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성(팔리문헌연구소장)
비영리 독립 언론인 <뉴스타파>는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여 해외 비밀계좌를 개설한 한국인 150여명의 명단을 폭로했다.

<뉴스타파>의 폭로는 지난 4월말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진행하는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의 유일한 한국 파트너로 참여해 취재한 결과물이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람 중에는 사회의 지도급 인사는 물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도 포함되어 있다.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란 글자 그대로 물리적 실체가 없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말한다. 사업 유지를 위해 소요되는 세금을 절감하기 위해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세피난처에 주로 설립된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주된 목적은 탈세와 검은 돈을 세탁하기 위함이다. 처음부터 탈세와 비자금 조성을 위한 나쁜 의도로 설립된 떳떳하지 못한 회사이다.

문제는 이러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탈세는 물론 기업의 비자금 마련을 위한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맹점과 합법을 가장한 부도덕한 범죄행위에 속한다. 불교적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행위는 투도죄(偸盜罪)에 해당된다. 투도는 남의 물건을 몰래 훔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탈세는 납세자가 납세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납부해야 할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탈세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투도와 다를 바 없다.

조세피난처의 페이퍼 컴퍼니가 갖고 있는 보다 심각한 문제는 국내 자본, 즉 국부(國富)가 해외로 반출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 돈이 국내에서 재투자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 납부해야 할 세금을 납부하지 않기 위해 ‘종이 회사’를 만드는 것은, 왕조시대였다면 반역(叛逆)행위로 처벌했을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명백한 반역행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자유롭게 경제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국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자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가 있어야 개인의 행복도 누릴 수 있다는 국가관부터 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치스럽다. 최소한 국법을 지키라고 충고할 뿐이다.

사실 국가가 있어야 개인의 사업도 펼칠 수 있다.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에게 국가가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들은 국가에 해를 끼치는 범법자들이기 때문이다.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에 의하면, 납세의 의무는 인류가 이 땅에 살기 시작하여 국가가 형성되면서부터 자진해서 세금을 납부하겠다고 합의한 사항이다. 국가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해주고, 그 대신 국민은 국가에 그 보답으로 세금을 납부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오늘날의 조세제도는 국가 기원과 동시에 실행되었던 매우 오래된 제도이다. 이것을 루소는 ‘사회계약설’이라고 불렀다.

한편 붓다는 출가자가 아닌 재가자들에게 재산은 궁핍의 고통을 제거하는 묘약(妙藥)이기 때문에 정당한 방법으로 보다 많은 재화를 획득하라고 권장했다. 이를테면 재가자가 재산을 획득하되 정당한 방법, 즉 ‘이법(理法)에 적합한 행위’, ‘비난을 받지 않는 행위’, ‘순수한 노력에 의한 행위’ 등에 의해 재산을 획득하라고 가르쳤다.

붓다는 재가자들에게 “자기도 남도 괴롭히지 않고 정당한 방법에 의해 재산을 증대하고 집적하라.”고 말했다. 또한 “거래에 있어서도 부정한 화폐, 부정한 도량형, 부정한 수단 등도 배척하라.”고 타일렀다. 붓다는 재가자들에게 또 “재물을 획득하는 것은 꿀벌이 온갖 맛있는 꿀을 모으듯 해야 하며, 그리고 밤낮으로 노력하면 그 재물은 불어나간다. 마치 개미가 쌓는 흙더미 같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붓다는 꿀벌이 꽃의 꿀을 채취하듯이 재물을 축적하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우리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경제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특수 계층들은 경제정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탈법을 일삼고 있다.

이번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경제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서민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벗어나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탈법과 부정이 없는 경제민주화는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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