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 스님 (강원교구종무원장․춘천 석왕사 주지)
"외형에만 집착 말고 진정한 자기를 찾읍시다"

더 꾸미려 하고 더 가지려 할수록 마음의 불안은 커지고 맹목적이 돼
본질을 보고 무상의 도리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전환의 삶을 살아야

󰡒부처님은 몸의 형체로서는 볼 수 없다. 몸은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형체는 거짓이요 허망한 것, 형체가 없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형체가 있고 없는 양면에서 여래를 보아야 한다.󰡓 <금강경>

불자 여러분 !
󰡐외형에 집착하지 말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온 이상 어쩔 수 없이 외형이 있는 형상에 얽매여 살 수 밖에 없어요. 몸이라는 형상에 옷을 입히고 머리를 손질하고 온갖 장신구로 치장합니다. 그래서 거리에 나가보면 같은 옷, 같은 머리의 모양새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그만큼 개성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어요. 따라서 현대인들은 외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우선시 합니다. 옷차림이 조금 세련되지 못하면 매력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최신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마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인양 취급을 당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행을 따라가며 외형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정작 참다운 자기를 가꾸고 드러내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의 외형만을 모방하고 최근의 유행을 좇으며 살다 보니 정작 자기 마음이나 자기 얼굴, 자기의 개성과는 상관없는 자신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나답게 살려는 정신을 상실하고 있어요. 타인과 시대의 유행만을 따르고 외형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진정으로 소중한 것과 참다운 진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음식, 음악, 예술, 의류, 생활공간 등의 문물과 문화도 맹목적으로 외형에만 집착하여 모방하기에 급급합니다.
김치, 된장국 대신 햄버거, 스파게티, 피자, 콜라 등을 더 좋아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햄버거, 피자 등을 먹고자 하는 세태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유행에 집착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TV등 방송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 김치나 된장국을 먹는 모습은 왠지 촌스럽게 묘사되고 스파게티나 피자 등 서양음식은 고상하고 우아한 생활에 등장하는 것은 그런 외형에 집착하는 세태와 음식 맛까지 서구에 침탈당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외형에 대한 집착이 불러일으키는 최대의 병폐는 사람이나 사물의 근본이나 정신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지요. 화려하고 그럴듯하게 치장된 감각적인 것에 더 쏠리다보니 본래의 뜻은 망각하고 외형의 형상에 빠져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형체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써만 볼 수 있다고 강조하신 것이지요.
외형에 집착하는 허위의식을 경책한 옛날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예전 신라의 왕궁에서 스님들을 초대하여 공양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많은 스님들이 왕의 초대이기에 옷매무새에 신경 쓰고 좋은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왕궁에 갔습니다. 그런데 차림이 남루한 스님 한분이 왕궁 입구에 도착해 들어가려 하였습니다. 왕궁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는 그 스님의 옷이 너무나 헤져서 마치 거지처럼 보였으므로 궁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얼마 후 다시 그 스님은 좋은 천의 가사와 장삼을 입고 왕궁 앞에 도착하자 시종들이 안내해 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왕궁에 초대된 스님들이 공양을 하고 있을 때 왕의 눈에 이상한 스님 한분이 보였습니다. 그 스님은 음식을 입으로 넣는 것이 아니라 옷소매 속으로 넣는 것이었습니다. 괴이해서 왕이 연유를 묻자 그 스님은 󰡒내가 거지 옷차림으로 왔을 때는 나를 쫓아냈고 내가 단정한 옷차림으로 왔을 때는 받아들였으니 나를 초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입은 옷을 초대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내 옷에 음식을 먹이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공양에 참석했던 모든 스님들과 왕이 부끄러워했다는 고사입니다. 외형이라는 허상에 집착하는 병폐를 적나라하게 꼬집는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불자 여러분, 외형이나 허상에 집착하면 어떤 행동이나 모습이 나올까요? 한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아마 사치와 위선일 겁니다. 이 육신의 형상은 아무리 잘 먹이고 입혀도 늙고 병들고 언젠가는 이 지구상에서 소멸합니다. 지금 이순간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무상(無常)의 도리를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육신이라는 형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사치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중국의 3조 승찬대사의 <신심명>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방사대막파착(放四大莫把捉) 적멸성중(寂滅性中) 수음탁(隨飮啄)
(사대를 놓아 버려 붙잡지 말고 적멸한 성품 따라 먹고 마실지어다.)

사대(四大)란 육신을 말합니다. 이른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육신을 구성하고 있는 4가지 속성을 말합니다. 지(地)라는 것은 우리 육신의 단단한 고체적 성질 즉 살과 뼈 등을 말하고, 수(水)는 피, 고름, 침 등의 액체적 성질이며, 화(火)라는 것은 체온의 성질, 풍(風)은 이른바 움직이는 활동성 즉 숨소리와 몸의 동작 등을 말합니다.
이 사대로 이루어진 육신을 놓아버려 붙잡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사대로 흩어질 육신에 집착하여 이 육신을 즐겁게 하는 온갖 감각적인 쾌락만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잘못된 가치로 알고 살고 있지요. 그러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인간의 육신 하나를 살찌우고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하여 사슴피를 먹고 뱀을 먹는 등의 온갖 잔인한 짓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속옷 한 벌에 몇 십 만원, 겉옷 한 벌 몇 백만 원에서부터 각종 장신구등 고가의 브랜드 물품들이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또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가방, 구두, 수입 가구 등이 서민의 상상으로는 별천지와 같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어요.
이 모두가 형상에 집착한 사치와 위선이 아닐까요? 잘 먹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고가의 차를 타야만 인격과 행복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야말로 󰡐전도몽상󰡑이에요. 비록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더라도 분수를 지키고 세상의 눈치 같은 것 보지 않고 선하게 살며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훨씬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이웃들의 마음에는 훨씬 동정과 연민, 자비심이 충만해 있을 것입니다.
반면 형상에 집착하여 많이 가지고 그럴듯하게 치장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늘 자꾸만 많이 채우려 하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더 불만에 차있을지도 모릅니다.

궁석자구칭빈(窮釋子口稱貧)하나
실시신빈도불빈(實是身貧道不貧)이라.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타 말하나
실로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이다.

<증도가>에 있는 말씀입니다. 수행하는 부처님 제자들이 외형은 가난한 듯 보여도 참다운 진리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늘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옛 스님네들이 늘상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가난함부터 먼저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형상에 집착한 사치를 멀리해야만 참다운 행복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치품과 소위 허다한 장식품들은 인간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인 향상에도 오히려 적극적인 방해물이 된다고 하셨지요.
또한 󰡒사치하고자 하는 심리는, 덕망이나 인격이나 지식이 남만 못하여 스스로가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하여 물질의 넉넉함을 과시해 남보다 우월해보고자 하는 얄팍한 심리에서 나온다. 사치는 지각없는 사람이 관심을 끌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처님을 모시고 경배하는 신행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올바른 믿음을 내지 않고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을 외면하고 그저 절만 한다면 이는 부처님을 공경하는 자세가 아니라 불상이라는 형상을 공경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금강경>에서도 󰡐형상으로써 부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부처를 구하는 자는 삿된 행이며 참다이 부처를 볼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두다 형상, 외형 즉 다시 말해서 크고 장엄하고 성스럽게만 보이는 형상 그 자체에만 집착하여 경배한다면 참다운 불심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사물에 집착함이 없이 지혜와 선행을 행하라. 모든 것은 영원하지도 않고 붙잡을 수도 없고 소유할 수도 없다. 밝은 지혜로써 번뇌를 없애고 불퇴전(不退轉)의 경지에 이르려거든 지혜와 선행을 수행해야 한다. 지혜와 선행을 수행하면 그릇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생각의 번거로움을 돌이켜 평안하게 될 것이다.
<대품반야 습응품>

사물에 집착함이 없이 지혜와 선행을 실천하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선행을 실천해야만 그릇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평안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껍데기만 보지 말고 알맹이를 보라는 말씀입니다. 태국이나 미얀마 등 남방의 불교국가 스님들은 형상에 대한 집착을 없애기 위하여 해골을 앞에 두고 명상하는 수행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백골관(白骨觀)이라고 하여, 아무리 현재 건강하고 빛나는 청춘을 지니고 있더라도 이 육신은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어서 이 해골과 같이 될 수밖에 없다는 확실한 인식을 갖고 무상을 절감하여 깨달음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도 무상을 직시해야 합니다. 형상, 외형, 체면, 명예, 지위등에 눈이 어두워 집착하지 말고 크게 생각을 전환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해요. 욕심 없고 집착 없는 마음을 지니려면 늘 부처님가르침에 따라 정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적멸의 미소를 품은 부처님의 상호와 아름다운 삶은 바로 집착 없는 믿음과 실천의 향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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