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카 대왕 전도승 파견

탁트이 바히 불교사원 유적, 파키스탄
탁트이 바히 불교사원 유적, 파키스탄
탁트이 바히 사원 스투파(탑) 추측도., 파키스탄.
탁트이 바히 사원 스투파(탑) 추측도, 파키스탄.

우리는 너무 갇혀 있는 불교를 인식하고 있다. 세계불교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분야가 그러하지만, 특히 불교사에 있어서 세계불교사 특히 그리스 불교사에 대해서는 무지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이란) 불교사에도 무지하다. 그러나 진실과 역사는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성리학의 영향이 커서 불교연구에 있어서도 철학적인 부분에 너무 치중해 있고, 선불교에 집중되어 있어서 불교역사와 경전어 부분에 약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어 매개에 의한 이런 역사적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이마저도 영어해독이 가능해야할 입장이다. 영어를 알고 한문을 안다는 것은 그만큼 불교연구에 유리하다고 할 것이다.

한국불교 안에 갇혀 있는 분들은 도교적 불교에 너무 침잠되어 있어서 그리스 불교나 페르시아 불교라고 하면 무슨 전설이나 신화를 듣는 기분을 취한다. 무지를 탓하기에 앞서서 거부감부터 갖는다. 아무튼 소개해 보자.

기원전 260년경 인도 아소카 왕의 불교전도 후원에 힘입어서 불교신앙의 발달은 그리스 승려들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그리스-인도 왕국의 메난드로스 1세 왕(재위 기원전 165〜130)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메난드로스 1세는 인도 북서부에 세워진 헬레니즘 계 왕조인 인도 그리스 왕국의 국왕이었다. 당시 승려 나가세나(那伽犀那)와 문답을 주고받은 것은 너무나 유명하며, 내용이 빨리어로 쓰인 《밀린다왕문경》에 남아있다. 메난도로스 1세가 주조한 동전의 종류와 양은 함께 사용된 다른 인도 그리스 왕국의 군주가 발행한 동전보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유통되었다고 하는데, 무려 22종류로서, 금·은·구리 3종의 동전을 주조·유통시키고, 동전에는 청년기에서 노년기까지의 메난도로스의 초상화가 새겨졌다. 메난도로스의 동전에는 불교의 상징인 법륜이 새겨져 있다.

메난드로스 1세의 초상화
메난드로스 1세의 초상화

 

이런 기록이 스리랑카의 사서인 《마하왕서:大史》에 실려 있다. ‘대사(大史)’란 뜻을 갖고 있는 이 사서는 빨리어(語)로 씌어 있다. 실론 왕 다투세나(재위 460∼478)의 숙부인 비구승(比丘僧) 마하나마가 왕명에 따라 편집하였다고 전해진다. 《디파왕사:島史》와 마찬가지로 아누라다뿌라의 마하 비하라(大寺)에 전하는 자료를 기초로 하고 새로운 자료를 첨가하여 편집한 것이다. 내용은 《디파왕사》와 마찬가지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론 내도(來島) 전설에서 시작하여 아소카 왕의 왕자 마힌다의 내도와 불교의 선포, 큰 절의 건립 및 실론 여러 왕의 사적 등을 기록하였으며, 마하세나 왕의 사망(352)으로 끝맺고 있다. 《디파왕사:島史》에 따르면 실론 왕국은 BC 5세기에 인도에서 건너온 비자야(Vijaya)가 창건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요 부분이 5세기에는 완성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실론 고대사의 자료로서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원시 불교교단에 관한 기사는 인도불교사 ·인도문화사의 자료로서도 귀중하다.

아소카 대왕이 제 3차 경전결집을 주도하고 있는 목칼리푸타 티싸 대 장로스님에게 합장하여 공경을 표하고 있다.
아소카 대왕이 제 3차 경전결집을 주도하고 있는 목칼리푸타 티싸 대 장로스님에게 합장하여 공경을 표하고 있다.

아소카 왕은 인도 아 대륙을 통일하고 불교를 국교로 채택하여, 철권통치보다는 불교진리를 바탕으로 한, 법의 정치를 펴면서 불교를 사방에 전파하기에 이른다. 아소카 왕은 또 당시의 수도인 지금의 파트나인 파탈리푸트라에서 제 3차 경전결집을 후원하게 된다.

목칼리푸타 티싸(327〜247 BCE) 대장로는 한역권에서는 제수(帝須)·목건연자(目犍連子)로 알려져 있으며 파탈리푸트라 태생이다. 목칼리푸타 티싸 대장로는 상좌부의 분별설부 파의 비구이다. 또한 그가 유명한 것은 《까타왓투(Kathāvatthu):論事》를 저술했다는 사실이다. 분별설부파는 상좌부의 적통부파라고 할 수 있다.

아소카 왕 시대 불교전도의 경로 지도. 지도에서 제일 윗부분이그리스가 인도 북부(페르시아)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아소카 왕 시대 불교전도의 경로 지도. 지도에서 제일 윗부분은 그리스가 인도 북부(페르시아)지역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파트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80개의 기둥.제3차 결집이 열렸던 대회의장은 80개의 기둥이사용된 큰 건물이었다고 한다.
파트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80개의 기둥. 제3차 결집이 열렸던 대회의장은 80개의 기둥이 사용된 큰 건물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이런 저런 내용을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실크로드 즉 그레코(그리스불교) 불교로 다시 돌아가서 말해 보자. 아소카 왕은 인도 아 대륙 각 지역에 불교 전도사를 보내게 된다. 불교 전도사를 보내기 전에 제3차 경전결집이라는 불교승가 총회를 열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의 정통교의(正統敎義)를 재정립해서 각 지역에 파견하게 되는데, 경전 내용은 빨리어로 암송하여 비구들을 보내게 된다. 설명하자면 빨리어는 문어가 아닌 구어(口語)이다. 말은 있으되, 글자는 없는 언어였다. 인도 중부 지역인 마가다 지역에서 사용하던 말이었으며, 이 말에 의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암송하여 구송(口誦)으로 전승되고 있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200년 정도가 지나가니 부처님께서 남기신 말씀에도 변화가 생기고 일부 비구들은 엉뚱한 해석을 하는 등, 자칫하다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큰 변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에서 제3차 경전결집이 열린 것이다.

경전결집이 열리고 난 다음에 불교 전도 승들이 각 지역으로 길을 떠났다. 인도 북부지역은 원래 페르시아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후에는 그리스 식민지가 건설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었고, 이미 불교전도가 되기 전에  그리스 출신 불교 승려들이 마가다의 수도인 파탈리푸트라에 와 있었다. 이 야기는 차회에서 해보기로 하자.

보검<세계불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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