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으로 근세 단학(丹學)의 대표라고도 불리는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유학자로서, 승려로서의 삶 속에서 80여 수나 되는 많은 차시(茶詩)를 남긴 다인이다. 금오산 용장사에 머물 때는 초암차(草庵茶)를 일으켰으며 당시 일본 국왕사로 온 ‘준장로(俊長老)’란 스님에게 초암차 정신을 전해주어 일본의 초암차와 와비차가 탄생하게 하는 인연이 되기도 했다.
매월당이 차나무를 기르며 읊었던 ‘양다(養茶)’ 라는 시가 있다.

해마다 차나무에 새 가지가 자라네.
그늘에 키우느라 울 엮어 보호하네.
육우의 <다경>에선 빛과 맛 논했는데
관가에서는 창기(槍旗)만을 취한다네.
   (하략)

 이 시를 보면 매월당이 다인으로서의 경지가 어떠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이 시에서 그가 손수 차나무를 기르며 차광(遮光) 재배하였음을 볼 수 있다. 빛 가림을 해 주는 차광 재배는 염록소 함량을 높여주고 차의 성분인 데아닌의 파괴를 막아줘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또 색과 향이 좋으면 될 터인데 관가에서는 뾰족한 어린 싹과 오그라진 작은 잎만을 취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것 같다. 이 시만 보더라도 차를 직접 농사짓고 법제하면서 차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으니 이는 조선 후기 정약용, 초의, 추사 보다 350여년이나 앞선 훌륭한 차인의 전범(典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향을 멀리 떠나오니 감회가 쓸쓸도 하여
옛 부처 산(山) 꽃 속에서 고적하게 보낸다.
쇠 다관에 차를 달여 손님 앞에 내 놓고
질화로에 불을 더해 향을 사르네.
봄 깊으니 바다의 달 쑥대문에 들어오고
비 그치니 산(山) 사슴이 약초싹을 밟는구나.
선의 경지나 나그네 마음 모두 아담하니
밤새워 이야기 나누어도 무방하리라.
                   -‘일본스님 준장로와 이야기하며’

매월당 차시 ‘煮茶’ 중에서(송강스님 서각 작품)
 이 시에서 나타난 ‘준장로’는 일본 국왕 사절로 세조 9(1463)년 조선을 방문하여 그 이듬해  봄, 경주 용장사에 머물고 있는 매월당을 찾아가게 된다. 당시 용장사는 작은 초암으로 낮은 지붕과 흙벽, 작은 출입문 하나에 봉창 하나로 우리나라 대표적 초막, 초암의 구조이다. 방안에는 땅화로를 묻고 난방과 취사를 겸하였으며 손님이 오면 차를 끓였다. 이 같은 조선민중들의 오두막과 초당, 승려들의 토굴 등의 주거시설을 일본 승려들이 보고 체험해 가서 일본 초암차문화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이뿐 아니라 당시 김시습이 쓰고 있던 <금오신화>는 탈고되자마자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으며 1653년에 일본에서 처음 발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서 전해오던 목판본을 최남선이 발견하여 1927년 한국에 처음 소개하였다. 이를 보면 당시 일본에서 우리 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함께 문화 배워가기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당시 삼포왜관이 열리면서 그 후 약 100여 년 동안 조선을 다녀간 일본스님들은 대략 2,500여명으로 보고 있으며 그들은 보통 몇 달에서 길게는 몇 해씩 머물며 조선의 문화를 배워 갔다.
매월당이 남긴 주옥같은 차시는 매월당이 완벽한 차인이었음을 증명한다. 당시 대부분의 선비들은 차를 직접 재배하기 보다는 음다만 하는 것이 보통인데 그의 차시를 보면 차 심기, 차 기르기, 차 따기, 차 만들기, 찻물, 차 도구, 차 달이기, 차 마시기 등이 나타나 있어 그가 전인적 차인임을 알 수 있다.

오늘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작은 솥에 차 끓이며 굽은 연못 바라보네.
홀연히 고요 속에 삶의 의미가 동함을 기뻐하네.
산바람이 불어 계화가지를 꺾어 놓았네.
세간에선 안락을 청복으로 삼지만
난 차 달이며 평상에 앉았다네.
             - ‘산거집구(山居集句)’ 중에서

이 경지가 바로 무사(無事)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차를 어떻게 마시느냐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차인이 도달하는 경지가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시이다. 스스로 차나무를 가꾸어 만든 작설(雀舌)을 김시습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남국의 봄바람 가볍게 불려할 제
차나무숲 잎새 아래 뾰족한 부리 숨겼네.
(중략)
산사 고요한 밤에 객들 둘러앉아
한 잔 차 마시니 두 눈이 밝아오네.       
                          - 작설(雀舌) 중

이른 봄에 따는 새 순은 신령과 통하고 자순은 기창(旗槍) 사이에서 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거품 이는 모양의 해안과 물 끓는 소리의 송풍, 운유차까지 꿰뚫고 있다. 실로 매월당의 차학(茶學)에 관한 박식함과 조예의 깊이가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사에서 찻물이 끓는 소리를 듣는 모습은 한결 평화롭고 한가하다. 한잔 차는 졸음을 몰아내고 눈도 밝게 하지만 무명(無明)의 먹구름이 걷히는 것도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차의 진정한 역할은 지혜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수많은 시와 글을 남긴 매월당은 항상 책에 파묻혀 살았을 것이다. 자유로이 흩어진 책들 옆에는 항상 차가 끓고 있다. 다도가 추구하는 평화와 정적, 안락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다.

마음은 맑아 물과 같고
툭 트여 막힘이 없네.
바로 이것이 물아(物我)를 잊는 경지
찻잔은 의당 자작하여 마신다네.


맑은 정신의 소유자가 홀로 차를 우려 마시는 광경이다. 차의 최고 맛은 홀로마시는 자작이라고 한다. 홀로 차를 즐기는 그러한 맛을 알 때 비로소 진정한 차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차를 마시며 물아를 잊는 삼매의 경지에 드는 것, 이것이 차의 최고 경지인 ‘다선삼매’가 아니겠는가.

매월당 김시습이 남긴 시 가운데 차를 소재로 혹은 주제로 한 작품은 <매월당 전집>에 67편 73수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차가 전래된 이후 승속을 통틀어 가장 많은 차시를 남겼다. 매월당의 다도관은 점필재 김종직(1431~1492)- 한재 이목(1471~1498)으로 이어져 15세기에 한번 ‘초암(草庵)다도’로 정립되었다가 조선 중기에 남인 사림으로 전해져 명맥을 유지하다가 다시 조선후기 다산 · 초의 · 추사에 의해 중흥을 맞게 된다.

실로 조선 전기에 매월당 김시습과 같은 차인이 있어 차의 철학, 다도를 완성시켰다는 사실은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송 강 <서각가, 장수 도성암 주지>
이 글은 <매월당집> <다도철학> <한국인과 차> <한국의 차시> <월간 차의 세계>에서 참고, 인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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