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삼관(一心三觀) ․ 사종삼매(四種三昧)일심삼관이란 원융삼관이라고도 하는데 일심을 대상으로 하고 삼제가 원융함을 관하여, 삼관상이 일심중에 성립함을 관찰하는 것이다. 일체존재의 실상을 원융삼제(圓融三諦)의 관법으로 발견해 가는 것이다. 삼제란 공(空) ․ 가(假) ․ 중(中)의 세 가지 진리이다.천태교리의 골격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천태법화사상의 기초가 ‘공(空)’에 있음을 뜻한다. 공은 불교의 근본적 진리관으로서 불교의 모든 사상과 교리의 밑바탕에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자신의 좁은 견해와 집착, 사고방식을 버리고 사물의 참다운 모습을 사물 그 자체에 합치하여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공이라 한다. 일체의 상대적, 한정적, 고정적 제약을 제거해 버린 절대적, 무한정의 세계를 표현하는 말이다.그런데 소승불교도들은 공을 무(無)로 인식하고 말았으니, 그것은 한정적, 고정적 실체관의 배제라고 하는 공의 본래 의미에서 어긋나고 있다는 것이 대승불교도들의 비판이었다. 천태지의는 공가중 세 가지의 카테고리를 수립하였다. 이것은 용수보살‘중론’의 <관세제품>제24에 있는 “연기라는 것, 우리들은 그것을 공성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가명이며 바로 중도이다”라는 구절과 <보살영락본업경>의 “종가입공(從假入空) ․ 종공입가(從空入假) ․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의 3관을 응용한 것이다. 현실의 모든 사물은 자신과 타인 남자와 여자, 어버이와 자식, 노인과 젊은이, 생과 사,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가난과 부유 등 A와 B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고 서로 의지하고 관련되는 연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가상이다. 따라서 그것을 버리고 본성의 불이(不二) ․ 공(空)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가에서 공으로 들어가는 ‘종가입공’이다. 여기서는 파괴당하는 가의 참다운 모습, 깨달아 들어가는 공의 진리, 그 둘을 관하기 때문에 ‘이제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불이 ․ 공을 파악하는 것은 A, B 두 가지를 버리면서 불이, 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공에 들어가도 공으로 머물러서도 안된다. 공도 역시 공이다. 이리하여‘종가입공’은 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의 진실도 또한 진실이 아니라고 하여 공(空)으로부터 가(假)로 들어가게 된다.‘종공입가’는 가를 공으로 관하고 공도 공으로 관하며, 또한 가를 깨뜨려 공을 사용하고, 공을 깨트려 가를 사용하기 때문에 평등관이라고도 한다.‘종가입공’에도 머물지 않고‘종공입가’에도 머물지 않는다. 두 관법이 함께 존재하고 함께 작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중도제일의’라고 한다. 용수는 중론 관사제품 24에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공성이 성립한 곳에 일체가 성립한다. 공성이 성립하지 않는 곳에 일체는 성립하지 않는다”일체개공이 곧 일체개성이라는 뜻인데, 이러한 의미에서 천태지의는 원돈지관 내지는 일심삼관을 강조하였다.보통 사람은 현실의 거짓에 집착하여 가가 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이 강조되었다. 그런데 소승은 이 공에 집착하여 그것이 가에서 나온 것임을 망각하였다. 그리하여 대승보살이 등장하여 가를 강조하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대승인에게도 위험성이 있었으니, 그것은 가에 깊이 침잠할수록 공을 망각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가에서 공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 점으로부터 중(中)이 강조되었다. 천태지의는 이러한 공 ․ 가 ․ 중의 원융과 상즉의 인식(원돈지관 ․ 일심삼관)을 <법화경>에서 터득해 내었고, 그에 의거하여 모든 가르침과 경전을 가치에 따라 배열하여 후세에 ‘5시8교’로서 정형화된 교상판석을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사종삼매(四種三昧)란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오로지 집중하여 바른 지혜를 얻기 위한 실천의 방법으로 신체의 서고 앉는 동작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눈 것이다. 먼저 상좌삼매(常坐三昧)이니, 앉은 체로 마음을 가라앉혀서 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진리를 관하는 것이다. 다음은 상행삼매(常行三昧)이니, 도량 내 불상의 주위를 걸으면서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창하는 것이다. 셋째는 반행반좌삼매(半行半坐三昧)이니, 방등삼매 혹은 법화삼매라고도 한다. 일정한 기간동안 불상의 주위를 돌면서 걷기도 하고 좌선도 함께 겸하여 하는 수행이다. 이때에는 예불, 참회, 송경 등을 수행한다. 넷째는 비행비좌삼매(非行非坐三昧)이니, 앞의 세 삼매 외에 할 수 있는 모든 삼매를 말한다. 말하자면, 신체의 행주좌와 어느 동작이든 관계없이 그 동작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응시하여 지혜가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사종삼매라는 천태의 실천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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