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경한의 무심가

관념시는 선시에서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불교의 현학적인 특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이다. 관념시는 이미지를 배제하고 추상적인 사상(事像)만을 사용하여 일정한 관념을 시속에 투영하여 형상화한 순수시의 일종이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물질시다. 물질시는 의미와 가치를 배제하고 사물의 이미지만으로 뜻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선시에선 물질시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물보다 의미와 가치를 더욱 중시하는 종교적 특질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8~1374)의 선시에서 이 같은 관념시를 접하게 된다.

물은 굽이나 곧은 곳을 흘러도 너와 나의 구별이 없으며
구름은 스스로 모였다가 흩어져도 친하거나 소원함이 없네
만물은 본래 한가로워 나는 푸르다 누르다 말하지 않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시끄럽게 이것이 좋다 추하다 갖다 붙이네.

水也遇曲遇直 無彼無此
雲也自卷自舒 何親何疎
萬物本閑 不言我靑我黃
惟人自鬧 强生是好是醜

백운의 대표적인 선시 ‘무심가(無心歌)’중 일부분이다.

백운은 고려 말 대선사로 이름을 날렸다. 고려 충렬왕 24년 전라도 고부에서 출생한 백운은 어려서 출가하여 경학을 익히고 수도에만 전념하다가 태고보우 국사와 마찬가지로 중국으로 건너가 원나라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선사에게서 심법을 전수받았다. 또 인도의 지공(指空, ?~1363)대사에게 직접 법을 물어 도를 깨닫고 귀국했다. 이후 황해도 해주 안국사에서 11년간 머물며 선학을 널리 보급하는데 진력했다. 백운과 태고보우는 모두 석옥 청공에게 선사의 법을 이어 받았지만 선 수행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였다. 보우 선사가 간화선을 중시한데 반해 백운 화상은 묵조선을 내세워 선풍을 드날렸다.

이 시는 백운의 사상과 관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물과 구름을 비유해 세상 사람들의 분별심을 질타하고 있는 이 시는 그 자신이 좌선, 그 자체가 바로 깨달음의 경지임을 굳게 믿고 지관타좌(只管打坐 오로지 좌선하는 것이란 뜻)하는 묵조의 선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한결 같으면 이 곳과 저 곳이 따로 있을 리 없고 친하거나 낯선 감정이 있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무심’이다. 무심이므로 좋다 추하다 논할 필요가 없다. 이 경계가 백운 화상에겐 ‘깨달음의 자리’다. 굳이 파격과 반전을 통하지 않더라도 관념의 일탈로 해탈의 길을 제시한다. 이것이 백운화상이 보여주고 있는 관념시의 형태다.

-불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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