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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4(2020)년 10월 26일 월요일
【이벽 시인의 시로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오독(誤讀)
【이벽 시인의 시로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오독(誤讀)
  • 이 벽
  • 승인 2020.09.28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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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시집을 읽다가
‘휜 것’을 ‘흰 것’으로 읽었다
몇 번을 거듭 읽었지만
‘휜 것’은 여전히 ‘흰 것’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어둔 머릴 탓하며
잠시 먼 산 바라보았다가 다시 읽었다
비로소 ‘흰 것’이 ‘휜 것’으로 보였다
비로소 시가 환해졌다
답답함이 길이 되었다
그 길 걸으며
말〔言〕에도
끗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 끗발 차이인데도
‘휜 것’과 ‘흰 것’의 차이는
밤과 낮같은 차이였다
죄와 용서 같은 차이였다
그 차이 앞에서 나는 서늘했다
그녀처럼 서늘했다
내 삶의 내용이 그러지 않았을까
내 삶의 주제가 그러하지 않았을까
유리창과 파편
죽창과 꽃
깡통과 무지개
나는 비로소 나의 죄를 읽었다
내 삶의 용서받지 못한 것들을 읽어냈다
무간도를 읽어냈다.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아니, 삶은 무엇의 연속일까? 삶에도 색깔이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삶을 살까?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삶을 알고 살까?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세상을 읽고 살까?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어댄다, 백양백색(百樣百色)으로. 자기 말이 옳다고. 자기가 본 것이 옳다고. 자기가 생각한 것이 옳다고.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얼마 전이다. 잠

자리에 누워 취침 전 가벼운 독서를 했다. 시집 읽기였다. 여러 번 읽은 시집이었다. 헷갈릴 일도 없는 시집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 한 편이 유난히 독해가 안 되었다. 스탠드를 켜고 독서를 한 탓인지 ‘흰 것’이라는 시어가 내 눈에는 분명히 ‘휜 것’으로 읽혔다. 몇 번이고 거듭 읽어도 여전히 ‘휜것’은 ‘휜 것’이었다. 그냥 넘어가자니 찜찜하고, 거듭 읽자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 한 모금 마신 뒤 창문을 열고 도시의 밤 불빛에 비친 우이봉과 오봉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그 쪽수를 다시 펼쳤다. 그리고 다시 정독했다.

그제야 ‘흰 것’이 ‘휜 것’으로 보였다. 그러자 모든 것이 환해졌다. 시도 환해지고 가슴도 환해지고 머리도 환해지고 삶마저 환해졌다. 아, 오독(誤讀)의 삶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오독의 결과란 얼마나 지옥인가. 나는 혹 그런 오독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평생 오독의 사랑을 하고, 오독의 관계를 맺고, 오독의 시를 쓰고, 오독의 생활을 해오지 않았을까.

문득, 2003년 상영됐던 홍콩영화 <무간도>가 생각났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에 유덕화·양조위 주연의 느와르 액션영화였다. 재미있게 봤던 영화였다. 그런데 처음엔 영화 제목 <무간도>라는 말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영화가 속도감이 있고 액션이 현장감과 긴박감이 있어 그냥 재미있게만 봤었다. 그런데 영화 끝 대목 자막에 흐르는 ‘무간도’에 대한 설명이 영화 내용보다 내 가슴을 더욱 감동시켰다. 자막은 이렇게 흘렀다.

“무간도는 무간지옥에 빠진 자는 죽지 않고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는 불경(佛經) 구절에 나온다.”

순간, 나는 가슴이 서늘했다. 혹시, 나는 지금 ‘무간도’에 살고 있지는 않는가? 그녀에게 늘 서늘한 마음이다.

-이벽(시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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