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행정체계 수립에 기여

선암사 금강계단 증사석에 앉아 있는 생전의 영우당 자월 대종사
선암사 금강계단 증사석에 앉아 있는 생전의 영우당 자월 대종사
합동득도 수계식에 7증사로 참석한 영우당 자월 대종사
합동득도 수계식에 7증사로 참석한 영우당 자월 대종사

I. 시작하는 말

II. 종무행정 체계 확립

III. 종법과 제도개혁에 대한 소신

IV. 맺는 말

 

I. 시작하는 말

영우당 자월 대종사의 49재가 지난 9월 21일 충남 당진의 한 상좌 사찰(대호사)에서 제자 문도 재가 인연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속세인이나 출가인이나 유명을 달리한 다음에 당사자의 진가가 드러난다. 평생 동안 사람이 항상 선하고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만을 살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더욱이 수행자로서 평생을 수행만하고 전법만 하면서 살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산업문명사회에서 수행자로 살아간다는 것도 쉽지 않은 삶이다.

깊은 산중에서 도만 닦고 산다는 것도 개인에게는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지언정 종교사회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구태여 출가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삶의 방식을 택해서 삶을 영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교적 가치관에서 본다면, 이런 삶은 소승적인 삶이 되겠다. 물론 이런 삶을 살아서 큰 지혜를 얻어서 많은 대중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친다면 모르겠거니와 아무런 도과(道果)도 없이 자신만을 위한 삶이었다면 무위도식 승려밖에 더 되겠는가.

그러므로 대승불교에서는 보살행적인 삶을 강조한다. 견성성불을 미루더라도 타인을 위해서 노력 봉사하는 출가 수행인을 높이 평가한다. 인도불교 전통에서는 개인의 수행만을 위하여 출가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겼다. 이런 출가사문의 길은 당시의 유행이요 풍조였다. 하지만 이런 출가사문들은 지혜를 갖고 있었다. 당대 집정자들은 이런 사문들로부터 진리와 지혜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세속적 정사(政事)나 통치, 전쟁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것은 이런 초월적인 정신세계에 대한 감동적인 말씀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석가모니부처님이었다. 인도불교는 5세기 정도가 흐르면서 개인위주의 수행에서 대중을 위한 불교 전법시대로 바뀌게 되었다. 이른바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의 전환이다.

이런 대승불교 전통이 중앙아시아 서역을 경유해서 중국 한국 일본에 전파되었다. 이른바 동아시아 불교권이 대승불교가 된 계기가 되었다. 한국불교는 1천 7백년의 역사가 쌓였다. 긴 역사를 여기서 낱낱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국불교의 특징은 통불교적인 전통이 확립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고찰할 때, 한국불교에서의 출가수행자는 선교밀정불사(禪敎密淨佛事)라는 종합불교를 지향하는 불교교역자로서의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이다. 태고종과의 관련해서 출가사문으로서의 역할을 볼 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출가자의 역할과 책임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일언이폐지하고 영우당 자월 대종사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영우당 자월 대종사는 20대 후반부터 태고종에 몸담기 시작했다. ‘70년대 중반부터 태고종 총무원 총무과장에 임명된 후, 교무국장, 총무국장, 부장, 부원장, 중앙종회의장, 동방불교대학장을 역임했다.

II. 종무행정 체계 확립

‘70년대만 하더라도 태고종단의 종무행정체계는 행정상으로 본다면 초보 수준이었다. 사실, 당시로서는 조계종이나 태고종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당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전신인 대한불교총연합회 가입회원단체는 18개 종단이었는데, 초기에는 원불교, 천화불교 같은 종단도 대한불교총연합회 회원종단이었다. 이후 사단법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로 이름이 변경된 후에는 태고종은 조계종과 양대 산맥을 형성하면서 사실상 한국불교를 주도했다.

태고종단은 ‘70년대 한국불교 양대 산맥답게 한국불교의 한축을 담당했다. 당시 문공부(문화관광체육부 전신)에서도 태고종의 종무행정 사무능력을 인정할 정도로 종무행정체계가 서서히 정립되어 갔다. 당시는 수기(手記)로 업무를 볼 때이다. 태고종이 창종 되고 ’70년대 중반 총무원장이 이남채(남허) 스님으로 교체되면서 태고종은 활력이 생겼다. 남허 스님은 과감하게 30대 부장을 기용했다. 덕암 스님 집행부의 부장 연령이 4050 세대였다면, 남허 스님은 30 세대 부장을 기용, 총무원을 젊게 만들었다. 태고종은 혁신종단이어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총무부장 이규범(운산 법륜사), 재무부장 홍인곡(백련사), 교무부장 대운(봉원사), 사회부장 인공(봉원사)이었고, 청련사에서는 현암 스님이 교무부장을 벽파스님이 사회부장을 맡기도 했으며, 백우스님이 사정부장을 맡았고, 운경스님이 종무위원을 맡았는데, 나중에 이른바 이들이 속칭 7인방으로 불리게 됐다.

남허 스님은 서울 3사(봉원사 백련사 청련사)와 법륜사에서 부장을 선발했다. 4050(사공오공) 세대에서 30(삼공) 세대로 교체된 태고종은 매우 활력이 넘쳤다. 총무국장 범해스님, 교무국장 자월스님, 편집국장 원응 스님 등이 국장급으로 활동했다. 범해스님이 수락산 학림사, 동대문 지장암 주지로 부임한 이후에는 자월 스님이 총무국장으로서 사실상 종단행정 사무 실무를 담당했다.

‘70년대에 태고종 사찰은 2천 여 개 정도였으며, 승려는 3천 명 정도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방교구 종무원도 서울경기는 총무원 직할이었으며, 부산경남종무원, 대구경북 종무원, 전남종무원, 전북 종무원, 충남종무원, 충북종무원, 강원종무원, 제주종무원이 주축을 이뤘다. 서울 경기는 분원제도를 두고, 총무원에서 직할로 운영.관리했다.

총무부장 이규범(운산스님) 스님은 당시로서는 엘리트로서 참신한 인재였다. 동국대 대학원을 마치고 교원공제회에서 근무를 하면서 행정 사무를 익힌 유망한 과장이었는데, 총무원 총무부장으로 스카우트한 것이다. 행정사무는 이규범 부장스님이 총괄하였으며, 실무는 자월 총무국장이 전담했다. 자월 스님은 종단 기본업무는 물론 모든 기획 업무와 종회 사무까지 도맡아서 소화해야 했다.

총무과장, 교무국장, 총무국장을 거치고 부장, 부원장, 중앙종회의장까지 역임하면서 종무행정의 달인이 된 것이다. 적어도 운산스님 총무원장 시절까지의 종단 행정업무는 자월 스님의 손을 거쳐야 했다. 또한 종법체계도 자월 스님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졌다.

종단업무가 전산화되면서 수기(手記) 시대가 마감되었고, 자월 스님은 부원장, 종회의장 등의 소임을 보게 된 것이다. 자월 스님의 필체는 행서체로 유려하면서도 거침없는 필치다. 자월 스님은 서예도 제대로 연마했다. 여기저기 사찰 전각에 자월 스님 현판글씨가 걸려 있고, 주련도 제법 된다.

다만 종법을 손질할 때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래를 대비해서 종법체계를 제대로 바로 잡았어야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자월 스님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오늘 태고종이 존재하는데 있어서 자월 스님은 종무행정 사무체계를 세우는데 역할을 했고, 30-40년간 태고종과 함께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자월 스님이 종권의 핵심에는 있지 못해서 평소 종단개혁과 체제정비에는 어떻게 할 수 없었고, 결국 운산, 인공으로 이어지는 집행부에서도 체제정비와 제도개혁에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흔히 종무행정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종단의 기본 사무 업무를 생각하기 쉽지만, 종무행정이라면 종교 플러스 행정이다. 행정(行政)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국가 작용 중에 입법 작용과 사법 작용을 제외한 것을 말하며, 형식적인 의미에서 행정부가 실시하는 작용의 전체를 말한다. 입법권·사법권과 대등한 통치권의 하나로서 행정을 하는 권능을 행정권이라 한다. 그렇지만 종무행정이라고 했을 때, 종무행정은 한 종교단체의 정치적 운용과 조직관리 등에 있다.

적어도 불교 종파에서의 종무행정이란 종무와 행정실무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불교 종파 즉 종단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종무행정가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사판승을 말한다. 현대적 개념으로 본다면 종무행정을 담당하는 지도자나 실무자는 종무행정 개관. 종무행정의 기초이론,종무행정의 정체성, 종무행정의 이념을 기본적으로 이해해야한다

다음은 불교의 교단성립과 한국불교의 종파, 종단성립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종무행정 조직론, 종무행정 조직이론, 조직의 의의와 이론, 종교조직의 개요, 종무행정조직의 원리와 특성,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근현대 한국불교의 집권과 분권, 종무행정 조직구조, 공식조직과 비공식조직, 신도조직, 종무행정 조직관리, 기획, 최고관리층과 중간관리층, 불교리더십, 갈등관리, 의사소통, 회의진행, 불교교단 인사행정, 인사관리, 출가종무원과 재가종무원, 교육훈련, 보수, 종무원의 행동규범, 종무원의 윤리, 종무원의 정치적 중립, 불교교단 재무행정,불교재원과 사원경제, 불교재원, 사원경제, 종단예산, 사찰예산, 전법교화, 포교, 법회관리, 설법이란 소주제별로 공부를 해야 종무행정에 대한 이론을 갖추게 된다.

책상에 앉아서 승적업무나 보고 승려(니)의무금이나 사찰분담을 받는 것이 종무행정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종단에서 말하는 종무행정이라면 종무와 행정 양쪽에 달통해야 감히 사판승으로서의 종무행정가라고 할 수 있다. 종단의 조직관리 운영, 예산, 포교에 이르기 까지 종무행정의 범위는 종단조직의 전반에 미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행정이라면 사법이나 입법과 함께 민주국가에서의 3권 분립사상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태고종의 현실에서는 3권 분립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 태고종의 현실에서는 아직도 이론상으로는 분립이라고 하지만, 사실상은 서로 얽혀서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문제점이 발생하고 이번 종단사태도 이런 제도상의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종단의 현실에서 확실하게 3권 분립이 안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종회의 월권과 파행에서 이런 엄청난 회오리가 휘몰아치고 있다.

태고종의 현실에서 그래도 전통적 의미에 있어서 종단 3부에 대한 실무이론과 경험을 많이 축적하고 있는 분이 바로 영우당 자월 스님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태고종은 행정 사법 입법에 대한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체제에서 빨리 탈각해야 한다. 소위 종무행정현대화를 이룩해야 만이 종단이 새로운 종단체제와 제도를 갖는 기본자세가 된다.

이번 종단사태를 보면서, 누가 총무원장이 되고 소송의 결과에 무관하게 체제정비와 제도개혁 없이는 태고종의 안정과 발전은 요원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월스님은 입적 얼마 전에 그동안 종단 행정 실무에 몸담았으면서 통감했던 부분을 토로했다. 종단 기본사무가 행정이라고 착각했던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체제와 제도를 제대로 종법체계에 의해서 확립했어야 하는데 실기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양보다 질을 생각했어야 했고, 서울경기를 직할에서 지방교구로 분권화 한 것이 큰 행정 실책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종회와 원로회의 권한을 너무 막강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잘못이었다고 시인했다. 입문자에 대한 기본교육을 제대로 못시키고 승려(니)를 마구 양산했던 것 또한 정책적 실수였으며, 시대에 부응하는 종무행정체계를 정립하지 못한 것이 종단 지도자들의 무능이면서 통찰하지 못한 편견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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