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1-21 06:00 (목)
   |   
불기 2563(2019)년 11월 21일 목요일
【행자교육특강】동방불교대학 총장 원응 스님-④
【행자교육특강】동방불교대학 총장 원응 스님-④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9.11.07 1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즈라야나와 달라이 라마(2)
제14세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주석하고 있는 쭈갈라캉(Tsuglagkhang).사원 본전 건물, 라싸의 조캉 사원을 그대로 모방해서 건립(다람살라).
제14세 달라이 라마 성하께서 주석하고 있는 쭈갈라캉(Tsuglagkhang).사원 본전 건물, 라싸의 조캉 사원을 그대로 모방해서 건립(다람살라).
제13세 달라이 라마가 환생한 라모 돈드릅(제14세 달라이 라마)의 두 살 때 모습.
제13세 달라이 라마가 환생한 라모 돈드릅(제14세 달라이 라마)의 두 살 때 모습.
중국 칭하이 성에 있는 제14세 달라이 라마 생가.
중국 칭하이 성에 있는 제14세 달라이 라마 생가.

 

시작하는 말

세계불교 3대 패밀리

1. 테라와다

2. 바즈라야나

3. 마하야나

태고종의 위상

맺는 말

 

2. 바즈라야나

 

달라이 라마의 공식 직명은 제14세 달라이 라마(The 14th Dalai Lama)이다. 그렇지만 이 직명 앞에 성하(His Holiness)를 붙여서 聖下 14세 달라이 라마(His Holiness The Fourteenth Dalai Lama)‘라고 호칭한다. 종교적인 이름은 텐진 갸쵸(Tenzin Gyatso, 1935)인데, 제춘 잠펠 나왕 롭상 에쉐 텐진 갸쵸를 줄인 이름이다. 태어날 때 아명은 라모 돈드룹(Lhamo Dondrub)이다. 또는 톤둡이라고도 불렀다. 193576일생으로서 현재 만 79세로서 역대 달라이 라마 가운데서는 가장 장수를 누리고 있으며, 티베트 겔륵파 종파의 수장(首長)이기도 하다.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그의 주된 활동은 티베트의 독립을 주창(主唱)하고, 동시에 세계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제 그의 생애를 단계적으로 탐색해 보자.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인들에게 암도라고 알려진 지금의 칭하이 성, 탁체르에서 태어났다. 티베트는 네팔과 인도 쪽의 우짱 지역과 운남.사천성과 인접한 캄 지역 그리고 청해성 지역인 암도 지역으로 3분된다. 13세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고 난 2년 뒤에, 그는 제13세의 환생으로 선택된다.

라모 돈드룹(또는 톤둡)은 부모가 평범한 농부로서 농사도 짓고 말() 무역을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7남매가운데, 하나이다. 큰 누나는 그에게 18세나 위였다. 그의 큰 형인 툽텐 지그메 노르부는 8세 때, 한 고승인 린포체의 화신으로 인정되었다. 그의 누이동생 젯순 페마는 다람살라의 티베트 어린이 마을 프로젝트에 평생을 바치고 지금은 은퇴했다. 어린 달라이 라마가 화신으로 선택되었을 때, 그는 신장(新疆) 지역의 방언을 구사했다고 한다. 신장방언은 일종의 만다린(北京官話)으로서, 감숙성 난주와 청해성 시닝 등지의 중국어 방언을 말한다. 중국은 이 무렵, 무력으로 이 지역을 중국에 편입시켜서 통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중국 칭하이 성 시닝에 있는 큼붐(Kumbum,塔尔寺 1583년 창건)사원
중국 칭하이 성 시닝에 있는 큼붐(Kumbum,塔尔寺 1583년 창건)사원

13세의 환생을 찾는 조사단은 제13세가 입적(入寂)하여 방부처리 할 때, 얼굴이 분명히 남동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환생을 찾으려고 친견했을 때 보니, 불가사의 하게도 얼굴이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당시 섭정(攝政)이었던 린포체는 정좌하고 명상을 한 결과 라모 라 초 호수 위에 상서로운 구름이 일면서, 한 농가 주택으로 빛이 향하는 것을 느꼈다. 예시해 준 그 농가 주택에 가서보니 두 살 된 어린이가 있었다. 조사단은 전통대로 조사절차에 의해서 직관적 관찰과 시험을 통해서 이 어린이가 제13세의 환생임을 인지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13세에게 속했던 물건하나와 다른 여러 개의 물건들을 함께 그의 면전에 놓았는데, 톤둡은 단박에, “이것은 내 것이야! 이것은 내꺼야!”라고 하면서 움켜쥐었다고 한다. 환생으로 선택되면, 라싸로 옮겨 가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 지역의 군벌로써 지역 사령관이었던 마 부팡(馬 步芳19031975)은 이 같은 선택에 제동을 걸면서 라싸 행을 방해했다. 10만 냥을 요구했다는 비화가 전해진다.

칭하이 성은 고대 시대부터 티베트계 부족이 많이 살던 곳으로서, 중국에서 가장 큰 칭하이 호수가 있고, 해발고도 3천 미터가 되며 티베트 북동남단에 위치하고 있고 대부분의 영토는 칭장고원(靑藏高原)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당나라와 티베트 간에 항상 다툼의 영역이었는데, 일찍이 몽골 계통 유목민족으로 선비족 모용씨로 부터 내려온 부족이 이 지역의 초지(草地)에 정착하여 3세기부터 토욕혼(吐谷渾)을 건국하고 663년 토번의 침공으로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 존속한 유목 민족국가가 있던 곳이다. 티베트 왕국의 손에 넘어간 다음, 항상 당과의 분쟁지역으로서, 티베트인들이 점령하고 살았다. 티베트계 탕구트 족은 서하( 西夏 1032-1227)를 세웠는데, 전성기에는 북으로는 고비사막 남으로는 난주 동으로는 황허 서쪽은 둔황의 옥문관에 이를 정도로 강성했다. 국교는 불교였으며 자체 서하문자를 갖고 있었고, 상당한 수준의 문화를 가졌었으나, 칭기즈칸에 의해서 멸망당했다. 한때 둔황석굴(莫高窟)은 서하의 통치하에 있었다.

이후 송()을 거쳐 원() 나라 통치시기에는 티베트-몽골 족이 공생하는 형국이었고 명-청을 거치면서 티베트 중국 간에는 영토에 대한 크고 작은 분쟁이 그치지 않았던 지역이다. 티베트는 외부로 통하는 관문이 네팔을 경유하여 인도로 향하는 길과 카시미르와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서쪽 길과 북동쪽의 칭장고원을 통해서 중국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그리고 험하긴 하지만 스촨성 청두(성도)로 가는 길과 운남성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다.

 

중국 간쑤성 난주 시아헤에 있는 라브랑(Labrang 拉卜楞寺 1709년 창건) 사원
중국 간쑤성 난주 시아헤에 있는 라브랑(Labrang 拉卜楞寺 1709년 창건) 사원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 궁
티베트 라싸에 있는 포탈라 궁

이런 역사적 배경에 의해서 1930년대 중국은 이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했고, 당시 이 지역의 군벌인 중국 뚱간(回族) 무슬림 장군인 마 부팡은 라싸로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환생 라마가 칭하이 성에서 라싸로 가는 것을 지체시켰고 은화 10만 냥을 노골적으로 챙겼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라싸에 간 다음, 6세 때부터 23세 때 까지 17년간 집중교육을 받았고, 교육과목은 필수 5과목과 교양 5과목이었다. 필수는 논리학, 티베트 예술문학 산스끄리뜨어, 의약과 불교철학 등이다. 불교철학은 5개 범주로 나뉘는데, 반야(般若Prajnaparimita),중론(中論Madhyamika),율장(律藏Vinaya),아비다르마(俱舍論Abidharma, 불교형이상학), 프라마나(인식논리학 Pramana)이며, 교양 보조과목은 시 음악 드라마 점성학 작문 등을 수업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195923세 때, 라싸의 조캉(대소사) 사원에서 마지막 시험에 합격, 불교철학박사학위와 동등한 게쉬(geshe 善知識)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