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양종 정안종사 배출했던 선불장(選佛場)

선암사 대웅전 현판. 조선후기 문신 서화가의 글씨.
선암사 대웅전 현판. 조선후기 문신 서화가의 글씨.

선암사는 언제 가서 봐도 안온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의 산사 대부분이 모습을 바꿨지만, 선암사는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사찰건축미와 도량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값진 산사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풍을 간직한 대본산 총림이 사찰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있다고 하면 일반인들은 이해를 잘 못한다. 천년이 넘도록 스승과 제자가 얼굴을 맞대면서 이어오고 있는 역사와 전통이다. 선암사는 지금 태고총림 사찰이다. 태고종의 유일무이한 총림도량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청정한 태고총림이 종단 내부 종권다툼의 장소로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태고종도들의 정신적 귀의처로서 영장으로 자리매김 되었으면 한다.

한국불교태고종 종정원 모습. 혜초종정예하가 주석하고 있다.
한국불교태고종 종정원 모습. 혜초종정예하가 주석하고 있다.

일행은 종정원에 주석하고 계시는 혜초 종정예하를 친견하기 위해서 종정원 마당에 들어선다. 언제 찾아도 항상 고요하면서 서기가 서려있다. 선암사의 정안종사들이 주석했던 방장실(方丈室)이다. 혜초종정예하는 하안거 중이었다.

혜초 종정예하께서는 종무보고 차 들른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에게 붕대를 감은 발목을 보이면서 한결 나아졌다고 천진하게 웃으시고 있다.
혜초 종정예하께서는 종무보고 차 들른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에게 붕대를 감은 발목을 보이면서 한결 나아졌다고 천진하게 웃으시고 있다.

혜초 종정예하께서는 발목 부상으로 수개월 째 치료중이다. 편백운 총무원장 스님 일행을 맞으면서 “요즘은 인적이 끊겼어!”라고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최근의 심정을 토로하신다. 모두들 할 말을 잃고 종정예하 면전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뿐이었다. 종정예하께서는 평소와는 다르게 별 말씀이 없으신다. 벽을 가리키면서 손수 써 붙여 놓은 붓글씨에 집중하신다. 무언의 말씀을 붓글씨로 대변하신다.

자성천진불 평상심시도
자성천진불 평상심시도
지계상항단 파계상추루
지계상항단 파계상추루
죽영소계진부동 월륜천소수무흔
죽영소계진부동 월륜천소수무흔

구순을 앞둔 노 선사는 천진불처럼 평상심 그대로 하루하루 선사처럼 율사처럼 그저 출가사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수행 정진할 것을 주문하신다.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는다

(竹影掃階塵不動)

달빛이 연못 밑을 뚫어도 물 위에 흔적조차 없다

(月穿潭底水無痕)"

 

말없이 소리 없이 그저 노 선사의 일상을 그대로 표현하시는 것으로 이심전심 알아차리고 종정원을 나선다. 이미 모든 일에 초연하신 종정예하께 무슨 청이 필요하며 답이 필요하리요. 잘 모시지 못한 허물만 스스로들 탓하면서 물러선다.

조계산 선암사 현판.
조계산 선암사 현판.

조계산 선암사는 한국불교 역사 그 자체이면서 근현대 한국불교의 상징이기도 하다. 해방 후 한국불교의 아픔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 조계산 선암사는 한국불교태고종과 명운을 같이 하고 있다. 태고종의 상징사찰로서 그 역할과 기능이 엄청나다. 이런 가치와 상징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수행과 교육 도량의 본모습을 벗어나는 종권(宗權)놀음의 장으로 변한다면, 선암사는 그 가치와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태고종도들은 선암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신중해야한다. 아무렇게나 선암사를 대하고 아무렇게나 선암사를 배경으로 자신들의 소리(小利)를 탐한다면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승선교의 자태는 여여하다.
강선루의 자태는 여여하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승선교 강선루의 자태. 신선처럼 하늘로 날아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건축미의 백미다. 승선교 옆에서는 장군봉에서 흘러 내려온 청정수가 쉼 없이 흘러내려간다.

승선교 옆을 흘러가는 계곡수의 청량한 모습.
승선교 옆을 흘러가는 계곡수의 청량한 모습.

속심(俗心)을 씻어내는 세심(洗心)의 물줄기가 쉬지 않고 나그네의 귓전을 때린다. 모든 태고종도들이 웃으며 자유롭게 드나드는 산문이 되었으면 한다. 상대를 초월한 출가사문의 도량이 되어 많은 정안종사(正眼宗師)들이 배출되는 선불장(選佛場)이 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조계산 선암사에서= 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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