華嚴과 더불어 중국불교 精華화엄사상과 더불어 중국불교의 정화(精華)라고 할 수 있는 천태사상은 중국 수나라 때 천태 지의(智顗)에 의해 <법화경>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사상이다. 천태종(天台宗)이라는 호칭은 당 중기 형계 담연(湛然)에 의해 사용된 것으로 천태 지의에 의해 세워진 종파이다. 천태종의 개조는 북제(北齊)의 혜문(慧文)선사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전기나 기록은 없다. 제2조는 혜사(慧思)선사이며, 혜문선사에게서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심요를 전수받고 법화삼매(法華三昧)에 의해서 크게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혜사의 뒤를 이어 천태교학을 대성한 이가 바로 제3조인 천태 지의이다.지의(538~597)는 형주의 화용(華容)에서 태어났으며, 양나라가 망한 다음 해인 18세에 출가하기에 이른다. 20세에 구족계를 받고, 혜광(慧曠)에게서 <섭대승론>과 유식, 율(律) 등을 배웠지만, 후에 대현산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방등참법(方等懺法)을 닦았다. 23세에 광주의 대소산에 들어가 혜사에게 사사하였으며, 거기서 법화삼매를 오도(悟道)하였다.지의의 저술은 대단히 많지만, 현존하는 대표적인 것으로는 <법화현의(法華玄義)>, <법화문구(法華文句)>, <마하지관(摩訶止觀)>, <유마경략소(維摩經略疏)>, <유마경현소(維摩經玄疏)>, <차제선문(次第禪門)>, <사교의(四敎儀)>, <관심론(觀心論)>, <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 등이 있다.지의의 법을 이어 후계자가 된 사람은 장안 관정(灌頂)이다. 관정은 지의의 문하에 들어가 광택사에서 관문(觀門)을 배우고 인가를 받았다. 이후 항상 지의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강설을 기록했으며 지의가 입적한 후에는 그 유지(遺旨)를 받들어 천태산에 머물렀다. 저서에는 <열반경소(涅槃經疏)>, <열반경현의(涅槃經玄義)>, <국청백록(國淸百錄)> 등이 있다. 관정의 제자에는 지위(智威), 홍경(弘景) 등이 있다. 지위는 제자인 혜위(慧威)에게 법을 전하고 혜위는 현랑(玄朗)에게 전했는데, 당대에 이르러 법상종, 화엄종, 선종 등의 세력에 눌려 천태종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지의 이후로는 천태 6조인 당나라의 형계 담연(711-782)이 천태학의 체계와 이론을 정비 완성하고, 송나라 사명 지례(960-1028)가 중흥한 외에 종파로서는 융성하지 못했으나, 그 사상은 각종의 불교학에 크게 미치고 보편화되어 이른바 중국 제일의 불교철학 이라 칭한다.특히 우리로서는 고려의 제관이 송나라로 천태학의 전적들을 역수출하여 당말 이후로 쇠락한 중국의 불교학과 천태학을 부흥하게 하고, 천태사교의를 저술하여 전폭적이고 대표적인 불교개론으로서 만국의 성전이 된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또한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천태종을 도입하여 고려사회의 사상적인 통일을 성취하고자 하였다.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인도불교의 모방이나 전승이 아니라 불교를 중국민족화한 것이다. 이것이 중국불교의 위대성이다. 불교경전이 중국에 수입될 때, 어떤 계획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산발적으로 뒤섞여진 채 중국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경전들은 남북조시대부터 계획적으로 정리7되고 분류되었다. 어느 경전이 부처님의 근본적인 뜻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주안점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한 시기, 그 대상, 설법한 목적, 방법, 그리고 사상의 깊고 얕음 등을 연구하고 비판하여 불타의 본 뜻을 말씀한 경전을 설정하고 이를 기본으로 하여 다른 경전의 지위를 판정하였다. 이것을 교상판석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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