름대로 지킬 수 있는 맹세를 해야 이루기 쉽고, 결코 요행수를 바라서는 안 될 것 같다.

부처님도 <잡아함경>에서 날란다 마을의 한 촌장에게 요행은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짓는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다고 말씀했다. 날란다의 빠와리까의 망고나무 숲에 계실 때였다. 촌장이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서쪽 마을에 사는 바라문들은 물풀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몸을 강물에 담가 청정하게 하고 불을 섬깁니다. 이 바라문들은 죽은 사람을 들어 올려 이름을 부르며 천상으로 인도한다고 합니다.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이시여, 부처님도 세상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늘에 태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촌장이여, 내가 질문할 테니 대답해 주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살생하고, 훔치고,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악담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욕을 부리고, 악의를 지니고, 틀린 견해로 가득 차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다가와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고, 합장하며 돌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에 태어나게 해주소서.’라고 한다면, 촌장이여 이 사람이 죽은 뒤 좋은 곳인 천상에 태어나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커다란 돌을 깊은 연못에 던졌다고 합시다. 그런데 사람들이 연못가에 다가와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고, 합장하며 돌면서 말하기를 ‘착한 돌아 떠올라라. 착한 돌아 연못가로 나와라.’ 라고 한다면, 커다란 돌이 연못 위로 솟아올라 연못가로 나오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살생하고, 훔치고,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악담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탐욕을 부리고, 악의를 지니고, 틀린 견해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죽은 뒤 나쁜 곳인 지옥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생명을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악담을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지 않고, 악의를 지니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다가와 기도하고, 주문을 외우고, 합장하며 돌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죽은 뒤 고통스럽고 나쁜 곳인 지옥에 태어나게 해주십시오.’라고 한다면, 그가 죽은 뒤 고통스럽고 나쁜 곳인 지옥에 태어나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지 않고서는 그 어떤 기도도 감응이 없을 터이다. 그래서 참회가 필요한 것이다. 몸과 마음을 맑히는데 참회만한 것이 없다 했으니 참회는 기도의 절대조건인 셈이다. 또한 기도는 오직 행할 뿐 머릿속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일타스님은 기도를 행하는데 유독 간절함을 강조하셨다.

“기도 성취의 비결은 ‘간절 절(切)’에 있고, 간절 절(切)은 일념삼매로 통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여 잠깐이라도 일념삼매를 이루게 되면 불보살의 가피가 저절로 찾아들게 되어 있다. 불보살께서 우리를 보호함은 물론, 나에게 갖추어져 있는 영원생명과 무한능력이 개발되고, 내가 서 있는 이곳 또한 사바세계가 아닌 불국토로 바뀌게 된다.”

도대체 부처님 가피란 무엇일까. 부처님의 가피란 본래 나에게 있는 영원생명과 무한능력을 일념삼매 속에서 만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것을 되찾는 것이 기도삼매가 아닐까. 영원생명이란 현실 속에서 애쓰는 나를 넘어선 무량겁의 생명이고, 무한능력이란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한 걸림 없는 능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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