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40년 설법을 집약한 경전

북위시대의 것으로  중국 신강 화전에서 발굴된  범본 법화경문.
북위시대의 것으로 중국 신강 화전에서 발굴된 범본 법화경문.
메트로폴리탄 미술 박물관(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에 간행된 《묘법연화경》 2권 변상도(1340년).
메트로폴리탄 미술 박물관(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에 간행된 《묘법연화경》 2권 변상도(1340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또는 《법화경》(法華經)은 대승경전의 하나로, 예로부터 모든 경전의 왕으로 생각되었으며, 석가모니의 40년 설법을 집약한 경전으로, 법화사상을 담고 있는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이기도 하다.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산스크리트어 원본으로는 영국인 호지슨이 네팔에서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의 단편(斷片)이 존재한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번역이 되어 있으며, 한편 한문, 티베트어, 위구르어, 서하어, 몽골어, 만주어 등으로 번역되어 넓은 지역의 여러 민족에게서 애호되었다. 현존하는 3종의 한문 번역 가운데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7권(후에 8권이 되었음)이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 성립을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신자집단에 의해 서북부 인도에서 《소부》(小部)의 것이 만들어졌고 후일에 증보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묘법연화경》에서 부처님은 머나먼 과거로부터 미래영겁(未來永劫)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는 대도(大道, 一乘)를 보이기 위함이며,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경전의 핵심이다. 《법화경》은 모두 28개의 품(品,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무량의경》,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과 함께,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법화경은 동아시아 3국이 다함께 중요하게 여기는 대승경전이다.

법화경 28품은 다음과 같다.

무량의경(無量義經=開經)

덕행품(德行品) 第一

설법품(說法品) 第二

십공덕품(十功德品)第三

적문(迹門) 14品

서품(序品) 第一

방편품(方便品) 第二

비유품(譬喩品) 第三

신해품(信解品) 第四

약초유품(藥草喩品)第五

수기품(授記品) 第六

화성유품(化城喩品)第七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受記品)第八

수학무학인기품(數學無學人記品)第九

법사품(法師品)第十

견보탑품(見寶塔品)第十一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第十二

권지품(勸持品)第十三

안락행품(安樂行品)第十四

본문(本門) 14品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 第十五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第十六

분별공덕품(分別功德品) 第十七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 第十八

법사공덕품(法師功德品) 第十九

상불경보살품(常不經普薩品)第二十

여래신력품(如來神力品) 第二十一

촉루품(囑累品)第二十二

약왕보살본사품(藥王普薩本事品)第二十三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第二十四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第二十五

다라니품(陀羅尼品)第二十六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第二十七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第二十八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佛說觀普賢普薩行法經)

법화칠비란 것이 있는데, 《법화경》에는 부처가 되기 위한 길로 7가지의 비유를 들어 설해놓은 것이 있다. 이를 법화칠비(法華七譬) 또는 법화칠유(法華七喩)라 한다.

 

삼거화택(三車火宅)의 비유(火宅喩)

장자궁자(長者窮者)의 비유(窮子喩)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藥草喩)

화성보처(化城寶處)의 비유(化城喩)

계중명주(契中明珠)의 비유(契珠喩)

빈인계주(貧人繫珠)의 비유(衣珠喩)

양의병자(良醫病子)의 비유(醫子喩)

<중국 자료 참고> 

《법화경》은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이 《법화경》이 언제부터 유통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 권3 대산오만진신조(臺山五萬眞身條)에 이 경의 이름이 보이고 있고,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이에 대한 경흥(憬興)의 소(疏), 태현의 고적기(古迹記), 도륜(道倫)의 소, 원효(元曉)의 종요(宗要)와 방편품요간(方便品料簡), 의적(義寂)의 강목(綱目), 순경(順憬)의 요간(料簡) 등 신라인의 연구 주석서가 보이고 있다.

이로써 삼국시대부터 《법화경》이 널리 유통되어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는 금자원(金字院)·은자원(銀字院) 등 사경 전문기관이 설치되어 금·은으로 대장경을 필사하기도 하였는데, 초기부터 《법화경》에 대한 금니(金泥)·은니(銀泥)의 사경(寫經)도 성행하였다. 이 시대의 사경으로는 1275년(충렬왕 1)에 선린(禪隣)이 필사한 《법화경보문품( 法華經普門品)》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법화경』 간행에 대한 기록은 1020년(현종 11)에는 현종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대반야경(大般若經)』과 함께 『법화경』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에 김제 금산사에서 1083년에서 1097년 사이에 『법화현찬(法華玄贊)』 등을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백련사원묘국사중진탑비(白蓮寺圓妙國師中眞塔碑)에 국사가 『법화경』을 천만 번 염송한 뒤 『법화경강요(法華經綱要)』를 간행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창 문수사(文殊寺)에서 간행한 『법화경』의 발문에 보면 1340년 요원(了圓)이 편찬한 『법화영험전(法華靈驗傳)』이 만의사(萬儀寺)에서 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고종 때는 고종 자신이 《법화경》을 숭상하였으며, 이규보(李奎報)는 《법화경》을 암송할 정도로 법화 공덕사상이 널리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간행본이 현재까지 전해 오는 것은 1236년에 정안에 의해서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몇 종에 지나지 않지만, 《법화경》 간행은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는 배불숭유정책(排佛崇儒政策)으로 사찰경제가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불교경전의 간행은 사찰이 중심이 되어 끊임없이 계승되어 왔다. 조선시대의 《법화경》 간행은 경전 독송이나 교학 연구라기보다 경전신앙(經典信仰)에 의해 시주자들의 공덕을 위하여 간행된 경향이 짙다. 고려 때의 《법화경》 유통에 대한 공덕사상이 조선 초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금은자(金銀字)의 법화경사경(法華經寫經)이 여러 번 이루어졌다.

세조 때는 간경도감이라는 국가기관을 설치하여 불교경전을 간행하였는데, 이 때 《법화경》에 관한 것만도 3종이나 되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판본을 살펴보면 정천익(鄭天益)의 시주로 1399년에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전국 각 사찰에서 간행한 것으로 간행 기록이 뚜렷한 것만도 117종이 전해 오고 있다.

이들 판본을 살펴보면 1행에 13자, 17자, 18자, 20자가 대부분이다. 이 중에서 20자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성달생(成達生)이 필사한 1405년(태종 5) 안심사(安心寺) 간행본과 1445년(세종 27) 성달생·임효인(任孝仁)·조절(曺楶) 등이 공동으로 필사하여 간행한 것, 세조 연간에 황진손(黃振孫)이 필사로 간행한 것을 번각(飜刻)한 것이 대부분이다.

《묘법연화경》은 예로부터 모든 경전들 중의 왕으로 인정받았고,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이다.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여러 민족에게 애호되었던 이 경은 기원 전후에 신앙심이 강하고 진보적인 사람들에 의해 서북 인도에서 최초로 소부(小部)의 것이 만들어졌고, 2차에 걸쳐 증보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한역본 중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이 가장 널리 보급, 유통되었다.

28품으로 된 이 경은 그 전체가 귀중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어서 어느 한 품만을 특별히 다룰 만큼 우열을 논하기 어렵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 관음신앙의 근거가 되어 특별히 존숭을 받아 왔고, 따로 『관음경(觀音經)』으로 편찬되어 많이 독송되었다.

또한 제11품 「견보탑품(見寶塔品)」은 보살 집단의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불탑숭배(佛塔崇拜)사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다보탑과 석가탑 조성에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제15품 「종지용출품(從地涌出品)」에서는 대지하(大地下)의 허공 속에 살고 있던 보살이 대지의 틈바구니에서 솟아오르듯이 나타나 허공에 서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 광경을 오랫동안 표면에 나타나지 못하였던 보살집단이 강력한 세력으로 출현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허공에 선다는 표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입장에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전통적 교단에서 오직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불만을 숭배하는 피상적 견해를 탈피하여, 무량한 생명의 상징인 불(佛)을 보려는 보살들의 깊은 성찰의 결과를 선언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제16품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은 영원한 생명, 근원적인 생명으로서의 부처를 체증(體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들의 새롭고 깊은 불타관(佛陀觀)이 반영되어 있다. 부처는 언제나 이 사바세계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교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성불(成佛)하게 한다는 지극한 이상이 담겨 있고, 이것이 우리나라 법화신앙의 근거로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 평가되고 전승된 것은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이다. 삼승(三乘)이 결국은 일승(一乘)으로 귀일(歸一)한다는 이 사상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여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보살(菩薩)의 무리들에게 맞게끔 갖가지의 법(法)을 설하였지만, 그것이 모두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이고 깨달음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시방불토(十方佛土)에는 오직 일불승(一佛乘)의 법만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화엄경』의 원융무애사상(圓融無碍思想)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꽃을 피워 한국불교의 전통을 회통적 귀일불교(會通的歸一佛敎)로 이끌었고, 한민족의 화사상(和思想)에도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일부 학자들은 신라의 삼국통일이 이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회삼귀일사상은 제2품 「방편품(方便品)」, 제3품 「비유품(臂喩品)」, 제4품 「신해품(信解品)」, 제5품 「약초유품(藥草喩品)」, 제7품 「화성유품(化城喩品)」 등에서 높은 문학성을 지닌 불타는 집의 비유, 방탕한 자식의 비유, 초목의 비유, 주정뱅이의 비유 등을 통하여 그러한 입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경의 유통을 위하여 간행된 판본은 불경 가운데서 가장 많은 횟수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경의 중요성과 함께 경전 간행의 영험에도 힘입은 바 크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법화경》은 1236년에 간행된 《법화경》과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송나라 계환(戒環)이 1126년(인종 4)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 妙法蓮華經要解)》 7권 본이다. 《법화경》에 대한 연구 주석서로는 신라시대 고승들의 저술을 비롯하여 중국 역대 고승들의 저술이 수십 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계환의 주해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통된 것은 그 내용이 한국불교의 흐름과 일치하고 문장이 간결하며 이해가 쉽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존판본을 살펴보면 고려시대 3종이고, 조선시대의 것이 117종으로 모두 120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고 있는 법화경판은 34종 3,036장이다.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참고>

정현<불이성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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