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 소림굴로 들어가서 9년 동안이나 면벽(面壁)을 하면서 벽관(壁觀)

인도에서 선법을 전해온 보리달마.
인도에서 선법을 전해온 보리달마.

명상의 역사를 연재하면서, 고대 시대 특히 인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흐름을 조금 다른 데로 돌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한국불자이기에 한국불교의 명상을 이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많은 분들이 참선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참선과 명상에 대해서 한번 논해보자. 참선과 명상을 논하는 것은 간단한 주제가 아니다. 이 주제는 간단하게 다룰 주제는 아니지만, 명상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잠깐 쉬어간다는 의미에서 가볍게 다뤄보고자 한다. 그렇지만 이 주제는 불교의 핵심을 찌르는 주제라고 하겠다.

문자 그대로 해석을 먼저 해본다면 참선이란 선을 참구한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선법(禪法)을 닦는다는 뜻이 되겠다. 그러면 여기서 선법이란 단어가 핵심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면 선법이란 무엇일까. 선법이란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닦았던 명상법이다. 이제 명상법이란 단어가 나왔다. 선법을 닦는 과정을 명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말은 서양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명상이란 용어는 보편적인 단어이다. 불교의 선법을 닦는 과정을 명상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다른 종교에서도 자기들의 방식에 따른 명상법을 닦을 때, 이 용어를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상이란 용어는 불교만이 아닌 다른 종교나 어떤 수행단체에서 자기방식의 어떤 명상을 할 때, 사용하는 용어라는 뜻이 되겠다. 명상이란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한다는 정도의 의미이다. 이제 여러분께서는 참선과 명상에 대한 기본적인 용어의 개념을 어느 정도 분별했으리라 믿는다.

불교에서 하는 명상이 참선인 것이다. 그렇지만 대개 불교에서는 명상이란 용어보다는 참선이란 말을 쓰기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한국불교에서는 불교의 명상을 오랫동안 참선이라고 사용해 왔고, 참선이라고 불러야지 막연하게 명상이라고만 해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의 본래 의미하고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불교의 참선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참선이란 용어가 출현한 것은 중국에서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디야나’라고 불렀다. 한문으로 번역하면 ‘정려(靜慮)’ ‘사유수(思惟修)’의 뜻이다.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는 정도의 뜻이나 조용히 생각을 닦는 다는 정도의 의미가 되겠지만, 그 방법은 호흡을 통해서였다. 말하자면 명상방법은 호흡을 통해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했다.

숭산 소림사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
숭산 소림사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

그래서 아나파나사티(호흡관법)라고 불렀다. 숨을 내쉬는 것을 호(呼), 들이마시는 것을 흡(吸)이라고 해서 호흡이다. 우리 모두는 경주에 가면 불국사가 있다는 것을 안다. 불국사 뒤에 있는 산이 토함산이다. 토함(吐含)이란 말은 호흡이다. 토는 숨을 내 뱉는 다는 호(呼)와 같다. 함(含)은 숨을 들이쉬는 흡(吸)과 같다. 토함산은 불교의 명상을 상징하는 산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이런 아나파나사티(호흡관법) 위주의 수식관(數息觀)이란 방법을 사용해서 했던 것이다. 다음단계로서는 위파사나(內觀)를 닦았다. 수식관이 단순히 정신을 집중해서 숫자를 세면서 마음을 집중시킨다면, 위파사나는 마음을 집중해서 관찰하는 방법이다. 또 사마타란 방법도 썼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서 정(定)에 드는 훈련을 말한다.

사마타 위파사나라고 하면 불교의 초기시대에 행했던 명상수행법이다.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에 불교가 처음 소개되면서 불교경전과 함께 이런 불교의 명상법인 사마타 위파사나인 지관(止觀) 또는 정혜(定慧)라고 하는 불교의 명상 수행법이 유행을 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정혜쌍수(定慧雙修)라고 해서 사마타 위파사나 명상수행법을 오랫동안 닦았던 것이다. 지금도 동남아시아의 남방불교에서는 사마타 위파사나 명상수행법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사마타 위파사나 명상수행법에서 참선수행법으로 전환했다.

중국불교가 너무 사변적으로 학술적으로 흐르다보니 불교가 너무 어려워졌다. 이러던 차에 보리달마라고 하는 큰 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에 오게 되었고, 와서 보니 불교 본래의 목적인 마음 닦는 공부 보다는 불교가 너무 학술적으로 이론적으로 변해 있어서 불교본래의 마음 닦는 법을 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보리달마도 처음에는 마음 닦는 법을 펴는데 힘이 들었다. 사람들이 진정한 불교의 참뜻을 모르고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그는 불교의 바른 참법을 전하기 위해서 시도를 해봤으나 여의치가 않자 그는 숭산 소림굴로 들어가서 9년 동안이나 면벽(面壁)을 하면서 벽관(壁觀)을 닦았다. 벽관이란 벽을 향해서 명상을 했다는 의미에서 벽관이라고 하는 것이다. 9년 만에 혜가라는 제자를 만났고, 혜가는 승찬을, 승찬은 도신을, 도신은 홍인을 만나서 달마선법을 전하게 되었고, 5조 홍인 문하에 혜능이라는 스님에게 와서 비로소 선법(禪法)은 그 모습을 확실하게 드러내게 된 것이다. 혜능스님을 6조대사라고 한다. 이 분이 말씀하신 선법내용을 정리한 책이 《법보단경》 또는 《6조단경》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단경’을 금과옥조로 여기게 되었고, 선종이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12종파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선종은 다만 그 가운데 한 종파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에 전해지면서 한국에서는 한국불교의 주류 종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오조홍인대사
오조홍인대사

선종은 중국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종파였다. 초기에는 불교의 이단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는 선종은 중국불교의 주류 종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실, 보리달마 이전에 우리는 천태지의 대사를 거명하지 않을 수 없다. 천태 지의 대사는 수(隋)의 승려이다. 호남성(湖南省) 악주(岳州) 출신으로. 호(號)는 지자이다. 18세에 출가하고, 560년에 하남성(河南省) 광주 대소산의 혜사(慧思, 515-577)를 찾아가 그에게 사사(師事)하여 법화삼매(法華三昧)를 체득했다. 569년부터 금릉(金陵)의 와관사(瓦官寺)에서 법화경·대지도론 등을 강의하고, 574년에 북주(北周) 무제(武帝)의 법난(法難)이 일어나자 이듬해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 천태학(天台學)을 확립했다. 587년에 금릉의 광택사(光宅寺)에서 법화문구(法華文句)를 강의하고, 593년에 호북성 당양 옥천사(玉泉寺)를 창건하고 여기에서 법화현의(法華玄義)·마하지관(摩訶止觀)을 강의하고, 595년에 천태산으로 돌아갔다. 천태 지의 대사에 대한 족보를 상세하게 소개한 것은 중국불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참선과 관련하여 마하지관(摩訶止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마하지관은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나라 지의 대사가 594년에 호북성 당양 옥천사에서 행한 강설을 관정(灌頂)이 기록한 것이다.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주시하는 지관(止觀)의 수행을 상세하게 설명한 저술이다. 10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 대의장(大意章)은 전체의 내용을 간략하게 서술한 부분이고, 제2 석명장(釋名章)에서는 지관(止觀)을 풀이하고, 제3 체상장(體相章)에서는 지관의 본질과 상태를 밝히고, 제4 섭법장(攝法章)에서는 지관에 모든 현상이 포섭됨을 설하고, 제5 편원장(偏圓章)에서는 편교(偏敎)와 원교(圓敎)의 차이를 설명하고, 제6 방편장(方便章)에서는 이십오방편(二十五方便)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제7 정관장(正觀章)에서는 십승관법(十乘觀法)을 제시하고 또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법문을 설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제7장에서 끝맺고, 제8 과보장(果報章)과 제9 기교장(起敎章)과 제10 지귀장(旨歸章)은 항목만 열거되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십승관법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은데, 이것은 지의대사가 설한, 마음의 본성을 깨닫기 위한 열 가지 수행법이다. 이것은 수행자를 깨달음으로 인도한다는 뜻에서 승(乘)이라 한다.

 

(1) 관불사의경(觀不思議境): 한 생각 속에 온갖 현상이 갖추어져 있고, 그 현상은 공(空)·가(假)·중(中)이 서로 걸림 없이 원만하게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 오묘한 대상이라고 주시함.

(2) 기자비심(起慈悲心): 관불사의경(觀不思議境)을 체득하지 못한 수행자는 다시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고, 자비심으로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세움.

(3) 교안지관(巧安止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혜로써 모든 현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주시함.

(4) 파법변(破法遍): 온갖 현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깨뜨림.

(5) 식통색(識通塞): 진리에 통하는 것과 그것의 체득을 가로막는 것을 확연하게 식별함.

(6) 수도품(修道品):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을 수행자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여 수행함.

(7) 대치조개(對治助開):오정심관(五停心觀)과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 깨달음에 도움이 되도록 함.

(8) 지차위(知次位): 범부의 경지에 있으면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의 수행의 단계를 앎.

(9) 능안인(能安忍):자신에게 맞든 맞지 않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음.

(10) 무법애(無法愛):이미 체득한 낮은 단계의 진리에 애착하지 않고 참다운 깨달음으로 나아감.

이상에서 (1)이 가장 높은 단계의 수행법이라고 지의 대사는 말하고 있다.

 

지금 남방불교의 명상법을 다 포괄하고 있는 수행법을 중국에서는 이미 천태 지의 대사가 다 정리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선행의 기본 토대가 있었기에 보리달마 선종이 중국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리달마 당대에는 선법이 널리 퍼지지는 않았지만, 육조대사에 와서 체계가 잡힌 것이다. 육조혜능 대사는 선종에서 너무나 유명한 조사(祖師)이기에 조금 더 확실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혜능은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로서, 육조대사(六祖大師)라고도 하며, 속성은 노(盧)씨며, 시호는 대감선사(大鑑禪師)라고 하며 중국 남해 신흥이란지방에서 출생했다.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느 날 장터에서《금강경(金剛經)》읽는 것을 듣고 불도에 뜻을 갖게 되어 황매산으로 제5조인 홍인대사를 찾아 가서 방앗간에서 노역에 8개월가량 종사하던 중, 홍인대사로부터 의법(衣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의법이란 의발 전법을 말하는데, 가사와 발우는 스승이 제자에게 전해주는 증표이며 전법은 스승의 법을 제자에게 전해서 영속하게 이어가도록 하는 불교의 전통이다. 제5조 홍인 대사에게서 법은 받았지만, 혜능은 처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정식으로 676년 경 남해 법성사(法性寺)에서 지광(智光)스님에게 계(戒)를 받고, 이듬해 소주 조계(曹溪)에 있는 보림사(寶林寺)로 옮겨가서 법을 넓혔으며, 그 곳의 자사(刺使) 위거(韋據)의 청을 받고 대범사(大梵寺)에서 설법하였다. 오조 홍인대사의 수제자 가운데 한분인 신수(神秀)와 더불어 홍인 문하의 2대 선사로서, 후세에 신수의 계통을 받은 사람을 북종선(北宗禪), 혜능의 계통을 남종선(南宗禪)이라고 하였는데, 이른바 오가칠종(五家七宗)은 모두 남종선에서 발전하였다. 혜능의 제자로서 법을 받은 사법(嗣法)의 제자에 하택 신회(荷澤神會)·남양 혜충(南陽慧忠)·영가 현각(永嘉玄覺)·청원 행사(靑原行思)·남악 회양(南岳懷讓) 등 40여 명이 있었다. 그의 설법을 기록한 것을《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고 한다. 이상으로 압축해서 일단 말씀드렸지만,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 해보면 다음과 같다.

6조 혜능대사
6조 혜능대사

한국불교에서 조계종이란 종명을 쓰게 된 것은 소주 조계(지명 시내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오조 홍인 문하에는 신수라는 큰 스님이 있었지만, 그는 선교(禪敎)를 겸수한 큰 스님이면서도, 부처님으로부터 전해지는 마음 법을 확실하게 깨달은 분은 혜능으로 봤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제대로 전해 받은 분은 혜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신수 스님은 부처님으로부터 전해지는 가르침을 이어 받았다고 오조 홍인대사는 판정을 하신 것이다. 이로써 불교는 선(禪)이냐 교(敎)냐 하는 논쟁이 일어나게 되고, 선이 중요하니 교가 중요하니 하는 또는 선교겸수(禪敎兼修)니 하는 논쟁이 부단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또 말씀드리기로 하고 다시 선불교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 해 보자. 선종에서는 신수 계통의 북종선(北宗禪), 혜능 계통의 남종선(南宗禪)으로 크게 나눠졌는데, 결국은 북종선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남종선은 계속 발전해서 오가칠종(五家七宗)이란 선종 종파를 탄생시켰다. 하나의 종가집에서 작은 집으로 분가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혜능이라는 조사로부터 생겨난 가지라고 하겠으며 뿌리는 같다. 혜능 대사의 직계제자로서 법을 받은 사법(嗣法)의 제자에 하택 신회(荷澤神會)·남양 혜충(南陽慧忠)·영가 현각(永嘉玄覺)·청원 행사(靑原行思)·남악 회양(南岳懷讓) 등 40여 명이 있었다. 이 분들은 중국 선종을 대표하는 선사들이며 한국불교에도 자연스럽게 이 분들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혜능 대사가 제자들에게 설법을 한 기록을《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중국이나 한국의 선종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어야 한다. 이렇게 정립된 선종불교는 동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 큰 영향을 미쳤고, 한국에서는 9산 선문이라는 선불교의 사찰이 건립되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참선을 위한 수행법이 계속해서 전해지면서 불교의 큰 흐름이 되어 왔는데, 선불교에서는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간화선법이다.

불교의 명상법이 사마타 위파사나에서 참선법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참선법에서 간화선법으로 전환되어서 오늘날 한국의 참선은 간화선법을 닦게 된 것이다. 간화선의 화(話)란 화두의 준 말이다. 화두란 고칙(古則) 공안(公案)의 첫마디를 화두 하나로 해결하면 차례로 다음 화두를 들어 그것을 해결하며, 철저한 큰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선풍을 말한다. 묵조선(默照禪)이라는 평을 받은 조동종(曹洞宗)의 선풍에 대한 임제종(臨濟宗)의 선풍이 그것이다. 송(宋)나라 때 조동종의 굉지 정각(宏智正覺)이 묵조선을 표방하고 나오자, 임제종의 대혜종고(大慧宗杲) 일파가 그것을 비난하면서 화두를 참구(參究)함으로써 평등일여(平等一如)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왜 이런 간화선법 운동이 전개되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겠다. 간화선법이 나오기 전만 해도 묵조선법이 대세를 이루었다. 묵조선법은 불교에서 묵묵히 좌선(坐禪)하여 영묘(靈妙)한 마음의 작용을 일으킨다는 선풍(禪風)이다. 이런 방법도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지금도 이런 묵조선의 방법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서구에서는 주로 이 묵조선법을 닦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느긋한 방법에 이의를 제기한 방법이 간화선(看話禪法)이다. 묵조선법이 조동종(曹洞宗)의 선법이라면 간화선법은 임제종의 선법이다. 이 명칭은 남송(南宋) 임제종파(臨濟宗派)의 종고(宗杲)가 조동종(曹洞宗) 정각(正覺)이《묵조명(默照銘)》을 펴낸 뒤, 수행자들이 면벽좌선(面壁坐禪)함을 야유조로 이같이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묵조선법은 본래 자성청정(自性淸淨)을 기본으로 한 수행법으로, 갑자기 대오(大悟)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내재하는 본래의 청정한 자성에 절대로 의뢰하는 점수적인선법이다. 이에 반해서 간화선은 큰 의문을 일으키는 곳에 큰 깨달음이 있다고 하여, 공안(公案)을 수단으로 자기를 규명하려 하는 선법인 것이다. 대혜 종고(大慧宗杲)는 묵조선을 사선(邪禪)이라 공격하였지만, 결국 양자의 차이는 본래의 면목(面目)을 추구하는 방법의 차이이다. 굉지(宏智)정각은《묵조명》을 통하여 묵조선이 불조정전(佛祖正傳)의 참된 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조동종의 묵조선이나 임제종의 간화선은 다 선종의 종파로서 참선법인 것이다.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일찍이 임제종 계통의 간화선법이 유행하게 되었고, 지금도 대세를 이루 있다. 그래서 임제종 간화선법을 경절문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수선(修禪)할 때 단계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진제(眞諦)를 터득, 부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지름길인 수행문(修行門)을 경절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려 중기의 승려 지눌(知訥)의 저서《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서, 송(宋)나라의 종고(宗杲)가 주창한 간화선(看話禪)을 채택, 경절문 이론을 정립하였다. 즉, 모든 언어와 문자, 이론과 사유의 범주를 초월하여 화두(話頭)를 잡아 활구(活句)로의 증입(證入)을 강조하고,《법집별행록절요(法集別行錄節要)》에서는 "말을 떠나고 지식을 벗어나는 경절문외 방편을 인증하고 참선을 여행(勵行)하는 자만이 해탈(解脫)의 경지에 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지눌 이후 한국의 선종(禪宗)에서는 경절문에 관한 공부가 성행함으로써, 교학(敎學)을 경시하는 풍조가 한때 불교계를 휩쓸었다. 조선 중기에 들어와 휴정(休靜)도《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경절을 강조하였고, 그의 제자 언기(彦機)는《심검설(尋劍說)》에서 불교의 교설을 경절문·원돈문(圓頓門)·염불문(念佛門)의 3문으로 분류하고 그 최상위에 경절문을 다루고 있다. 현재 한국 불교의 선 수행에서도 이 경절문의 법문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경절문 수행법을 닦는데 있어서 그 방법으로 화두공안 참구란 것을 하게 된다. 불가의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參究)하는 문제를 화두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고칙(古則)·공안(公案)이라고도 한다. 원래 공안은 공부안독(公府案牘)의 약칭이며, 정부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국민이 준수해야 할 사안(事案)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이것을 선가에서는 고래로 조사(祖師)들이 정한 설(說)·언구(言句)·문답 등 불조(佛祖)와 인연된 종강(宗綱)을 수록하여 공안이라 하고, 선(禪)의 과제로 삼아 인연화두(因緣話頭)라고 한다. 간화선(看話禪)은 이 화두를 참구하여 오경(悟境)에 이르는 참선법인 것이다. 이런 화두공안을 모아 놓은 책이《무문관(無門關)》《벽암록(碧巖錄)》이란 화두 공안집이 있다. 선종에서는 이 책은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무문관(無門關)》은 중국 남송(南宋)의 선승 무문 혜개(無門慧開) 선사가 지은 화두공안집이다.《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도 한다. 1권. 고인(古人)의 선록(禪錄) 중에서 공안 48칙(公案四十八則)을 뽑고 여기에 염제(拈提) 또는 평창(評唱)과 송(頌)을 덧붙였다. 이 48칙의 총칙(總則)이라고 할 제1칙 ‘조주무자(趙州無字)’에서 저자는 무(無)를 종문(宗門)의 일관(一關)이라 부르고, 이 일관을 뚫고 나아가면 몸소 조주(趙州)로 모실 뿐 아니라 역대 조사(趙師)와 손을 잡고 함께 행동하며 더불어 견문을 나누는 즐거움을 같이 하게 된다고 한다. 조주에게 한 승려가 “개(狗子)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하고 묻자, “없다(無)”고 대답한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유무 상대(有無相對)의 ‘무(無)’가 아니라 유무의 분별을 절(絶)한 절대 ‘무’를 가리킴이다. 깨달음의 절대 경지를 ‘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본서에는 이 ‘무자(無字)’의 탐구가 전편(全編)에 깔려 있다. 이 책은《벽암록(碧巖錄)》《종용록(從容錄)》과 함께 선종의 대표적인 책임이다.

《벽암록(碧巖錄)》은 중국 송(宋)나라 때의 화두 공안집이다. 정확하게는《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嚴錄)》또는《불과벽암파관격절(佛果碧嚴破關擊節)》이라고 한다. 간단하게《벽암집》이라고도 말한다. 선종(禪宗), 특히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의 하나로, 10권으로 되어 있고, 1125년에 완성되었다. 설두 중현(雪竇重顯)이 《전등록(傳燈錄)》 1,700칙(則)의 공안 가운데서 100칙을 골라, 하나하나에 게송(偈頌)을 달고 원오극근(圜悟克勤)이 각칙(各則)에 수시(垂示)·착어(著語)·평창(評唱)을 덧붙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원오의 제자에 의해 편찬·간행된 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선종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적(典籍)으로 여기고 있다. 조동종 묵조선에서는《종용록(從容錄)》을 중시한다.

《종용록(從容錄)》은 중국 조동종(曺洞宗)의 승려 정각(正覺)이 고칙공안(古則公案) 중에서 100칙을 선별하여 이것에 송고(頌古)를 더하고, 행수(行秀:1166∼1246)가 평창(評唱)한 책인데, 정식명칭은《만송노인평창 천동각화상송고 종용암록(萬松老人評唱 天童覺和尙頌古 從容庵錄)》이다. 만송은 행수의 아호이다. 이 책은 예로부터《벽암록(碧巖錄)》과 함께 선문의 쌍벽을 이루는 것이라 하였으나 주로 조동종 계통에서 애용되었다.

마정 보검(磨汀 寶劍)<해동임제 선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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