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주민센터 입구에 줄지어 선 화분의 동백나무는 엄동설한에도 매실만한 초록꽃망울을 매달고 있다. 그 사이사이 화살나무의 붉은 잎은 누군가의 심장을 따사로이 데울 듯하다. 출입문 앞에 놓인, 지난 계절 우윳빛 꽃숭어리를 탐스럽게 피웠던 불두화는 할머니 젖가슴처럼 쭈그러들어서도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대로변에 위치한, 변변한 정원 하나 갖지 못한 동 주민센터 앞에는 “크리킨디 마을 정원”이라는 노란 푯말이 걸려 있다. 단풍나무 앙상한 가지 사이를 빼곡히 채우며 통째로 들어온 하늘. 그 곁에 크리킨디 공유상자가 놓여 있다. ‘크리킨디는 산불을 끄는 작은 벌새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지만,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옷과 신발 등 안 쓰는 물건은 나눠주시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셔도 됩니다. 아름다운 인연이 시작됩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목기쟁반 세트가 들어 있다. 삼십여 년 전 폐백 드릴 때 시어머님이 저런 목기쟁반에 들어 있던 밤과 대추를 내 혼례복 치마에 던져주시며 “아들 둘, 딸 하나!”라고 큰소리로 말씀하셔서 웃음바다가 되었던 생각에 미소가 절로 돋아난다. 또 다른 칸에는 리코더가 들어 있다. 어느 단란한 가족이 저녁을 먹은 후 모여 앉아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리코더를 연주하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어떤 장소는 그저 하나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추억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마을 정원에/ 서 있는 크리킨디 공유상자// 동그란 열두 칸 창을 가진/ 노란 몸통 위에/고추잠자리 색 날개를 달고 있다// 누군가 상자 속에 넣어두고 간/ 꽃무늬 수가 놓인 아이의 청바지// 오빠 중학교 하복으로/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파란 주름치마 생각이 난다// 주름 바다가 구겨졌다 펴졌다/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것 같아서/ 한 철 내내 즐겨 입었던 옷//공유상자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유년의 솔기에서 금박이 실밥처럼 반짝거리고 있는/ 추억 하나를 꺼내 만지작거려본다” <졸시, 「공유상자를 들여다보다가」 전문>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오빠의 작아진 교복으로 주름치마를 만들어 주신 적이 있었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무엇보다도 파란색을 좋아했던 나는 다른 옷들 다 놔두고 그 옷을 즐겨 입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은 부족한 것보다 넘치는 것이 많은 시대이다. 아파트와 주택가의 헌옷 수거함엔 버리는 의류들이 넘쳐난다. 공유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하고, 아낄 수 있는 것들은 아껴가며 함께 사는 공동체의식이 더욱 절실한 이유를 우리는 함께 겪으며 견디었던, 코로나19를 통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숲에서 큰불이 났을 때, 숲속 동물들은 모두 도망을 갔으나, 크리킨디라는 벌새는 호수를 오가며 작은 부리로 물을 머금고 와서 불을 껐다. 그 미미한 일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동물들이 비웃었으나 크리킨디는 “나는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계속 날갯짓을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동물들이 감동받고, 너도나도 동참하여 결국 불을 끄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크리킨디의 말처럼 작은 일일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실천해 가야 한다. 이제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환경을 위해 한정 되어 있는 자원을 아껴 쓰고, 생활 쓰레기를 줄이는 일부터,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이 시기를 잘 건널 수 있었으면 한다. 크리킨디 공유상자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신축년 새해에는 이웃과 함께 나누며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시인·계간 ≪불교문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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