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당신은 삶을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합니다. 마음 하나 고요히 지니려 해도 가만히 두지 않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절입니다. 북한 핵이다, 6자 회담이다 하며 온갖 시나리오와 신경전들에 난무하더니, 이번에는 집값이 폭등했다며, 서로 네탓이라며 설전들만 거듭하고 있으니, 당장 수도권에 집 한 채 마련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사람들마저 어찌될 일인지 걱정이 앞섭니다. 몇 년 되지도 않은 IMF 악몽이 생생한데,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 금융권 부실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는 말들이니, IMF 때도 정부만 믿다가, ‘지도자’들만 믿다가 멋모르고, 영문도 모른 채 앉아 당하기만 한 범부들로서야 이번에도 무슨 사단이 나서 또 ‘금가락지’ 뽑아야 하는 지 그저 어안만 벙벙할 따름입니다. 최근에 끝난 미국 중간선거 때도 그랬습니다. 집권 공화당이 패배했다고, 그래서 이라크에서 미군철수가 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북 핵문제에도 파장이 미칠 거라고, 그러므로 한국은 오히려 미국과 동맹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줄을 잘 서야 한다고, 대북 포용정첵은 이제 실패로 판명났다고, 아니라고, 갑론을박 설왕설래 참 말들도 많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야 다 중요한 사항이고 필요한 논의들일 겝니다. 그러나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가만히 들여다 볼라치면, 말이 좋아 주권재민(主權在民)이지 그 주권 행사라는 게 몇 년에 한번 있는 선거 때 투표용지 도장 하나 찍는 것으로 그만이고, 실권(실질적인 권력 행사)는 정치지도자, 관료, 각 분야 전문가 등 ‘힘있는 자’들에게 있으니 ‘어진 백성(어리석은 백성)’은 그저 ‘굿’이나 보고 있을 밖에요. 그런데 저들의 작태라는 게 대부분 제 잇속 차리기인 경우가 허다하니 하잘것없는 일상에 매몰되어 하루하루 살기에도 급급한 범부중생들 입장에서야 그 굿판에서 ‘떡’이라도 하나 잘 떨어지면 다행이라는 처지입니다. 이 모든 게 욕심이 빚은‘과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도 이념도 과잉이요, 정보도 과잉이요, ‘혁신’도 생산도 과잉이요, ‘옳은 말씀’도 과잉입니다. 구르는 자전거가 더 속도를 내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은 불안감에서 오직 성장과 소비만을 지향하며 제동장치도 없이 냅다 페달만 밟는 형국입니다. 어쩌다 보니 탄 그 자전거에서 차마 내릴 수도 없는 사람들로서는 그 광포한 질주가 두렵기만 합니다. 따지고 보면, 궁핍에 찌든 주민들은 아랑곳 않고 ‘핵무기 카드’로 정권유지에 급급한 북한정권이 안쓰럽습니다. 다같이 평화를 표방하면서도 대북 포용정책이 옳니 그르니 서로 말싸움에 급급한 지도자들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수요 공급이 말한다지만 한강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평수의 아파트 값이 몇 배의 차이가 난다니, 백년도 못사는 인생이 천년을 살 것처럼 아귀 다투는 모습도 우습습니다.초강대국 미국의 정치판도가 중요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이역만리 떨어진 한반도 한 귀퉁이에서 이웃집 순이네 집안사정도 잘 모르는 채, 집 한 칸 마련 못하고 추운 겨울을 나야하는 중생들에게 미국 선거결과를 미주알고주알 전해주는 아침신문을 만나야 하는 현실도 우스꽝스럽네요.무섭고도 우습다니, 인생은 한편의 연극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연극을 하면서 그게 연극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연기를 하거나 관람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어차피 연극이니 대강대충하자고 맘 먹는 연기자도 없을 게고 관객 또한 마찬가질 겝니다. 그러면 싱거워서 애당초 아니 하고 아니 봄만 못할 게지요. 연극인 줄 아니까, 그래서 우리네 삶을 다시 들여다 보는 소중한 시간인 줄 아니까, 열정으로 연기하고 진지하게 관람합니다.인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지만, ‘단 한 번 뿐인 연극’이기에 혼신으로 살아갑니다. 혹자는 ‘인생은 빈 손으로 오지만 한(恨)을 남기진 말고 가야한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삶이 꿈이고, 허깨비고, 물거품이고, 그림자고, 이슬이고, 번개같은 찰라이겠지요. 잡으려면 물거품이고, 누리려면 꿈이고, 내세우려면 그림자인가요. 그러나 비우고, 풀어내고, 물러서고, 다가간다면 어떨까요. 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당신은 삶을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아프고 힘들고 외로웠더라도 그 모든 게 당신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왕 일장춘몽이라면 멋진 꿈을 꾸어 보자는 간곡한 말씀입니다. (若水)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