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사이에
산 하나쯤은 두고 살자
너무 쉽게 만나는 것보다는
산 하나 만큼의 그리움과
산 하나 만큼의 사랑 꾹꾹 눌러두었다
용수철처럼 만나자
너와 나 사이에
풀벌레 울음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
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산 꿩 우는 소리
산다화 피는 소리 하나쯤은 두고 살자
네가 풀벌레가 되고 싶을 땐
내가 풀벌레가 되고
내가 산 꿩이 되고 싶을 땐
네가 산 꿩이 되고
네가 산다화가 되고 싶을 땐
내가 산다화가 되어
산 넘어가 만나자
너와 나 사이에
그만큼,
꼭 그만큼의 산 하나만 두고
사랑하자
너무 가까우면
못 같은 것들,
휜 철사 같은 것들,
가시 같은 것들,
진 꽃잎 같은 것들 보일지도 모르니
산 하나만큼의 그리움
꾹꾹 눌러놓고 살자
꾹꾹 눌러 담고 사랑하자

-얼마 전, 사랑 때문에 사랑을 찾아 보았다.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 (톨스토이)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큰 고통이며,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오트 L V. 그륜베르그) /‘사랑의 치료법은 더욱 사랑하는 것밖에는 없다.’(H.D. 도로우의 일기 중) /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토마스 만) / ‘사랑은 악마이며 불이며 천국이며 지옥이다. 쾌락과 고통, 슬픔과 후회가 거기에 함께 살고 있다.’(반 필드)

그럼, 석가모니는 사랑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딱 한말씀 하셨다.

“미움은 미움으로 멈춰지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만 멈출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렇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위에 나오는 모든 사랑을 덮는다. 불교의 사랑은 한량없는 연민과 자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불교적 사랑을 할 수 있다. 불교에서 절대로 상대방에게 사랑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고통인 까닭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고, 누구도 한 곳에 영원히 머물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대부분 사랑을 자신의 애착덩어리로 만들고 산다. 그래서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석가모니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분명하고, 과학적이고, 응용 가능하다. 사랑, 동정, 기쁨, 평정은 바로 깨달은 사람의 본성이다. 이 네 가지는 우리 내면, 모든 사람의 내면, 모든 것의 내면에 있는 진정한 사랑의 네 측면이다”라고.

사랑을 잃어본 자만이 사랑의 진실을 안다. 그리고 그만큼 성숙한다. 코로나19 감염방지뿐만 아니라 사랑의 상실과 치유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는 필요하다. 그 ‘거리두기’가 탄탄하면 탄탄할수록 코로나19 감염 방지처럼 사랑의 중독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오늘 사랑해야겠다.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이 사랑’이므로.

-이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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