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인생이 새털같이 가볍고 언제나 푸르른 봄 날 일 수가 없다. 모든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들고 쭈그러든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모든 사물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거죽은 언젠가 늙고 허물어진다. 늘 새 차일 수가 없다. 끌고 다니다보면 고장도 나고 쥐어박아서 찌그러 들기도 한다. 육신을 오십 년 육십 년 끌고 다니다 보면 폐차 직전까지 도달한다. 거죽은 언젠가는 허물어진다. 생로병사하고 생주이멸(生住離滅)한다. 그러나 中心은 늘 새롭다. 영혼에 나이가 있는가.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영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런 빛 이다. 어떻게 늙는가가 중요하다. 자기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 하다. 거죽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중심은 늘 새롭다. 거죽에서 살지 않고 중심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세월 속에서도 시들거나 허물어지지 않는다.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법정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이와 같이 말했다 “사람들은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한다. 소유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우리들의 자유로운 날개를 쇠사슬로 묶어 버린다. 그것은 자기실현을 방해한다. 무엇을 갖고 싶다는 것은 비이성적인 열정이다. 비이성적인 열정에 들뜰 때 그것은 벌써 정신적으로 병든 것이다. 우리들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데 있다.”라고 했다.

삶의 부피보다는 질을 문제 삼아야 한다. 사람은 무엇보다도 바른 삶을 살 줄 알 때 사람일 수가 있다. 채우려고 하지 말고 텅 비 울 수 있어야 한다. 텅 빈곳에서 영혼의 메아리가 울려 나온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에 있다.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인간의 청정한 본성인 사람과 지혜에 가치척도를 둬야 한다. 또 온갖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 어느것 하나에라도 얽매이면 자주적인 인간 구실을 할 수 없다. 무슨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하되 그 일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얽매이면 그 일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그 일을 하되 얽매이지 않으려면 저마다 자신의 청정한 본성에 곧 지혜와 사랑에 가치의식을 두어야 한다.

백중이 다가 오고 있다. 선망부모를 위한 기도는 결국 자신의 발복을 위한 것이니 백중날 가까운 절을 찾아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아미타불 염불로 저 마다의 광명을 찾아 이고득락 하기를 발원하자!

법장<총무원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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