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소의경전

⟪금강경⟫은 한국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승경전으로 한국불교 소의경전이다.
⟪금강경⟫은 한국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승경전으로 한국불교 소의경전이다.

⟪금강경⟫에 대한 소개는 길게 하지 않아도 한국불교에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승경전이어서 긴 설명 하지 않겠다. 중국불교나 한국불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불교에서도 이 경의 지위가 위상은 대단하다 할 것이다. 이 경이 인도에서 범문(산스크리트어)으로 씌어졌지만, 중국에서 한역되어 동아시아권 불교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져 큰 대접을 받고 있다. 대승경전하면 대표적인 경전들이 화엄경, 묘법연화경, 유마경, 대반열반경, 금강경이다. 특히 금강경은 선종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금강경을 영어권에서는 ‘다이아몬드 수투라(Diamond Sūtra)’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바즈라체디카 프라즈나파라미타 수투라(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라고 한다. 영어식으로 뜻을 정의한다면 ‘지혜의 완성(Perfection of Wisdom)’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금강경 반야심경은 선종의 이론서나 다름없다. 한역에서는 《金刚般若波羅蜜经》 또는 《佛說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이라고 했다.

금강경하면 사구게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존재하는 모든 상(相)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모든 상이, 상이 아님[非相]을 안다면 바로 여래(부처)를 보리라.

금강경의 핵심이 여기에 다 들어 있다. 결국 금강경의 핵심은 지혜를 가지라는 것인데, 그 지혜는 다름 아닌 공성(空性)을 철견(徹見)하여 고정관념을 깨라는 것이다.

돈황에서 출토된 당나라 시대의 금강경(868뇬 경)으로서 현존하는 금강경 인쇄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금강경이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돈황에서 출토된 당나라 시대의 금강경(868뇬 경)으로서 현존하는 금강경 인쇄본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금강경이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 신강성 쿠차 키질 동굴 입구에 있는 구마라습(쿠마라지바) 동상.
중국 신강성 쿠차 키질 동굴 입구에 있는 구마라습(쿠마라지바) 동상.

금강경은 너무 유명하고 인도에서 성립한 불교경전 가운데 금강경은 범어(산스크리트어) 본이 남아 있어서 서구의 학자들이 연구하게 되었다.

《金剛經》은 네 개의 산스크리트어 판본이 있다.

Friedrich Max Müller:1881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간인본(刊印本)

Sir Aurel Stein: 1900년 중앙아시아에서 발견.

1931년 길기트(Gilgit파키스탄) 발견.

쇼엔 소장(Schoyen Collection) 판본(오슬로)

 

한역본은 6개가 있다.

중국불교에서는 그동안 6종의 금강경 판본이 있다.

요진(姚秦) 구마라습(鳩摩羅什)

원위(元魏) 보리유지(菩提流支)

진(陈) 진제(真谛)

수(隋) 달마굽타(达磨笈多)

당(唐) 현장(玄奘)

당(唐) 의정(义净)

금강경은 선종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6조 혜능대사는 금강경의 종지(宗旨)를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으로 요약했다.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라는 뜻이다.

 

한역본들 가운데 중국에서는 구마라습 번역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현존하는 한역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한문 문화권의 동양 각국에서 ‘금강경’이라고 하면 주로 이것을 의미한다. 그 이후의 ‘금강경’ 한역본은 구마라습의 한역본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금강경’의 주석서는 중국을 비롯한 인도, 일본 한국 등에서 무려 800여명이 저서를 냈다. 그만큼 금강경은 유명한 경전이기 때문에 주석을 단 분들이 많이 출현했다. ‘금강경’은 천태종.삼론종.화엄종 등 중요한 불교학파의 고승들이 이에 관한 주석서를 많이 남기고 있는데, 이것은 ‘금강경’의 초종파성을 의미한다. 이런 연유로 금강경은 초교파적인 경전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마라습의 한역본에 대해서 조선시대 초기의 학승인 함허당(涵虛堂) 득통(得通) 스님이 펴낸 《금강경반야바라밀경오가해》가 학술적으로나 보급으로 보아 단연 독보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정현 <불이성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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