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도단 경지에 ‘깨침’ 있어
의미 암시하는 상징어 ‘일품’

선시에 있어서 관념시는 대부분 정서의 연소와 결합해 상상의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선적 체험과 열기가 최고조의 상상력을 동반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열정을 수반하지 않는 상상은 상상이 아니라 환상(幻想 fancy)이다. 관념적 선시가 난해한 듯하나 음미하면 할수록 '살아있는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도 선적 체험과 열기, 즉 열정이 수반돼있기 때문이다. 관념의 선시는 그래서 '죽은 말'[死語]도 살려내는 선지를 과시하는 특징을 보인다.

-습득의 선시

우물밑 붉은 티끌이 일고

높은 산 이마에 파도가 치네

돌계집이 돌아기 낳고

거북털이 날로 자라네

보리의 도를 알려거든

자세히 보라 이 게시판을.

井底紅塵生 高山起波浪

石女生石兒 龜毛數寸長

欲覓菩提道 但看此榜樣

습득(拾得, ?∼?)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오언절구의 선시다.

습득은 풍간선사가 산에 갔다가 적성도(赤城道) 곁에서 주워 온 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습득과 아주 가까웠던 친구 한산은 국청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암(寒巖)에 기거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산과 습득은 항상 같이 얘기될 정도로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

삼은시에는 한산의 시가 314수가 들어 있고 습득의 시가 60수이며 풍간의 시 6수도 들어 있다. 습득은 국청사 부엌에서 밥짓는 일을 맡아 했는데 한산이 오면 찌꺼기를 모았다가 내주어 먹였다고 한다.

앞에 소개한 습득의 이 시는 시종일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다. '우물 밑에 티끌이 일고' 나 '높은 산에서 파도가 치고 있다'거나 '돌계집이 돌아기를 낳고'가 모두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거북에게 털이 있을 리 만무한데 날로 자라고 있다니 도대체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의아함과 당혹감이 앞설 뿐이다. 우리들의 지각으로는 현실세계의 어떤 모습으로도 떠올려 볼 수 없는 이들 심상은 묘사적 심상이 아니다. 의미 그 자체를 암시하는 상징어일 뿐. 그러나 선시를 이해하려 할 때 예지로 번뜩이는 오의(奧義)의 연쇄응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이 시는 바로 그 점을 일깨우고 있다 할 것이다.

한문 맨 마지막 '방양(榜樣)'은 게시판을 뜻한다. 보리의 도를 알려면 게시판을 봐야 할 것이라고 습득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게시판이 이런 것이라고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언어도단의 경지에 '깨침'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번개같이 느껴지는 게 있다면 그것으로 이 시의 전달의미는 성공한 셈이다.

-불교언론인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