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어한처 수섭기심(在於閑處 修攝其心) 안주부동 여수미산(安住不動 如須彌山) 관일체법 개무소유(觀一切法 皆無所有) 유여허공 무유견고(猶如虛空 無有堅固) 조용한 곳에서 그 마음을 다스리며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수미산과 같고, 일체법에 대해서는, 아무 있음이 없으며, 마치 허공과 같고, 견고함 또한 없다고 보느니라. 오늘 게송은 법화경 안락행품의 한 구절입니다. 법화경 안락행품은 불제자가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펴는데 있어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먼저 조용한 곳에서 그 마음을 다스려서 어떤 외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수미산과 같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보기를 그 실체를 뚜렷이 보아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아 허공과 같이 보라는 말씀입니다.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우리가 잠시도 조용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듣거나 보아야하고, 누군가를 만나야 하며, 아니면 무엇인가를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마저 느낍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는 가운데 모든 고뇌는 씨앗을 뿌리게 됩니다. 이 법화경 안락행품에는 법화경을 타인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가까이 해야 할 것과 가까이 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 설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보살의 ‘친근처(親近處)’입니다. 법화경에서 설하는 보살의 ‘친근처’ 그 첫째가 ‘인욕의 땅에 머무는 것’입니다. 인욕은 욕됨을 참는 것입니다. ‘욕됨’이란 타인과의 교류에서 일어나는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동요’입니다. 파도처럼 울렁이고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자기 자신도 다스리지 못합니다. 하물며 어떻게 부처님 말씀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것은 끊임없는 바깥 경계와의 부딪침입니다. 자기에게 긍정적으로 순하게 다가오는 순경(順境)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역경(逆境)도 있습니다. 마음의 파도, 마음의 동요가 없으려면 그 모든 경계에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데 그것이 언제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경부동(對境不動)이 바로 수행이라고 했겠지요. 욕됨을 당해서도 그 경계에 따라 움직이지 말고 잘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인욕입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깊은 강의 물은 돌을 던져도 흔들리지 않는다. 타인의 무례한 말에 상심하는 사람은 깊은 강이 아닌 웅덩이인 셈이다.’ 곰곰이 새겨 볼 말입니다. 한편, 안락행품에서는 보살의 불친근처, 즉 불제자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서 국왕, 왕자, 대신, 외도를 비롯해서 격투기를 하는 사람들, 저급한 예능을 하는 사람들, 사냥이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과 나아가 성문승의 무리들까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국왕과 왕자, 그리고 대신 등은 말하자면 권력자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아부하면서 친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틀리지 않겠고, 다른 신앙과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나 격투가, 예능인, 사냥꾼, 낚시꾼이야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며, 비록 부처님 제자이지만 스스로의 성불을 믿지 않는 성문승까지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설하고 있는 것이 과연 법화경다운 내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안랙행품에서는, 일체의 법은 공하나 우리 눈앞에 단지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삶이 항상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이것을 분명히 알아차릴 때 드디어 자유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불교는 자유를 추구합니다. 해탈은 자유요, 성불도 자유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육년 수행의 끝에 이루신 대정각은 바로 대자유 그 것이었습니다. 일체의 행위(업)와 인과의 속박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얻으심 그것이 성불입니다.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기신 분으로 원효스님(617-686)을 들 수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소와 법화종요 등 수많은 저술을 남기심으로 해서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에도 그 이름이 알려지고 오늘날까지 그분의 저서가 많은 사람들에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원효스님은 생애 두 번이나 중국 당나라로 구법 유학의 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두 번 모두 도중에 우연치 않게 생긴 일들로 해서 유학에 대한 꿈을 접고 돌아오게 됩니다. 스님이 처음 유학길에 올랐던 것은 34세 때였는데 이때는 고구려 국경에서 국경 수비대에 잡히는 바람에 간첩 협의를 덮어썼다가 나중에 풀려나서는 결국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스님이 다시 유학길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십 일 년 뒤인 45세 때였습니다. 이때는 처음과 달리 해로로 당나라로 가기 위하여 당항성(신라의 항구, 지금의 경기도 화성)에까지 당도하였는데 날이 저물어 바닷가에 도착하였기도 하고 마침 비가 내려서 주위를 잘 분간하기도 어려워 아무 곳이나 비를 피할 곳을 찾던 차에 마침 토굴이 하나 있어서 거기로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윽고 아침이 되고 하룻밤 묵었던 토굴을 나서게 되었는데 문득 간밤에 목이 많이 말랐을 때 시원하게 마셨던 바가지의 물을 생각하고는 한 모금 더 하고 싶은 생각으로 바가지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시 그 바가지를 보았을 때 원효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젯밤에 바가지라고 생각하였던 것은 해골 바가지였고, 시원하게 목을 축였던 물은 그 해골 바가지에 고였던 물이었습니다. 원효스님은 그 자리에서 당나라로의 유학을 단념하고 귀로에 올랐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결국 마음의 문제임을 원효스님은 깨달았습니다. 그 밖에 달리 구 할 것이 없는데 당나라까지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 일을 계기로 원효스님이 남긴 오도송입니다. 마음이 생기면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감실과 무덤이 둘이 아니로다. 삼계는 오로지 마음이요, 만법은 오로지 생각인데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으니 달리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후 원효스님은 스스로 저자 거리로 내려와 자신을 소성거사(小性居士)로 부르고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만이 바로 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라고 무애가를 부르며 세상을 활보하였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 있었던 요석공주와의 인연과 아들 설총을 낳은 사실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이란, 즉 ‘무애인’이란 ‘자유인’을 말합니다.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대 자유를 찾은 사람입니다. 원효스님이 저자 거리를 돌며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른바 도둑 이야기인데, 도둑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잡힌 적이 없는 도둑에게 아들이 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하시기에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들에게 잡힌 적이 없습니까? 저에게도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 이에 도둑은 아들을 데리고 어느 부잣집으로 갔습니다. 부잣집의 모든 식구들이 잠들기를 기다려 이윽고 창고 앞에 도달한 도둑은 아들의 겉옷을 벗깁니다. 그리고는 창고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아들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도둑은 갑자기 창고문을 걸어 잠그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가 버렸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게 된 도둑의 아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앞이 막막하였습니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나오게 되고 그러다가 그들에게 잡히면 꼼짝없이 맞아 죽을 일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도둑의 아들은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창고 안에서 쥐처럼 벽을 긁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쥐 소리가 나면 혹시 창고문을 열어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이나 창고 벽을 긁고 있자니 사람들이 나와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창고문을 살며시 여는 것입니다. 도둑의 아들은 이때다 하고 문을 밀치고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냅다 동구 밖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속옷만 입은 도둑의 아들은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 눈에 잘 띄었습니다. 그래서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았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도망을 가던 도둑의 아들은 속옷까지도 벗어서 마침 골목 어귀에 있던 우물에 던져 넣고서 계속 달음박질 쳤습니다. 이윽고 우물에 당도한 동네 사람들은 우물에 흰 것이 떠 있자 도둑이 우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그 자리에서 모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도둑이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 도둑은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가 막힌 아들이 “아버지!”하고 불렀습니다. 그제야 눈을 떤 아버지는 “지금이 몇 시지?” 라고 하였습니다. “두 시입니다.”라고 하자 아버지는 “너는 나보다 더 소질이 있다. 내가 돌아 왔을 때는 네 시였거든.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갇히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나야 하는 거야.” 원효스님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해주었다는 도둑이야기는 참 재미있습니다. 승복도 걸치지 않고 평민들과 같은 행색을 한 스님이 남녀노소를 앞에 두고 아비 도둑과 아들 도둑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스님이 다니던 거리의 사람들은 스님 덕분에 염불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생사에 자재로운 분이니 무엇 하나 걸릴 것이 있었겠습니까. 저자거리의 사람들과 웃고 울고 아파하고 즐거워하는 천진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원효스님의 이 도둑이야기는 어쩌면 세상이라는 창고에 갇힌 사람들에게 주는 스님 나름의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갇힌 곳으로부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나야 된다. 그래야 제대로 산다.’ 하는 것이지요. 자유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온갖 속박, 스스로 만든 속박, 스스로 그은 선,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은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먹어도 맛을 모릅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원효스님처럼 ‘일체에 무애하고 일도에 출생사’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백일기도 기간에 여러분 부디 잠긴 창고로부터 벗어나온 도둑의 아들처럼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일체에 무애할 수 있는 큰 지혜와 용기를 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망해사 주지 혜학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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