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현대불교와 한국과의 교류

대통령비서실장과 선물 교환하는 편백운 총무원장스님과 원응 동방불교대학 총장스님
대통령비서실장과 선물 교환하는 편백운 총무원장스님과 원응 동방불교대학 총장스님

이제 아시아불교 평화회의 참가기를 마무리해야할 것 같다. 사실, 몽골불교는 지난 1920년부터 1990년대 까지 긴 동면을 하고 있었다. 그 이전만 해도 몽골불교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청나라 치하라고는 하지만 몽골불교는 몽장불교(蒙藏佛敎)라고 해서 한전불교(漢傳佛敎)와는 내용이나 외형면의 양상이 다른 불교전통을 고수해왔다. 청나라 황실에서 정치적 이유야 어디에 있던지 극진히 대우해서 그야말로 어려운 가운데서 불교는 그런대로 자리매김을 해왔던 것이다. 몽골의 상층부는 불교와 관계를 통해서 청나라 황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현재 몽골로 대표되는 외몽골은 물론이지만 중국령 내몽골 자치구인 내몽골도 다수의 불교 유적이 있고, 현재도 큰 사원들이 있으며 라마가 상당히 많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내몽골 불교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겠지만, 아무튼 청나라 시대의 몽골 불교는 외몽골이나 내몽골을 다 포함하고 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외몽골에는 583개의 라마사원이 있었다는 통계가 있다. 국가재정의 20%를 사원이 통제하고 있을 정도로 불교는 막강했다. 지금의 몽골 수도인 울란바타르는 티베트 불교 전통의 걸륵파 서열 3위인 제쮠담바 후툭투가 주석하고 있었다. 그는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외몽골 지역 최고 활불이자 지도자이다. 티베트에는 서열 1위인 달라이 라마와 2위인 판첸라마가 있었다. 복드게겐이라고 호칭했지만 나중에는 복드 칸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복드 게겐이 불교와 정치를 다 관장하는 왕과 같은 지위였기에 복드 칸으로 부르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는 티베트 출신이었다. 지금의 간단사원과 또 다른 사원에는 13000명과 7000명의 라마들이 머무를 정도로 대단했었다고 한다.

1911년부터 1920년 까지 복드 칸으로 재직한 제쮠담바 후툭투
1911년부터 1920년 까지 복드 칸으로 재직한 제쮠담바 후툭투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청나라가 망하면서 외몽골은 독립하게 되고, 1920년까지 약 10년간 복드 게겐은 복드 칸(왕)으로 10년 정도 몽골을 통치했다. 1920년대에 11만 명의 라마가 있었으며, 남성인구의 3분의1이 라마였다고 한다. 이렇게 어마어마했던 몽골불교는 1930년대에 이르러서 급전직하하고 만다.

한국불교대표단이 복드 칸 여름 궁전(박물관)을 방문, 기념촬영.
한국불교대표단이 복드 칸 여름 궁전(박물관)을 방문, 기념촬영.

1920년대 몽골은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면서 외몽골과 내몽골로 분리하게 됐다. 외몽골은 독립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공산국가가 되었고,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남아 있게 되어서 오늘날 내몽골로 부르고 있다. 외몽골은 문자를 개혁해서 러시아어 문자처럼 키릴문자 알파벳으로 문자개혁을 했지만, 내몽골은 몽골고문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내몽골지도
내몽골지도

내몽골 자치구(內蒙古自治區)는 중화인민공화국 북부에 위치한 자치구이다. 몽골어로는 ‘외뷔르 몽골’이라고 표기하는데 ‘외뷔르’는 몽골어로 ‘남쪽, 안쪽, 앞쪽’을 뜻한다. 즉 ‘외뷔르 몽골’은 한국어로 직역하면 ‘내몽골’ 또는 ‘남몽골’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동북부 지역(후룬베이얼 시, 싱안 맹, 퉁랴오 시, 츠펑 시)은 동사맹이라고 하여 만주(둥베이)의 일부이기도 하다.

 

1820년대 청나라 때, 외몽골 내몽골 지도.
1820년대 청나라 때, 외몽골 내몽골 지도.
한국불교대표단이 몽골의 한 사원을 방문, 기념촬영.
한국불교대표단이 몽골의 한 사원을 방문, 기념촬영.

이렇게 한 민족이 나라가 갈라지면서 함께 사용하는 언어문자도 변화가 온 것이다. 외몽골은 소련의 영향으로 키릴문자로 문자개혁을 했지만, 내몽골은 지금도 몽골 문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몽골어와 예벤키어를 적기 위해 오늘날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내몽골 자치구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문자는 위구르어 필경사인 타타르 통가가 만들었다. 그는 1204년경에 몽골과 나이만과의 전쟁에서 몽골인들에게 포로로 붙잡혔고, 그때 칭기스 칸이 그에게 몽골 언어를 위한 표기 체계를 만들라고 명했다. 시리아 문자에서 파생된 문자이며 소그드 문자를 거친 위구르 문자를 고쳐서 이 표기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세로쓰기이다. 이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써나가는 몇 개 안되는 세로쓰기 문자들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세로쓰기 표기 체계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나가지만, 중세의 위구르 문자와 그 파생 문자들(몽골 문자, 오이라트 문자, 만주 문자 및 부랴트 문자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나간다. 이것은 위구르인들이 중국의 표기 체계를 흉내 내기 위해 그들의 문자를 반시계 방향으로 90도 회전시켰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대표단이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
한국불교대표단이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
울란바타르에서 동쪽으로 20km 지점 초원에 세워진 칭기즈칸 동상 박물관(5층 건물 높이).
울란바타르에서 동쪽으로 20km 지점 초원에 세워진 칭기즈칸 동상 박물관(5층 건물 높이).

몽골불교는 1990년 다시 부흥하는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몽골도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 민주공화국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불교는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고, 30여년이 지난 지금 몽골에는 수백 개의 라마사원과 1천 여 명의 라마들이 수행 포교하고 있다. 인도 중국 동남아 등지의 불교 국가에 유학을 가고 서구의 유명한 대학에 가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젊은 승려들이 새로운 몽골불교를 일으키고 있다. 30년 전 울란바타르의 풍경과 지금의 울란바타르의 불교 풍경은 확연하게 다르다.

공산사회주의 시절에 창립했던 아시아불교평화회의도 이제는 개방해서 이념을 초월하여 자유진영국가의 불교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불교평화회의 회장이며 간단사 주지인 함보라마 쵸이 잠츠 스님과 인사를 나누는 아시아불교평화회의 한국 측 회장 원응스님.
아시아불교평화회의 회장이며 간단사 주지인 함보라마 쵸이 잠츠 스님과 인사를 나누는 아시아불교평화회의 한국 측 회장 원응스님.

보검<세계불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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