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은 명확하지 않으나 오래전부터 절집에서는 수행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시끄럽게 하는 여덟 가지 종류의 경계를 바람에 비유한 표현이 있다. 이(利)·쇠(衰)·예(譽)·훼(毁)·칭(稱)·기(譏)·낙(樂)·고(苦)가 그것〔八風〕이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이(利), 잃거나 지는 것을 쇠(衰), 명예를 얻는 것을 예(譽), 훼방을 받거나 욕설을 듣는 것을 훼(毁), 칭송받는 것을 칭(稱), 경멸·속임을 당하는 것을 기(譏), 즐거운 일을 낙(樂), 괴로운 일을 고(苦)라 한다. 이(利)·예(譽)·칭(稱)·낙(樂)은 순풍이고 사람들이 다 바라는 것이지만, 쇠(衰)·훼(毁)·기(譏)·고(苦)는 역풍이고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것이다. 호리피해(好利避害)의 확장판이다. 필자 같은 범부 중생에게 순풍은 선이자 호(好)이고, 역풍은 악이자 불호(不好)다. 그래서, 순풍만 불기를 바란다. 그러나, 형성된 모든 것들은 무상하고 고정된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 일월이 바뀌고 밤낮이 순환한다. 일음(一陰) 일양(一陽)이 역(易)이다. 사계절이 돌고 돌며 길흉화복이 반복된다. 공덕천녀가 있으면 흑암천녀가 있다. 사물의 한쪽만 취할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사랑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증오가 있으면 화해가 있다. 합(合)은 갈라지고 분(分)은 합해진다. 강한 것은 약해지고, 약한 것은 강해진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화복규승이다. 꽃길만 걷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순풍과 역풍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향기 있는 품격이다.

그러므로, 성현들은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팔풍이 불어도 의연하고, 바위처럼 견디어내는 삶을 강조한다. 호불호를 같이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욕(忍辱)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역풍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싸움터의 코끼리가 날아오는 화살을 잘 견디듯 나 또한 어리석은 자들이 주는 갖은 욕설을 잘 참고 견디리라”는 게송을 읊으셨고, 장자는 아내가 죽자 ‘항아리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는데, 부처님의 대응은 어쩐지 범부 중생이 흉내 내기 어려운 것 같고, 장자는 과장된 너스레를 떠는 것 같다.

『요범사훈』은 16세기 중국 원요범이 그의 아들에게 운명을 개선하는 방법을 훈육하는 내용인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 운명에는 상수(常數)와 변수(變數)가 있다. 상수는 우리가 이미 지은 업이어서 바꾸기가 어렵지만, 변수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업으로 우리의 의도적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으므로 좋은 업(참회, 선행, 겸손)을 지어 행복한 인생을 창조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사무량심·육바라밀이거나,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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