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필리핀에 닥친 큰 태풍으로 인해 이재민이 속출하자 우리 종단에서도 그들을 돕고자 종도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금했다. 도산 총무원장스님을 비롯한 종단 간부스님들이 1월 19일부터 22일까지 필리핀 현지에 가서 주민들을 위로하고 성금으로 구입한 태양광 랜턴과 의류 등 구호물품들을 전달하였다.

또, 사단법인 ‘나누우리’가 1월 2일 종단 산하 공식 국제구호기구로 승격하였다. ‘나누우리’는 국내 소외계층 뿐 아니라 캄보디아에서도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데, 오는 4월 캄보디아에 가서 우물개발, 정수기설치, 학교교실건립 등의 지원활동을 벌인다.

종단적 차원에서 이렇게 지구촌의 어려운 곳을 살피고 도와주고자 마음을 내는 일은 현실적 고통에 처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한 대승의 보살행을 직접 실천하는 일이므로 불교의 시대적 소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국제 개발 구호 활동은 우리와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무주상보시 차원에서 지속돼야 한다.

다만 과거 우리나라 관변단체나 종교NGO들의 성급한 국제구호활동 과정에서 발생했던 시행착오를 잘 살펴서 무엇이 구호대상 지역과 사람들이 우리를 공생(共生)의 동반자로 환영하는 길인지 그 방향 설정을 잘 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첫째, 물리적인 도움을 앞세워서 그들을 가르치려는 입장이 우선해서는 안 된다. 물질문명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들의 정신문명이 우리보다 저급한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쓰나미 사태를 돕기 위해 한국의 구호단체들이 현지에 갔을 때 그들은 우선 급한대로 구호물자를 받기는 했지만 국민들의 정서가 게재된 신문에서‘쓰나미는 우리의 윤리도덕적 해이에서 온 인과’라고 받아들이면서 피해지역이 세계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오는 유흥지로 재건되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들의 정신적 유산인 불교수행을 배워갈 수 있도록 명상이나 불교문화 센터를 지역마다 건립할 수 있도록 지원 요청해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와 같이 그들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

둘째, 지원한 사업이 현지 주민들의 자발성에 입각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애써서 마을 회관이나 교육복지 시설을 건립해 주었지만 몇 년 되지 않아서 관리소홀로 인해 애물단지가 되어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급적 현지인들이 스스로 재활이나 자활의지를 가지고 유지 발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 조직의 소프트웨어가 연계되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셋째, 선교를 중시하는 종교에서 벌이고 있는 국제개발구호 사업의 부작용 문제가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을 반면교사 삼아 주의해야 한다. 특히 파키스탄과 인도, 스리랑카 등 동남아 국가에는 상당 수의 이슬람교도들이 있기에 자칫 이질적인 종교문화에 대해 호전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단의 국제구호사업이 이러한 여러 가지 경험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성숙한 모습으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정성을 들인다면 오늘날과 같은 국제문화 교류의 시대에 물이 스며들 듯 우리 전통불교문화의 진수를 전 세계에 알리고 보급하는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 가지 더 부언하자면 한국국제협력단(KOICA)등 국가적인 차원의 개발도상국 지원 프로그램을 잘 살펴서 국제지원 자원이나 프로그램 면에서도 개발구호사업의 파트너십을 잘 형성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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