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반특 존자와 장군죽비

각자의 마음에도 장군죽비 걸어두고 ‘조사관’ 타파를

‘죽비’는 주로 선원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도구(道具)다. 약 40~50cm 정도의 대쪽 두개를 합하여 제작하며 때로는 여타의 나무를 대나무 모양으로 깎아 만들기도 한다.
이에 비해 ‘장군죽비’는 대웅전이나 대방의 어간(御間) 안쪽기둥 양쪽에 각각 한 짝씩 걸어놓는 커다란 죽비를 말한다. 죽비라고는 했지만 일반 죽비와 달리 가로 11㎝ 세로 180㎝ 두께 2㎝ 정도의 기다란 나무판이다. 표면에는 세로로 ‘수구섭의신막범 여시행자능득도(守口攝意身莫犯 如是行者能得道)’라 쓰고 그 밑에는 불·보살님의 삼밀(三密)을 표상하는 종자(種子, bija) 옴(唵)·아(阿)·훔(우) 3자를 범자(梵字)로 써넣는다.
저녁예불에서 상단예불을 마치고 중단예불을 모시기 직전 낙조시(落照時)에 맞추어 석존의 열반을 의미하는 당종(堂鐘)을 1망치 친다. 이어 장군죽비를 들어 기둥을 한번 울린다. 규격이 큰 만큼 소리도 매우 크다. 이는 무명의 껍질을 타파하는 것으로써 참선학인이 통과해야하는 조사관(祖師關)을 부술 것과 이를 목적으로 수행에 임할 것을 의미한다.
어간 양쪽 기둥에 한 짝씩 걸어놓는 것은 ‘식당작법(食堂作法)’이나 ‘시련절차(侍輦節次)’ 또는 ‘하단관욕(下壇灌浴)’ 말미에서 대중의 열을 고르게 하기 위해 ‘금판(禁板)’으로 사용할 때, 두 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뚜 짝을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한 짝은 장군죽비가 걸려있는 기둥이나 벽이다.
선가에서는 수행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불립문자 직지인심(不立文字 直指人心)’을 표방하는 까닭에 문자 역시도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둔탁한 외마디 소리를 내는 죽비가 선가에서 애용되고 각광받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런 금기를 깨고 앞서 소개한 글귀가 장군죽비에 올려져 있는 것은 왜일까?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기까지에는 주리반특 존자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주리반특 존자는 누구인가?
주리반특(周利槃特, 小路) 존자는 16나한 가운데 16번째에 자리하신 분이다. 이 분은 부처님 재세시 사위성(舍衛城)의 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다. 10번째 자리하신 마하반특(摩訶槃特) 존자와는 형제지간이시다.
동생인 반특은 품성이 우둔하여 가르쳐 주어도 곧 잊어버렸다. 3년 동안 1수의 게송조차 외우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보 주리반특[愚路]’이라 불렀다. 급기야는 무리로부터도 쫓겨나게 되었는데, 전화위복이랄까 부처님께서 친히 돌보시며 가르쳐주시는 행운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털어야지 닦아야지[拂塵除垢]’라는 간단한 가르침을 주셨다.
반특은 비구들의 신발을 털고 닦으며 이 짧은 구절을 반복해 염송했다. 그리고 무엇으로 무엇을 없애야하는지를 서서히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아라한과를 증득했다. 대신통력도 구비하였으니 갖가지 형상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주리반특 존자가 1600아라한을 권속으로 지축산(持軸山)에 머물면서 정법을 보호하고 지니며 중생에게 넉넉하게 이익을 주고 계시다 한다.

위 게송을 적어놓은 유래와 이유
부처님 당시 비구니의 처소는 비구 처소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자리하도록 했다. 비구로부터 보호를 받는 한편 너무 가까이 있음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려는 조처였다. 그리고 비구니들은 부처님이나 부처님께서 추천하신 비구를 모시고 법회를 보았다.
어느 날, 법회를 위해 비구니 대표가 부처님께 왕림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주리반특을 보내마고 하셨다. 비구니는 너무 놀랐다. 그가 아는 주리반특은 천하에 바보였기 때문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이신지라 무리로 돌아가 그대로 전했다. 비구니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래서 ‘주리반특이 오면 거꾸로 우리가 그 게송을 가르쳐주자. 그리하여 부끄러워 입도 떼지 못하도록 하자’고 결의했다. 여기서 그 게송이란 다름 아닌 부처님께서 일러주셨고 주리반특이 3년 걸려 겨우 암송하게된 ‘수구섭의신막범 여시행자능득도’라는 것이었다.
드디어 정해진 날 존자가 등장했다. 비구니들은 존자의 법력에 자기들끼리의 약속도 잊은 채 다투어 존자께 경배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어린 비구니들은 전날의 약속대로 존자에게 게송을 일러주며 무안을 주려하였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놀란 나머지 스스로 머리를 땅에 대고 참회하였다.
존자께서 비구니들에게 설하신 법문은 일찍이 부처님께서 존자를 위해 일러주신 것과 같았다. 즉, 게송과 함께 게송의 내용을 분별하여 신구의 삼업을 잘 단속하고 그 삼업이 일어나고 소멸함을 관(觀)하면 자연히 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간단하지만 불교의 방대한 수행강령이 함축된 말씀이다. 오늘날까지 장군죽비 위에 써놓고 염송하는 유래며 이유다.

주리반특이 바보로 태어난 인연
비구들이 생각했다. ‘주리반특이 갑자기 아라한과를 증득한 것은 부처님의 특별한 배려가 아닐까?’ 그래서 그 연유를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주리반특이 전생에 과거칠불 가운데 여섯 번째 가섭불(迦葉佛) 당시 비구의 몸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도 아둔한 비구가 있었는데 주리반특이 그를 자주 놀렸고 그 과보로 금생에 바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이야기에서도, 주리반특은 과거 전생에 훌륭한 스승이었다고 했다. 어느 날 설법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쉬려는데 제자가 찾아와 질문을 했다. 주리반특은 피곤한 나머지 답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리고 그만 그 약속을 잊어버리고 대답을 못해주었으며 그 과보로 금생에 바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겁의 선연으로 불회상(佛會上)을 만나게 되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하셨다.
그렇다고 부처님의 위신력만으로 아라한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석존께서 일러 주신대로 삼업을 잘 단속했으며, ‘불진제구’가 반특에게는 화두였고 그것을 깨친 것이다.

장군죽비의 용도 몇 가지
저녁예불시 중단예불을 모시기 전에 장군죽비를 울린다고 하였는데, 이는 신중제위에게 조사관의 타파를 목적으로 수행에 임하도록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라 한다. 신중은 아직 견성(見性)하지 못했음에도 호법성중이기에 스님들을 위시한 많은 불자들로부터 예를 받는다. 이로 인해 자칫 아만이 치성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행에 철저를 기할 것을 일깨운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또, ‘식당작법’에서도 쓰이는데 ‘식당작법’이라 함은, 천승재(千僧齋) 혹은 만승재라는 말이 있듯 많은 스님들이 한 장소에서 법답게 거행하는 공양의식을 말한다. 수행자라도 음식을 앞에 두면 자칫 마음이 흩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질서를 잡는답시고 거룩한 스님들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평소 낯익은 도구인 장군죽비를 들어 보임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수행자 본연의 자세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방법은 좌판수(左判首) 우판수(右判首) 두 스님이 식당작법의 좌장인 중수(衆首) 앞으로 나아가 금판인 장군죽비를 횡(橫)으로 받들고 반배한다. 중수는 예를 갖추고 있는 승려가 담당자임을 확인한 후, ‘좌판에 ○○스님, 우판에 ◇◇스님입니다’라고 소리하여 대중에게 알린다. 이를 신호로 두 스님은 상대가 서 있는 쪽을 향해 자리를 엇바꿔 진행한다. 이때 진행하는 방향으로 금판을 서서히 돌리며 대중의 열을 고른다. 제자리로 돌아온 두 스님은 먼저와 같은 모습으로 중수 앞에 나란히 서서, 정렬이 완료되었음을 ‘일제(一齊)’라는 소리로 고한 후 자리로 돌아간다. 대중들은 비로소 자리를 잡고 좌정한다.
‘하단관욕’에도 장군죽비가 등장한다. ‘관욕’은 영가의 마음을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의 상태로 환원시키는 의식이다. 의식은 사찰의 정문인 해탈문 밖에서 거행하며, 관욕을 마친 일행은 본당을 향해 이동한다. 그러자면 해탈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문이 닫혀있다. 법주 스님이 문 앞에서 <개문게(開門偈)>를 읊어 결구에 이르면 판수가 금판으로 대문을 세 번 두드린다. 이를 신호로 문 안쪽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부기사(副記事) 스님이 문을 활짝 열고 대중을 맞이한다. 즉, 해탈문에서의 ‘문’은 조사관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게송의 내용은,

捲箔逢彌勒(권박봉미륵)
발을걷고 다가서면 미륵존불 만나뵙고
開門見釋迦(개문견서가)
문을열고 들어서면 서가세존 뵈올지니
三三禮無上(삼삼예무상)
거듭거듭 무상존께 머리숙여 절하시고
遊戱法王家(유희법왕가)
여래께서 자리하신 법왕가에 노니소서.

게송의 내용을 보니 깜짝 놀랄 일이 전개되고 있다. 시간이 초월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공상과학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미래불과 과거불을 한 자리에서 뵙는다는 것은 자신의 경지가 거기에 미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열리는 문이라는 의미다.
앞서 ‘시련절차’에서도 장군죽비가 쓰인다 했거니와 예전에는 시련행렬 맨 앞 정 중앙과 금련(金輦)의 좌우에 자리한 것이 장군죽비며 그 역할은 이미 언급한바와 같다.
옛말에 ‘심심하면 좌수 볼기를 친다’고 했는데 어리석은 일을 하나 저질렀다. 장군죽비에 있는 게송이 7언2구뿐이어서 ‘제불지도부재성 전안회두고아신(諸佛之道不在聖 轉眼廻頭顧我身)’이라는 내용을 보태 칠언절구를 만들어 본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서 한 번 크게 웃으실만한 거리라도 됐으면 싶다.

諸佛之道不在聖(제불지도부재성)
모든 부처님의 길은 성스러움에 있지 않나니
轉眼廻頭顧我身(전안회두고아신)
눈과 얼굴 함께 돌려 자기 자신을 돌아 보라.
守口攝意身莫犯(수구섭의신막범)
입을 지키고, 마음을 잡고, 몸으로 범치 말지니
如是行者能得道(여시행자능득도)
이처럼 행하는 사람은 능히 도를 얻으리라.

각자 마음의 방에도 장군죽비를 걸어두고 조사관 부서지는 소리가 어느 방에서 먼저 들려오는지 귀기울여보자.
(동방불교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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