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베이스는, 현상계의 모든 존재들은 상호 의존적이어서 독자적 실체라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무상과 무아를 깊이 통찰했을 때 실상계의 진실과 소통돼 열반적정의 세계가 전개되고, 무상과 실재하지 않는 실체에 휘둘리게 되면 현상계가 쓰디쓴 세상이 된다,라는 것이다.

내가 이 땅에 서 있는 곳은 한 평이 채 안되지만 한 평의 땅 위에 서 있기 위해서는 지구라는 행성이 필요하고,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은하계 전체가 필요하고, 그 속에는 우주적 질서가 약동하고 있다.

임제 선사는 “기적이란 물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의 꿈을 쪼갤 수 없는 것처럼, 꿈속에서 바늘 하나 꺼내올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통째로 한 덩어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 실상이다.

코로나19 창궐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얽히고 얽힌 우주의 인드라망적 구조를 다시 생각한다. 서울에서 1천4백 킬로미터 떨어진 중국 우한이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 있기에 우리가 이런 고초를 겪어야 하는가싶기도 하다가, 지구를 한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내 몸 한 군데에서의 발병이 온 몸을 뒤흔들고, 손가락 밑 가시 하나가 온 몸을 아프게 하듯 특정 지역에서의 괴질 발생은 인류가 같이 받아들여야 할 숙제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인간ㅡ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를 진화된 새로운 인간형으로 제시한다. “우리가 이 지구에 더 오래 살아남고 싶다면 나는 이제 우리가 호모 심비우스로 겸허하게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모 심비우스의 본질은 다른 생물들과 공존하기를 열망하는 한편 지구촌 모든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꼭지가 돌도록 탐·진·치에 악랄하게 젖어 있을 때 누군가는 죽어간다. 괴질이 되었건, 아니면 다른 질병이 원인이 되었건, 당신의 가족 중 누군가가 지상에서 사라졌을 때, 그 사라짐의 의미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특별할지도 모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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